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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Jun 29. 2020

유사성에 근거한 논증

귀납 논리 #3

유사성에 근거한 논증


화성과 외계인, 둘은 언제나 창작물에서 가깝게 그려집니다. 화성엔 외계인이 살 것만 같고, 외계인이 나타나면 화성 출신일 것만 같은 인상을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을 거예요.

화성은 달과 함께 가장 많은 탐사가 이루어지는 천체죠.

이런 설정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화성이 (적어도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 비해서는) 지구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지구와 마찬가지로)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화상 탐사 결과는 언제나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물의 흔적 따위에 초점이 맞춰지죠.

외계인이 화성에 거주한다는 설정을 채택한 영화들

아직 화성에서 생명체가 발견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화성에도 생명이 있을 것이란 (혹은 적어도 있었을 것이란) 추측도 과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진 않았죠.

[화성 논증]

화성은 지구와 유사하다.
지구에는 생명체가 존재한다.
∴ 화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

이런 논증은 기실 어느 정도는 올바른 것 같아요.

화성의 평균 기온은 -60°C쯤 된다고 합니다. 춥지만 생존이 완전히 불가능할 것 같진 않네요. 또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그리고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이지만,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평균 기온이 -200°C보다 낮은 해왕성보단 살만하겠죠?


[해왕성 논증]

해왕성은 지구와 유사하다.
지구에는 생명체가 존재한다.
∴ 해왕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

그래서 해왕성 논증은 화성 논증보다 덜 올바른 듯 보여요.
물론 해왕성도 같은 행성인 지구와 닮은 구석이 아예 없진 않겠죠. 그렇다고 딱히 결론에 힘이 실리는 것 같진 않네요.

런 논증이 바로 유사성analogy에 근거한 논증에 해당합니다.
귀납 논증이죠. 올바르더라도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까요.

물론 화성 논증은 꽤 올바르고, 해왕성 논증은 그다지 올바르지 않습니다.


유사성 논증의 형식


유사성에 근거한 논증은 대강 이런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A는 F 속성을 갖는다.
A와 B는 유사하다.
∴ B도 F 속성을 갖는다.

혹은 정확히 어떤 측면에서 유사한지를 밝혀주기 위해 좀 더 자세히 쓸 수도 있어요.

A는 F 속성을 갖는다.
A는 G, H 등의 속성도 갖는다.
B도 G, H 등의 속성을 갖는다.
∴ B도 F 속성을 갖는다.


사성 논증을 마주한 우리의 자세 


유사성에 근거한 논증이 강한지 혹은 약한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됩니다.


[1] 그 둘이 정말 비슷하긴 해?


사실 이건 논증의 올바름을 문제시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A와 B가 유사하다"는 전제를 의심하는 거죠. 만약 이 전제가 거짓이라면 이 논증은 불건전unsound하다고 볼 수 있겠죠.

이 기계는 때리면 말을 듣는다.
이 기계와 이 아이는 유사하다.
∴ 이 아이도 때리면 말을 듣는다.

가전제품과 사람이 대체 어떤 점에서 비슷하다는 걸까요? 이 논증에서 가장 의심받기 좋은 건 "이 기계와 이 아이는 유사하다"는 전제입니다. 정확히 어떤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인지 들어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대개 이 전제는 거짓일 것이라 보는 게 자연스럽겠죠?

인간에게 초콜릿은 위험하지 않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다.
강아지도 두 발로 걷는다.
∴ 강아지에게도 초콜릿은 위험하지 않다.

이런 논증에선 세 번째 전제를 거짓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죠? 강아지는 네 발로 걸으니까요.


[2] 비슷한데 뭐 어쩌라고?


사실 유사성 논증 자체를 공격하는 건 이런 질문입니다. "A와 B가 유사하다"는 전제를 포함한 모든 전제가 참이더라도 이들 전제가 결론을 지지해주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이죠.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양화 <테이큰>과 <클레멘타인>에 대해 누군가 이런 논증을 펼친다고 생각해보시죠.

<테이큰>은 재밌다.
<테이큰>은 납치된 딸을 구출하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클레멘타인>도 납치된 딸을 구출하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 <클레멘타인>은 재밌다.

두 영화는 분명 유사합니다. 같은 소재를 다루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영화의 재미와 크게 관련이 있을까요? 같은 소재를 다룬다고 재미난 정도가 같지는 않겠죠? 만약 그렇다면 조폭 영화는 죄다 꿀잼이거나 노잼이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꿀잼 조폭 영화도 있는 반면, 노잼 조폭 영화도 많죠.


실제로 <테이큰>은 꽤나 좋은 평을 받았지만 <클레멘타인>은

한마디로 소재는 재미와 관련성relevance이 별로 없습니다. 러닝 타임, 국적, 주요 언어 등도 마찬가지겠고요.
재미와 관련하여 두 영화가 유사하다면 그건 감독, 제작 비용, 주연 배우, 줄거리, 평점 등의 측면에서 그렇겠죠. 이런 게 똑같거나 비슷하다면 어느 한 영화가 재밌을 때 다른 영화도 재밌을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생쥐에게 인슐린을 투여하면 혈당 수치가 감소한다.
생쥐와 인간은 유사하다.
∴ 인간에게도 인슐린을 투여하면 혈당 수치가 감소한다.

이런 논증이 올바른 것도 생쥐와 인간이 (비록 굉장히 많은 점에서 다르지만) 적어도 인슐린에 대한 혈당 반응에 관련해서는 비슷하기 때문이겠죠.

이 관련성의 크고 적음을 판단하기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령 화성 논증을 평가할 땐 천문학 지식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야 지구와 화성이 대기 구조 등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과 관련된 측면에서 유사한지, 그렇다면 얼마나 유사한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과학자들은 그래서 화성 논증을 내세울 때

화성은 지구와 유사하다.
화성은 둥글다.
지구도 둥글다.
∴ 화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

이처럼 두 행성의 유사성을 둥글다는 데에서 찾지 않고,

화성은 지구와 유사하다.
지구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다.
화성에도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다.
∴ 화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

이렇게 액체 상태의 물과 같이 생명체의 존재와 관련 있는 속성을 언급하겠죠.


그런데 어떤 것들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건 정확히 무슨 말일까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된다는 걸까요? 둘이 서로 공통된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높은 양적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걸까요? 혹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설명해주는 관계? 이걸 논의하자면 또 다른 날을 기약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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