황제의 추락

15년 만에 귀환한 무굴 황제 후마윤

by 서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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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의 1,2대 황제인 바부르(좌)와 후마윤(우) 부자는 그야말로 극적인 삶을 산 인물들이었다.


칭기즈 칸과 티무르, 두 정복자의 혈통을 모두 물려받은 바부르는 우즈베크인들에게 쫓겨나 고향을 등진 뒤, 인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인도 북부를 통치하던 델리의 술탄을 꺾고 후일 '무굴 제국'이라 불리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당시 무굴은 '제국'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불안요소가 가득했기 때문이었죠.


무굴은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 북부에 걸친 넓은 영토, 그리고 그 영토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보물과 돈을 차지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황량한 땅에서 평생을 가난에 허덕였던 바부르는 자신의 일기에 '인도는 덥고 사람들도 아름답지 않고 맛있는 과일도 없지만 돈이 많아서 좋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죠. 그는 자신이 차지한 영토와 재물을 아들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면서, 결코 형제들 사이에 칼을 겨누며 싸우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바부르의 이런 지론은 그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12살 되었을 때, 비둘기와 노는 것이 취미였던 그의 아버지가 계단을 올라가다 떨어져 사망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왕위를 물려받았죠. 하지만 그는 동생과 신하들의 배신으로 고향 땅에서 쫓겨나 머나먼 아프가니스탄으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불행이 자기 대에서 끝나기를 바랐죠.


바부르가 가장 아꼈던 아들은 장남 후마윤이었습니다. 후마윤은 아버지를 따라 전장에 나서며 무굴 건국에 공헌하기도 했죠. 후마윤이 열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바부르는 직접 아들을 간호하며 정성을 다했습니다.


늙은 저를 데려가시고 제 아들은 살려주십시오.


바부르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아들의 곁을 지켰고, 그의 목소리가 정말로 신에게 닿았던 것인지 얼마 뒤 후마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부르가 병에 걸렸고, 결국 그는 정말로 아들 대신 신의 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후마윤은 만들어지다 만 나라를 물려받았습니다. 무굴을 진정한 '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도 함께 말이죠.


후마윤은 아버지의 유언을 충실히 받들어 다른 형제들의 땅과 재물을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생들은 그러지 않았죠. 야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형이 물려받은 보물 가득한 도시 델리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던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동생들은 형의 왕좌와 재물을 원했죠.


바깥에도 적이 있었습니다. 바부르에게 크게 패했지만 아직도 인도 서북부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하며 무굴에 맞서던 힌두교도들의 라지푸트 왕국들, 그리고 벵골 지역에서 새로 일어난 이슬람교도들의 수르 왕조가 주적이었죠. 후마윤은 아버지가 못다한 대업을 이루기 위해 그들을 정복하려 했고, 동생들도 힘을 보태어주기를 바랐죠.


Painting_of_Sher_Shah_Suri_(colored)_from_a_manuscript_of_Tarikh-i-Khandan-i-Timuriya,_prepared_by_the_court_painters_of_Mughal_emperor_Akbar,_circa_16th_century.jpg 셰르 샤 수르는 무굴인들을 인도에서 몰아낸 유능한 장군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운영에도 뛰어난 자질을 지닌 정치가이기도 했다.


동생들은 형의 요청에 배신으로 응답했습니다. 자기 멋대로 인도의 황제를 칭하는 동생도 있었고, 적국인 수르 왕조와 동맹을 맺으려던 동생도 있었죠. 후마윤은 그런 동생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채 수르 왕조의 창건자 셰르 샤 수르와의 전쟁에 나섰습니다. 셰르 샤 수르는 일개 장군으로 시작해서 순식간에 벵골 지역을 정복할 정도로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동시에 체계적인 화폐 제도 등을 도입할 정도로 유능한 정치가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다투었지만 승패를 가르지 못했고 결국 휴전했죠. 후마윤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방심하며 경계를 풀었지만, 셰르 샤 수르는 후마윤이 방심한 것을 알자마자 야밤에 군대를 이끌고 그를 기습했죠.


후마윤은 셰르 샤 수르가 비열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셰르 샤 수르는 온갖 책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휴전 조약만 믿고 아예 손을 놔버린 후마윤을 미련하다고 비웃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생들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반쪽짜리 무굴 군대는 참패했습니다. 남편을 따라 전장까지 나왔던 후마윤의 아내는 포로로 잡혔고 8살 난 딸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후마윤 역시 말에서 떨어져 강물에 빠지면서 딸의 뒤를 따라갈 뻔했지만, 어느 용감한 졸병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죠.


하루 동안 네가 나 대신 황제 노릇을 해라.


후마윤은 그 용감한 졸병에게 이렇게 말하며, 정말로 그를 황제로 앉혔습니다. 이후에도 후마윤은 그를 측근으로 삼았고, 그 졸병 역시 평생을 황제의 충신으로 살았죠. 졸병의 아들 역시 후마윤의 아들 악바르의 최측근이자 제국의 권력자로 자라나며 인연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그저 하나의 미담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후마윤은 아마도 그것을 애타게 바랐겠지만, 불행하게도 후마윤의 적들은 전혀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었죠. 델리와 아그라, 라호르 등 무굴이 애써 손에 넣었던 북인도의 도시들이 하나하나 셰르 샤 수르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후마윤은 '델리에서 조용히 살 테니 제발 이쯤 하고 돌아가 주시오.'라고 애원했지만, 셰르 샤 수르는 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이자 무굴의 본거지인 카불로 돌아가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너희 몽골('무굴'은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몽골'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합니다)은 인도에서 나가라는 선언이었죠.


셰르 샤 수르는 네 사정 알 바 아니라고 무시했겠지만, 사실 후마윤은 카불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카불을 물려받았던 후마윤의 동생이 형을 문전박대했기 때문이죠. 동생은 오히려 셰르 샤 수르에게 '내가 형을 잡아다 바칠 테니, 대신 카불로는 쳐들어오지 말고 나와 같은 편이 되자'고까지 제안할 정도였습니다. 가족애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동생의 배신 행각에 기가 찼던지, 셰르 샤 수르도 그의 제안을 거절할 정도였죠.


1280px-Tahmasp,_Humayun_Meeting.jpg 나라를 잃은 후마윤은 서쪽 사파비 제국으로 도망쳤다. 그는 페르시아의 화려한 궁정에서 상처를 보듬으며 권토중래할 때를 기다렸다.


왕관도 땅도 재산도 몽땅 잃은 채, 후마윤은 사막으로 도망쳤습니다. 임신 중이었던 후마윤의 부인은 사막의 무더위 속에서 아들을 낳아야만 했습니다. 갓난아이 악바르는 무사히 태어나긴 했지만 부모와 생이별한 채 오아시스의 어느 마을에 맡겨졌죠. 후마윤은 결국 사막 너머 페르시아 지역에 위치한 제국 사파비로 망명했습니다.


사파비 제국은 바부르와 같은 세대였던 샤(황제) 이스마일이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며 세운 나라였습니다. 비록 오스만에게 대패하며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페르시아 지역에서 찬란한 문화를 구가하고 있었죠. 당시 사파비의 샤였던 타흐마스프는 빈털터리로 도망쳐 온 후마윤을 반갑게 맞아들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스마일도 한때 후마윤의 아버지 바부르와 동맹을 맺고 공공의 적 우즈베크인들과 함께 싸웠으니, 그 인연이 자식들에게도 이어진 것이었나 봅니다. 후마윤은 페르시아의 궁궐에서 호의호식하며 몇 년의 세월을 보냈죠. 이때 그는 페르시아의 화려한 예술에 큰 감명을 받았고, 언젠가 자신의 나라를 되찾으면 그에 못지않은 예술을 꽃피워야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몇 년 뒤, '콩가루 집안'이던 바부르의 아들들을 쫓아내고 북인도를 현명하게 다스렸던 셰르 샤 수르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만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고, 수르 왕조는 무굴이 그랬듯 내우외환에 휩싸였죠. 이역만리 페르시아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고대하던 후마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타흐마스프는 친절하게도 잘 훈련된 군대 1만 명을 그에게 빌려 주었죠. 후마윤은 자신이 고향을 되찾으면 그에게 서쪽 땅을 떼어 보답해주기로 약속하고 마침내 페르시아 군대와 함께 인도로 향했습니다. 사파비의 예술가들을 데려오는 것도 잊지 않았죠.


800px-Humayun_finally_defeated_his_rebellious_brother_Kamran_in_Kabul_in_1553.jpg 페르시아 군대와 함께 돌아온 후마윤은 반기를 든 동생들과 숙적 수르 왕조를 모두 물리치며, 15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다.


그때까지도 카불을 차지하고 있던 후마윤의 동생은 형의 귀환에 놀라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형의 상대가 되지 못했죠.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앞으로 붙들려 온, 남보다 못한 동생을 본 후마윤은 결국 동생의 눈을 멀게 만든 뒤 성지 메카로 순례를 다녀오라는 명목으로 추방하였습니다. 골육상쟁만큼은 막고자 했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린 것이었지만, 몇 번이나 배신을 일삼았던 자를 더 이상 내버려둘 수는 없었죠.


그렇게 '집안 싸움'을 마무리한 후마윤은 파죽지세로 외부의 적인 수르 왕조도 멸망시켰습니다. 무굴과 정반대 처지가 되었던 수르 왕조는 후마윤의 상대가 되지 못했죠. 후마윤은 장장 15년 만에 델리를 되찾았습니다. 그는 비록 적이었지만 훌륭한 행정가였던 셰르 샤 수르가 구축해놓은 화폐제도 등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마찬가지로 그가 건축했던 각종 공공시설들도 잘 활용하였습니다.


800px-The_Emperor_Humayun_Returning_from_a_Journey_Greets_his_Son.jpg 후마윤은 태어나자마자 생이별한 아들 악바르를 만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악바르는 이후 무굴을 진정한 의미의 제국으로 발전시키며 '대제'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화려하게 델리로 귀환한 후마윤은 아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갓난아이일 때 이별했던 악바르를 재회하고 화려한 연회를 벌여 축하했으며, 영토와 재산을 내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비록 아버지로부터 직접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총명하고 타 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용도 뛰어났던 악바르는 무굴을 진정한 제국으로 발돋움시킨 명군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1556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다시 말해 이제 막 '해피엔딩'이 시작되었을 때였죠. 돌아온 황제 후마윤은 델리의 한 도서관에서 책을 한아름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사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땅과 병사, 그리고 눈이 돌아갈 만큼의 재물을 지닌 황제여도 신 앞에서는 한낱 인간일 뿐. 후마윤은 바로 그 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멈춰 서서 무릎을 꿇으려 했죠. 그때, 그의 발이 그만 옷자락에 걸리고 말았고, 후마윤은 그대로 계단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비둘기를 보러 올라가다 실족사한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얄궂고 허망한 운명이었습니다. 그것이 정말 그가 믿었던 신의 뜻이었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렇게 후마윤은 신, 그리고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듯, 후마윤은 온갖 과제와 위협이 산재한 미완성된 나라를 어린 아들 악바르에게 물려주어야만 했죠.


Tomb_of_Humayun,_Delhi.jpg 후마윤의 묘는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일 무굴의 마지막 황제가 영국군을 피해 이곳에 숨었다가 붙잡혔다. 이곳은 후마윤 개인의 끝과 제국의 끝을 함께한 곳이었다.


델리에 있는 후마윤의 묘는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야말로 '이국적인' 미를 물씬 풍기는 건물입니다. 아버지 바부르의 묘가 그랬듯 그의 묘 역시 사방에 나무를 심고 물길을 터서 정원을 조성하였습니다.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낙원'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본따려고 노력한 결과물이었죠. 인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타지마할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그의 묘 역시 세계적으로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후마윤이 죽은 뒤 나라를 크게 발전시킨 아들 악바르는 아마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신의 곁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마지막을 그렇게라도 위로하여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이미지 출처

1. 바부르와 후마윤 부자(https://en.wikipedia.org/wiki/Mughal_Empire)

2. 셰르 샤 수르(https://en.wikipedia.org/wiki/Sher_Shah_Suri#/media/File:Painting_of_Sher_Shah_Suri_(colored)_from_a_manuscript_of_Tarikh-i-Khandan-i-Timuriya,_prepared_by_the_court_painters_of_Mughal_emperor_Akbar,_circa_16th_century.jpg)

3. 사파비 황제 타흐마스프와 무굴 황제 후마윤(https://en.wikipedia.org/wiki/Humayun#/media/File:Tahmasp,_Humayun_Meeting.jpg)

4. 동생을 물리치는 후마윤(https://en.wikipedia.org/wiki/Humayun#/media/File:Humayun_finally_defeated_his_rebellious_brother_Kamran_in_Kabul_in_1553.jpg)

5. 악바르와 재회하는 후마윤(https://en.wikipedia.org/wiki/Humayun#/media/File:The_Emperor_Humayun_Returning_from_a_Journey_Greets_his_Son.jpg)

6. 후마윤 묘(https://en.wikipedia.org/wiki/Humayun%27s_Tomb#/media/File:Tomb_of_Humayun,_Delh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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