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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Jun 15. 2020

열거법은 올바른 논증 방식인가?

귀납 논리 #2

가축들은 자신들에게 주로 먹이를 주는 사람을 보면 먹을 게 떨어질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먹이가 주어질 것이란 이 허접한 기대는 결국 무너질 거란 걸 우린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갓 태어난 병아리 시절부터 매일매일 닭에게 모이를 주던 사람도 결국은 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게 될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철학의 문제들』



귀납은 애당초 올바른 논증이 아니다


닭이 모이를 하루 이틀 받아먹은 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비가 세차게 내린 날이라든가 폭염이 찾아온 날 등 평균적인 날과는 너무 다른 날에만 모이를 받아먹은 것도 아니겠죠. 그러니까 닭이 관찰한 표본은 충분하고 대표성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모이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어도 괜찮았던 걸까요?

한 번쯤은 의심해야 했었다

집단 일반을 대표할 수 있는(=편향되지 않은) 표본을 충분히 관찰하고 난 뒤엔 얼마든지 그 표본이 대표하는 집단 전체에 대한 일반화를 해도 되는 걸까요?

그럼 안 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데이비드 흄이에요.


회의주의 끝판왕 데이비드 흄


지금까진 매일 해가 동쪽에서 떴습니다. 내일도 그럴까요? 아마 그렇겠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 거라 생각하는 건 이미 우리가 "이 세계는 미래에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한결같을 것이란 가정은 어디서 왔나요? 먼 과거에도 해가 동쪽에서 뜨는 걸 봤고, 가까운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해가 동쪽에서 뜨는 걸 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그뿐이죠. 미래에도 계속해서 그럴 것이란 증거는 없어요. 우린 그저 해가 서쪽에서 뜨는 아주 머나먼 미래를 보지 못한 게 아닐까요?



n일 전에 해가 동쪽에서 떴다.

그저께 해가 동쪽에서 떴다.
어제 해가 동쪽에서 떴다.
오늘 해가 동쪽에서 떴다.
∴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다.



수많은 과거 사례만으로는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란 결론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한결같다는, 그리하여 미래도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혹은 적어도 같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가 필요하죠.



n일 전에 해가 동쪽에서 떴다.

그저께 해가 동쪽에서 떴다.
어제 해가 동쪽에서 떴다.
오늘 해가 동쪽에서 떴다.
과거에 해가 떴다면 미래에도 해가 뜰 것이다 (혹은 뜰 가능성이 높다).
∴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다.



흄은 "과거에 해가 떴다면 미래에도 해가 뜰 것"이라는 이 한결같음uniformity에 대한 믿음을 의심합니다. 지금까지 한결같았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 한결같음이 한결같이 이어질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죠. 과연 지금껏 한결같았던 이 세상은 앞으로도 한결같이 한결같을까요?


마귀 역설


골 때리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앞에서는 과거 사례를 나열하는 것만으론 미래 사례를 추론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지금부터는 일부 개체에 대한 관찰 사례를 바탕으로 집단 전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도 올바른 논증 방식이 아니라는 주장을 다루어 볼 겁니다.

어느 시점까지 관찰되었던 모든 고니가 흰색이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니가 흰색이라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검은 고니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 알고 계시죠? 지금은 검은 고니를 뜻하는 "블랙 스완black swan"이란 말이 유례없는 충격적인 현상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죠.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블랙 스완의 존재 가능성, 그러니까 올바른 귀납 논증의 전제가 모두 참이더라도 결론이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원래 귀납이란 게 다 그런 거니까요.

검은 고니가 세상에 알려진 지금 우린 모든 고니가 흰색이라는 결론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까지 발견된 고니는 모두 흰색이다

∴ 고니는 모두 흰색이다



이 논증 자체는 올바르다고 생각하죠. 결론이 거짓이라도 논증은 올바를 수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어떤 철학자들은 이 논증 자체가 올바르지 않다고 봐요. 전제가 결론을 1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거죠.

어째서 그렇다는 걸까요?


까마귀 1은 검다
까마귀 2는 검다
까마귀 3은 검다
까마귀 4는 검다

까마귀 n은 검다
∴ 모든 까마귀는 검다


이 논증은 올바를까요?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은 물론 있습니다. 언젠가 태어날 하얀 까마귀가 아직까지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 살다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이 귀납 논증의 올바름을 깎아내리는 건 아니에요. 귀납 논증은 올바르더라도 그 결론이 거짓일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전제가 결론을 지지하는지 여부입니다. 까마귀한 마리 발견했는데 그게 검다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결론은 힘을 얻을까요?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런 관찰 사례가 어느 정도 쌓이면 이런 결론을 내세우는 게 정당하다고 보죠.

자, 이제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문장의 대우transposition를 써볼까요?

검지 않은 것은 모두 까마귀가 아니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문장(A)과 "검지 않은 것은 모두 까마귀가 아니다"는 문장(B)은 논리적 동치로써 어떠한 상황에서도 동일한 진리값을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전제가 A를 지지한다면, 그건 반드시 B도 지지해야 할 겁니다. A가 참일 개연성이 높아질 때는 반드시 B가 참일 개연성도 높아질 것이고, 반대로 A가 거짓일 개연성이 높아질수록(=참일 개연성이 낮아질수록) B 역시 거짓일 개연성이 높아질 테니까요.

그럼 "검지 않은 것은 모두 까마귀가 아니다"를 지지해주는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파란 양말, 초록 뱀, 갈색 머리, 흰 종이, 은빛 모래, 붉은 노을, 노랑 통닭, 보라색 액체 세제


너무나 많죠? 이것들은 모두 B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검지 않으면서 까마귀도 아닌 것들이니까요. 그렇다면 이것들은 A를 뒷받침하는 증거이기도 해야 하겠죠?
잠깐,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파란 양말이 도대체 어떻게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추론의 근거가 된다는 걸까요? 붉은 노을을 매일매일 관찰하면 우리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결론에 조금이라도 더 자신감을 갖게 되던가요?

응? 나 스펀지 밥이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가설의 증거라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은 이 지점에서 사례 열거가 다만 조금도 올바른 논증 방식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가요? 정작 이 까마귀 역설raven paradox를 제시한 과학철학자 칼 헴펠Carl Hempel은 흰 종이와 보라색 액체 세제도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결론을 검은 까마귀 개체와 동일한 수준으로 지지해주는 사례가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유한하므로 검지 않은데 까마귀도 아닌 것을 소거하면 아주 조금씩이나마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결론으로 기울게 되지 않느냐는 것이죠.

직관적으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 은빛인 것은 모래다(=이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 혹은 "이 갈색인 것은 머리다(=이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와 같은 문장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결론을 미세하게나마 지지하는 것 같나요? 아니면 전혀 지지하지 않는 것 같나요?


후자로 마음이 기울었다면, 그러니까 초록 뱀이나 노랑 통닭은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가설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보신다면 (혹은 적어도 검은 까마귀 개체만큼 강력한 증거는 아니라고 보신다면) 열거법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실 겁니다.


랑색(?) 에메랄드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은 좀 더 신박한 방식으로 귀납을 공격합니다. 이 아저씨는 먼저 grue을 이렇게 정의해요.


x는 초랑색이다 = x는 t 시점 전까지는 초록색이고, t 시점부터는 파란색이다


시점 t가 지금이라고 해보죠. 지금까지 발견된 에메랄드는 모두 초록색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상적인 열거법에 따르면 그 수많은 에메랄드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

라는 문장을 지지하는 동시에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다

라는 문장도 똑같이 지지합니다.

사실 에메랄드는 t 시점,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넘어서는 때부터 모조리 파란색으로 바뀔 예정이었다고 상상해봐요. 에메랄드가 초록색이 아니라 정말로 초랑색이라고요.
그럼 바로 지금까지, 그러니까 t 시점 전까지 발견된 개별 초록 에메랄드는 "모든 에메랄드가 초랑색임"을 제시하는 증거였던 셈이죠.

하지만 정말로 초록색 에메랄드 조각 하나하나가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라는 결론을 지지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겠죠?
(까마귀 역설 문제를 차치한다면) 초록 에메랄드 조각들을 보고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일 것"이라고 추론하는 건 직관적으로 옳아 보여요. 하지만 똑같은 관찰을 토대로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일 것"이라고, 그러니까 어느 시점부터 이 에메랄드가 죄다 파란색으로 돌변할 것이라고 추론하는 건 다만 조금도 옳아 보이지 않습니다.

초랑색이란 개념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색깔을 이렇게 복잡하고 인위적으로 (가령 특정 시점을 언급하는 식으로) 정의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굿맨은 이런 반감 그저 "초록색"과 "파란색"이란 표현에 익숙하기에 나타나는 것이라 말해요.

또 다른 색깔, bleen을 하나 정의해봅시다.


x는 파록색이다 = x는 t 시점 전까지는 파란색이고, t 시점부터는 초록색이다


그리고 "초록색"과 "파란색"이란 표현은 없고, 그 대신 "초랑색"과 "파록색"이란 표현이 있는 어떤 언어를 상상해보세요.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가령 "초록색"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럼 우린 이렇게 설명해줄 수 있겠죠.


x는 초록색이다 = x는 t 시점 전까지는 초랑색이고, t 시점부터는 파록색이다


이 언어를 쓰는 철학자는 초록색을 두고서 이렇게 의구심을 품을 겁니다. 색깔을 이렇게 복잡하고 인위적으로 정의해도 되는 건가?

우리가 색을 인식하는 방식이 유일한 방식일까?


이제 철학자들은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길은 열거법을 구출하는 길입니다. 열거 논증은 올바른 논증 방식이 맞다고 받아치는 거죠. 반면 어떤 사람은 열거 논증에 대해서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봅니다. 이건 그냥 올바른 논증 방식이 아니라는 거죠.
또 어떤 이들은 열거 논증이 그 자체로 무효하다는 점은 인정하되 귀납법이 통째로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가령 올바른 열거 논증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들이 올바른 건 단순히 대표성을 갖는 표본을 충분히 열거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요.

싫으나 좋으나 우리는 귀납 논증을 펼치고, 또 귀납적으로 추론하며 살아갑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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