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인도

3편-조상은 파괴하고 후손이 재건한 문화의 용광로 델리

by 서창현
Location_map_India_Delhi_EN.svg.png 델리는 우리나라의 서울이나 경주처럼 수백 년 넘게 인도 역사의 중심지였다. '올드델리(사진에서는 그냥 Delhi)', 현 인도 공화국 수도인 '뉴델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델리는 '뉴델리'와 '올드델리' 등으로 이루어진 '수도 직할구'입니다. 현재의 수도인 '뉴델리'는 영국이 인도에 진출하면서부터 중심지로 부각되었고, 오늘날 인도 공화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수도로 삼고 있는 도시죠. 하지만 '올드델리' 역시 인도 왕조들의 수도로 사용되었던 역사 깊은 도시입니다.


현재도 전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도이지만, 과거에도 인도 아대륙에 세워진 여러 나라들은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델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죠.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북인도의 힌두교 세력들을 물리치고 처음으로 인도 아대륙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 델리 술탄국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델리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14세기 중반 델리 술탄국을 지배하였던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1290?~1351)는 데칸 고원은 물론 인도 아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정복하면서 델리 술탄국을 강하게 만든 지도자였죠.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가 죽고 전성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델리 술탄국은 건재하였고, 그 수도였던 델리 역시 이름난 도시로 그 명성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런 델리의 부유함과 부강함은 곧 새로운 침략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바로 동서를 잇는 요충지 트란스옥시아나에서 내려온 몽골-튀르크계 기마민족이었죠. 이번 글에서는 대를 이어 수난을 당한 델리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Timur_reconstruction03.jpg 티무르는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는데, 'Tīmūr-i Lang(절름발이 티무르)'이 변형된 'Tamerlane'이라는 영칭으로도 유명하다. 사진은 소련 학자들이 복원한 두상


14세기 말, 몽골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중국에 세워진 원나라는 한족들에게 쫓겨나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야만 했죠. 비슷한 시기 고려에서도 몽골인들과 친원파들을 적극적으로 몰아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몽골의 지배 질서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몽골의 지배를 받아왔던 러시아 또한 자신들에게 지워진 멍에를 벗어던지기 위해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한편 칭기즈 칸의 자손들, 즉 여러 칸국들 사이에서도 내전이 일어났죠. 이러한 혼란기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티무르(1336-1405)였습니다.


티무르는 현 우즈베키스탄에 속하는 도시이자, 실크로드의 주 거점 중 하나인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하여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죠. 그는 자신에게 맞서는 이들을 모두 꺾어 나갔습니다. 몽골 칸국들은 물론 페르시아의 여러 왕국들도 모두 그에게 패배했죠. 그는 자신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금장 칸국의 토크타미시 칸을 리투아니아로 쫓아내고 금장 칸국의 수도였던 사라이 등 주요 도시들을 초토화시킨 뒤 인도로 눈을 돌렸습니다. 1398년 9월 30일, 티무르는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인더스 강을 넘어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칭기즈 칸과 비슷하게, 티무르 역시 정복한 지역의 사람들을 아주 잔혹하게 학살하고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방식을 활용하였습니다. 인도의 여러 도시들도 예외는 아니었죠. 티무르의 군대는 물탄 등의 주요 도시들을 파괴하고 거주민들을 학살하면서 거침없이 전진했습니다. 인도 귀족들 대다수는 그에게 맞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죠. 라지푸트 지역의 왕 한 사람이 델리의 서쪽에 있는 바트너라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티무르에게 맞서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자신은 물론 병사들까지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티무르는 아예 바트너를 초토화시키고 곧장 델리로 진격했죠.


Timur_defeats_the_sultan_of_Delhi.jpg 델리 술탄국의 군대를 무찌르는 티무르 제국군. 이 전투의 패배 이후 델리는 처절히 파괴당한다.


델리 술탄국은 이처럼 북인도 지역을 휘젓는 티무르의 군대를 전혀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티무르의 군대가 델리에 접근하고 나서야, 당시 술탄이었던 나시르 웃딘 마흐무드 샤 투글루크는 군대를 이끌고 티무르에게 맞서 싸우려고 하였습니다. 티무르가 인도로 들어온 지 3달 남짓 된 1398년 12월 17일의 일이었죠. 티무르는 델리 술탄국의 군대와 교전하기 전, 인도 침공에서 사로잡았던 노예들이 델리 술탄국의 군대에 호응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조리 처형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는 10만 명에 달한다고 전해집니다.


주로 기병으로 이루어진 티무르의 군대는 곳곳에서 승승장구한 강군이었지만, 델리 술탄국의 군대를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델리 술탄국의 코끼리였죠. 델리 술탄국의 코끼리들은 온몸에 사슬로 만든 갑옷을 두르고, 상아에는 독을 발라서 더더욱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고 합니다. 제아무리 노련한 군인들이라고 해도, 몇 배는 크고 강력한 코끼리 군대를 정면으로 물리칠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티무르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그는 델리 술탄국 군대의 핵심인 코끼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전술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진영 앞에 참호를 파서 코끼리의 돌진을 방지하고, 낙타들에 나무와 짚을 잔뜩 싣게 하였죠. 그리고 인도의 코끼리들이 돌격해 오자, 낙타의 등짐에 불을 붙인 뒤 코끼리들이 오는 방향으로 달려나가게 했습니다. 졸지에 불을 뒤집어쓰게 된 낙타들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으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고, 그 모습을 본 코끼리들은 겁에 질려서 왔던 방향으로 달아났습니다. 겁을 먹고 달아나기 바쁜 코끼리들은 그 기수들조차 통제하지 못했고, 코끼리들은 델리 술탄국 군대로 뛰어들면서 마구잡이로 대열을 휘저어 놓았죠. 자기 무기에 당하게 된 델리 술탄국 군대는 혼란에 빠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티무르 군대의 공격을 받아 허무하게 패배하였습니다.


델리 술탄 마흐무드 샤 투글루크는 목숨을 건져 달아날 수 있었지만, 술탄국의 수도 델리는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다른 도시들이 그랬듯 델리의 주민들도 티무르의 군대에게 학살당했죠. 티무르의 군대는 델리 곳곳을 돌며 보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사로잡았습니다. 델리 시민들은 봉기를 일으켜 저항했지만 사흘 만에 진압당했죠. 도시 곳곳이 시체 썩는 냄새로 진동했고, 티무르의 병사들은 시민들의 머리를 잘라 탑을 쌓고 몸은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내팽개쳤다고 전해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 중 하나였던 델리는 이후 100년 넘는 시간 동안 그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델리 술탄국은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티무르가 정복한 땅을 지배하기보다는 그곳에서 재물을 약탈하거나, 예술가 등을 사로잡아 사마르칸트로 보내 자기 제국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을 선호해서였다고 생각됩니다.


Babur_of_India.jpg 바부르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차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우즈벡의 샤이바니 칸에게 번번이 패배해 쫓겨나고 자신의 근거지마저 잃어버린 뒤 인도로 진출하게 된다.


티무르가 죽은 후 그의 제국은 후계자들의 내분과 우즈벡인의 침입 등으로 분열되고 몰락했습니다. 티무르의 후예들 중 한 사람인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1483-1530)는 우즈벡인들로부터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를 되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여러 차례 실패하였습니다. 본명보다는 흔히 '호랑이'라는 뜻의 '바부르'로 더 잘 알려진 그는 결국 트란스옥시아나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바로 인도였죠.


바부르는 델리를 포함한 북인도 전체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조상(바부르는 티무르의 현손, 즉 손자의 손자입니다) 티무르가 정복한 '유산'이라는 이유였죠. 당시 델리 술탄국을 다스리던 술탄 이브라힘 로디는 당연히 바부르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바부르는 내분으로 어지러웠던 델리 술탄국을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인도를 침략했지만, 이브라힘은 바부르와 내통한 자신의 삼촌들을 재빨리 공격해 물리친 다음 이를 모르고 남하하던 바부르의 군대까지 기습해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1526-First_Battle_of_Panipat-Ibrahim_Lodhi_and_Babur.jpg 바부르는 이브라힘 로디의 대군에 맞서, 당대 최신 무기였던 화승총과 대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파니파트에서 대승을 거둔다.


바부르는 이브라힘과 결판을 짓기 위해 델리로 진군하였고, 이브라힘의 군대 역시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두 군대는 1526년 4월 20일, 델리 북쪽 파니파트라는 마을에서 마주쳤습니다. 바부르의 군대는 1만에서 2만 정도였지만, 델리 술탄국의 군대는 수만 명의 기병과 보병으로 몇 배가 넘었습니다. 게다가 1000마리의 코끼리까지 있었죠.


조상인 티무르 역시 전장에서 오랫동안 단련되었던 정예 병력을 데리고 있었음에도 코끼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꾀를 내어야만 했었죠. 바부르는 이미 우즈벡인들에게 여러 차례 패배를 당하고 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에서 겨우 자리를 잡은 처지였기에 어찌 보면 티무르보다도 훨씬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티무르가 그랬듯, 바부르 역시 계책이 있었죠.


바부르의 군대는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파니파트 마을을 끼고 진을 쳤습니다. 적에게 노출된 좌측은 티무르가 그랬듯 참호를 파고 목책을 쳐서 적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막았고, 정면으로는 700대의 수레를 밧줄로 묶어서 늘어놓아 벽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신 무기를 최대한 활용하였죠. 바로 화승총이었습니다. 바부르는 화약 무기의 가능성에 일찍부터 주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웃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은 화약 무기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웃나라였던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를 물리칠 때도 화약이 큰 활약을 했고, 비잔티움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 때도 활용한 바 있었죠. 바부르는 오스만으로부터 화약을 적극 도입하여 자신의 병사들을 무장시켰습니다. 그의 조상 티무르가 오스만 제국을 앙카라에서 대파하고, 술탄 바예지드 1세를 사로잡으면서 오스만에 큰 굴욕을 안겨주었던 사실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한 이야기죠. 어쨌든 그는 오스만으로부터 도입한 총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조건에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바부르가 적의 접근을 차단하는 방벽을 갖춘 것은 적의 진입로를 좁혀서 수적 열세를 만회함과 동시에, 장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화승총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도 해주었습니다.


Elephant_and_driver,_probably_from_the_Mughal_Emperor's_stable_with_a_hunting_howdar,_including_pistol,_bows_and_a_rifle.jpg 코끼리는 한니발부터 인도, 동남아 군주들까지 많은 이들에게 전투용으로 애용됐다. 주로 '하우다'라 불리는 탑에서 병사들이 공격하는 식으로 싸웠다. 이미지는 무굴제국 코끼리로 추정.


바부르의 군대는 적을 향해 총과 포를 발사했습니다. 화약 무기에 익숙치 않았던 이브라힘의 군대는 총포가 발사되는 굉음에 크게 동요하였죠. 특히 코끼리들은 100여 년 전 불타는 낙타를 봤을 때처럼 겁에 질려 난동을 부렸다고 전해집니다. 티무르와 바부르는 겁이 많고 사람이 통제하기 어려운 코끼리의 약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죠. 바부르의 진형이 아주 촘촘하게 잘 갖추어져 있어 접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브라힘은 군대를 재배치하여 바부르군의 틈새를 다시 뚫고 들어오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의 군대가 진형을 옮기느라 흐트러지자, 오히려 바부르의 군대가 빈틈을 뚫고 들어와 역습을 가했습니다. 이브라힘의 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와해되었고, 이브라힘 역시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죠.


파니파트 전투가 끝나고 델리는 바부르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티무르가 불러온 참상에서도 살아남았던 델리 술탄국은, 120여 년 후 그 후손인 바부르에게 멸망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죠. 바부르는 티무르와 달리 델리를 파괴하거나 약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곳을 새 터전으로 삼아서 자신의 나라를 세웠죠. 그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북인도의 다른 세력들까지 무너뜨리면서 자신의 나라를 제국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바부르가 새로 세운 나라의 이름은 '구르카니'였습니다. 페르시아어로 '사위'를 뜻하는 이 말은, 바부르의 조상 티무르가 스스로를 칭기즈 칸 혈통의 '사위', 즉 부마임을 내세웠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티무르는 칭기즈 칸의 후예로 알려진 여성과 결혼하여 스스로를 몽골 제국의 '사위'라고 칭하곤 했습니다. 그 후손 바부르 역시 이를 활용한 것이리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본명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보다도 별명 '바부르'가 더 유명한 창건자를 닮아서인지, 구르카니 또한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에서 '몽골'을 부르는 이름인 '무굴'이죠. 바부르와 그 후손들 역시 스스로의 역사적 정통성을 몽골 제국으로부터 찾는 경향이 강했으므로 이 이름이 더 유명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무굴 제국은 자신이 꺾었던 델리 술탄국의 뒤를 이어 인도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전성기 때는 스리랑카와 인도 남단 일부를 제외한 인도 아대륙 전체를 모두 석권하기도 했죠. 경제적으로도 중국과 함께 세게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며, 1750년까지 전 세계 공업 생산량의 1/4 가까운 비중을 담당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문화적으로는 오늘날까지도 인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명소 타지마할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죠.


Humayun's_Tomb,_Delhi,_India_2019.jpg 바부르의 장남인 무굴 2대 황제 후마윤의 영묘. 타지마할 등과 마찬가지로, 무굴의 영묘들은 중앙아시아와 이슬람, 힌두의 예술이 모두 결합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델리 역시 무굴 제국의 수도 중 하나로서 티무르의 침공으로 인한 참상을 딛고 세계적인 도시 중 하나로 발돋움하였습니다. 무굴 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의 영묘, 붉은 성채 등 수많은 유산들이 지금도 델리에서 제국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굴 제국은 델리 술탄국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였지만, 스스로를 몽골의 후예라 칭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몽골, 그리고 중앙아시아 튀르크족의 정체성 역시 강했죠. 무굴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티무르 제국 또한 문화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이루고 한때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고, 무굴은 이를 인도의 힌두계 문화와 융합하여 더 개성 있고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델리는 기존의 힌두 문화에 더해 델리 술탄국이 가지고 들어온 이슬람 문화, 그리고 무굴이 가져온 티무르 제국의 문화까지 융합된 '문화적 용광로'가 된 셈이죠.


지금까지 '다이나믹'한 인도라는 주제로 글을 써왔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델리는 가장 역동적인 역사를 지닌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슬람의 침공과 티무르의 파괴를 겪고, 무굴 제국의 중심지로 새로이 떠오르기도 했으며, 유럽 열강의 침공과 식민지배라는 시련을 거친 뒤 오늘날의 인도 공화국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변혁의 중심에 선 지역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인도는 지금도 수많은 인구, 발전된 산업, 발리우드를 위시한 독자적이면서 개성적인 문화 등등 수많은 강점을 지닌 나라이므로, 앞으로도 세계를 보다 '다이나믹'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미지 출처

1. 델리 지도(https://en.wikipedia.org/wiki/Lotus_Temple#/media/File:Location_map_India_Delhi_EN.svg)

2. 티무르의 두개골을 토대로 복원한 흉상(https://en.wikipedia.org/wiki/Timur#/media/File:Timur_reconstruction03.jpg)

3. 티무르와 델리 술탄국의 전투를 묘사한 작품(https://en.wikipedia.org/wiki/Timur#/media/File:Timur_defeats_the_sultan_of_Delhi.jpg)

4. 바부르(https://en.wikipedia.org/wiki/Babur#/media/File:Babur_of_India.jpg)

5. 무굴 제국 전투 코끼리로 추정되는 묘사도(https://en.wikipedia.org/wiki/War_elephant#/media/File:Elephant_and_driver,_probably_from_the_Mughal_Emperor's_stable_with_a_hunting_howdar,_including_pistol,_bows_and_a_rifle.jpg)

6. 후마윤 영묘(https://en.wikipedia.org/wiki/Mughal_architecture#/media/File:Humayun's_Tomb,_Delhi,_India_201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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