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뉘우치는 것

어느 선비의 과거시험 답안지에서 보는 '과유불급'

by 서창현
처음에 잘못을 하였더라도 마지막에 고칠 수 있다면,
잘못을 고친 행위를 귀하게 여길 뿐 감출 필요가 없다.


조선 후기의 이름난 학자인 농암 김창협(1651~1708)이 과거시험 때 쓴 답안의 일부입니다. 어떤 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예기》 <단궁편>에 나오는 옛날 이야기 한 편을 논하면서 이런 문장을 썼죠.


그 이야기는 증자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증자는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효심이 매우 지극했다고 하죠. 증자가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게 되자, 증자의 제자들이 모여들어 그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때 증자를 모시던 어린아이 한 명이 증자가 깔고 있던 대나무 방석이 예에 걸맞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증자가 깔고 있던 대나무 방석은 중국 노나라의 대부 계급이었던 계손씨라는 사람이 선사한 것이었죠. 아무리 학식과 효심이 뛰어나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증자라 해도, 대부에 비해 낮은 계급이었던 증자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보다, 그리고 조선시대보다도 훨씬 엄격한 계급제 사회였던 당시 중국의 법도였죠. 예법을 준수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내용이었고 말이죠.


겨우 대나무 방석 하나 가지고?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한테 그런 것을 지적하다니'라는 생각이 드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증자는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자마자 즉시 제자들에게 자신을 부축하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끝끝내 일어나서 자신이 깔고 앉았던 대나무 방석을 치웠고, 그러고 나서야 숨을 거두었죠.


공자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이 곧 세상의 진리였던 유교 문화권이었기에, 증자의 이 행동을 가지고도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에서 수많은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증자의 '잘못'을 들어 그의 도덕성이나 자질 등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증자의 저 행위가 애초에 잘못도 아니라는 사람들도 많았죠.


김창협은 증자의 저 행위 자체는 분명한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겨우 대나무 방석 하나 잘못 썼다고' 할지라도, 당시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명백한 과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증자가 공자에 버금가는 어진 인물이었고, 또 죽음을 앞둔 노쇠한 상황이었을지라도 말이죠. 하지만 김창협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증자가 잘못을 했냐 안 했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썼죠.


증자는 병세가 위중하여 곧 숨이 끊어질 상태라 더 이상 잘못을 고칠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놀라서 깨달음을 얻고, 제자들이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당장 (대나무 방석을)들어내어 바꾸었다. (증자의 행동은)마치 여울물이 만 길이나 되는 골짜기 밑으로 거침없이 떨어져내리는 것과 같았다.


김창협은 증자의 행동을 '잘못을 고치는 데 털끝만큼도 인색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증자의 잘못은 '드넓은 하늘에 떠 있는 조그만 구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잘못조차도 깨닫자마자 즉각 말끔하게 지워버리는 증자의 행위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죠.


그런 김창협이 보기에, 다른 사람들의 왈가왈부는 핵심에서 한참 엇나간 것들이었습니다. 김창협은 증자의 조그만 잘못 하나를 '꼬투리잡아' 증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정상이 아닌' 자들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하였죠. 하지만 그렇다고 증자의 잘못 자체를 숨기려는 것을 옹호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나쁜 의도로 증자의 잘못을 '가리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로 그의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공자의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어질기로 이름 높았던 증자에게 '누'를 끼칠까 조심스러웠던 사람도 있었겠죠. 앞서 보았듯 조그만 잘못을 가지고 증자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세상 학자들은 잘못이 하나 있으면 그것을 가리고 숨겨서 합리화하려고만 하고, 잘못을 고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조그만 실수로도 커다란 덕에 누를 끼치며, 처음에는 잘못이었던 것도 끝내 악이 되고 만다.


김창협은 사람들이 전부 핵심을 벗어난 것에 얽매여 말장난이나 치기 때문에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죠. 그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가지는 문제점을 비판하고 그 위에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면서, 마지막으로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하며 자신의 글을 마무리하였습니다.


DSKT298266_01 (1).jpg 영화 《남한산성》(2017)의 김상헌(김윤석 분). 김창협의 증조부 김상헌은 이른바 '척화론'의 대표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청나라의 대군 앞에서도 대쪽 같은 의리를 굽히지 않았던 증조할아버지 김상헌의 피를 물려받아서였을까요. 김창협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행위에 방점을 찍으며, 그것을 애써 부각시키거나 덮으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본받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창협의 관점은 어디까지나 성현의 도덕과 의리, 예의범절을 읽고 외우며 체득하는 것이 곧 좋은 성적이자 출세길이 되었던 조선시대였기에 나왔던 시각일 것입니다. 증자가 대나무 방석을 깔고 앉았던 것이 그가 살던 시대였기에 '잘못'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잘잘못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뉘우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구태여 부각시키며 폄하하거나 있는 잘못도 애써 가리고 덮으려는 왜곡의 위험성만큼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참 생각할 만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만큼만 하는 것. 다시 말해 '과유불급'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해주네요.


참고문헌

《농암집》 권25 잡저 中 <증자가 계손씨의 대나무 방석을 받았던 일에 대해 논함>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B&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0435A_0260_020_0080&viewSync=OT


이미지 출처

영화 '남한산성'의 김상헌(김윤석 분)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16137/own/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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