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경 Oct 07. 2017

철학을 참칭하더라도 철학이 아닌 것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에 대한 최진석 교수의 오해 또는 왜곡

철학은 많은 오해를 받는다. 가령 삶에 대해서 좀 심각하게 고민하기만 하면 그게 곧 철학이라는 식의 오해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철학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흔하진 않으니까. 그렇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다는 사람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서강대 철학과에 적을 둔 최진석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중 "철학을 공부하려면 책 싸들고 도서관에 틀어 박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대답보다는 질문에 애쓰고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야말로 가장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을 만나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박하게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소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철학과 인문학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오해를 바로잡지는 못할 망정 도리어 퍼뜨리고 앉아 계신다. 기자가 정확히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철학을 공부하려면 책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는 말은 오해가 아니다.

철학 공부는 원래 책 읽으면서 하는 게 맞다. 그것도 아주 많이. 책 없이 무슨 공부를 하나? 철학 공부를 예외로 볼 이유가 없다. 진짜 오해는 이 당연한 말을 구태여 하게 만든 바로 그것이다. 철학은 마땅히 책을 읽지 않고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 그게 오해다.


책을 읽는 일이 뭐가 그렇게 문제라서 한사코 철학은 그런 게 아니라고 강변을 하는 걸까? 독서는 단순히 쓰인 글귀를 외는 고리타분한 일이 아니다. 그런 건 앵무새도 한다. 철학서를 제대로 읽는 사람은 언제나 치열한 사유를 함께 한다. 그래서 철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은 철학을 공부하는 모습이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는 모습으로 이해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게 "대답보다는 질문에 애쓰"는 사람의 말이라면 좀 실망스러울 것이다. 차라리 "소비자의 동선을 파악"하여 내놓은 답변이라면 이해가 쉽다. 요즘은 누구나 책 한 번 들춰보지 않고도 인문학적 소양을 쌓게 해준다는 일회용 강연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은가? 철학자도 아닌 기업 경영자가 "가장" 철학적이라는 발언도 이렇게 볼 때 설명된다.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철학과에서는 대관절 무얼 하시는지 궁금해서 해 보는 소리다.


철학이 무어라고 분명히 말할 자신이 없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든 허수아비가 거저 철학이 되진 않는다. 그건 이 허수아비가 "철학"이란 상품명을 달고 불티나게 팔려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이전글 애매함과 모호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