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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May 22. 2020

열거를 통한 논증

귀납 논리 #1

귀납 논증은 (연역 논증과 달리) 올바르다 하더라도 전제의 참으로써 결론의 참을 100% 보증하지 않습니다. 전제가 모두 참이더라도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은 열려 있죠. 그저 결론이 참일 개연성이 높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연역 논증과 마찬가지로 귀납 논증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열거법

탈레스는 죽었다
피타고라스는 죽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죽었다
아낙사고라스는 죽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죽었다
제논은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중에서도 이런 걸 열거enumeration라고 불러요.

어떤 집단의 일부 개체에 대한 전제로 그 집단의 개체 전부 (혹은 보다 많은 일부 개체)에 대한 결론을 뒷받침하고자 하는 논증이죠.

특정 인간 몇몇이 죽는다는 속성을 가졌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모든 인간이 이 속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추론하는 겁니다.

이 햄버거가 다 맛있다면 곧 나올 다른 햄버거도 맛있겠지

꼭 고유 명사를 쓰면서 일일히 표본sample에 속한 개체를 다 언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열거 논증을 나타낼 수도 있어요.

A은행 B지점이 보유한 동전에서 임의로 추출한 표본에서 80%가 2000년 이후에 주조된 것이다
∴ A은행 B지점이 보유한 모든 동전 중 80%가 2000년 이후에 주조된 것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대한민국 국민 1,000명 중 84%가 개헌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대한민국 국민 84%가 개헌에 반대한다
C공장에서 제조되는 자동차용 배터리 중 약 5%를 임의로 선택하여 검사하였더니 약 0.6%가 불량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 C공장에서 제조되는 자동차용 배터리는 약 0.6%가 불량품이다.
집사는 n일 전에 나에게 밥을 주었다.

집사는 그저께 나에게 밥을 주었다.
집사는 어제 나에게 밥을 주었다.
집사는 오늘 나에게 밥을 주었다.
∴ 집사는 내일도 나에게 밥을 줄 것이다.


올바른 혹은 올바르지 않은 열거 논증


열거 논증은 연역 논증이 아니기 때문에 올바름에 정도가 있습니다. 더 혹은 덜 올바를 수 있다는 것이죠. 열거 논증의 올바름은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요?

복권 1, 복권 2 (…) 복권 538까지 모두 1등 당첨이 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영영?

[1] 표본이 충분한가?


표본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집단 전체에 대한 일반화를 할 땐 그 표본의 크기가 충분히 커야 합니다.


은행이 보유한 동전 중 딱 5개만 보고서 그중 4개가 2000년 이후에 주조된 것이니 그 은행이 보유한 모든 동전의 80%가 2000년 이후에 주조된 것이리라 말해선 안 되겠죠?

고작 12명 붙잡고 개헌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후 국민 일반의 여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도 안 되고요.

귀찮아서 배터리 2개만 검사해봤더니 멀쩡해서 이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의 불량률이 0%이라고 보고해서도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딱 오늘 하루만 나에게 밥을 챙겨준 집사가 내일도 똑같이 은혜(?)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곤란하겠죠.


[2] 표본에 대표성이 있는가?


집단 일반과는 너무나 다른(=편향된) 표본을 관찰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집단 전체에 대한 일반화를 해서도 안 됩니다.


은행이 만약 동전을 주조 시기에 따라 보관한다고 생각해보죠. 그럼 특정 위치에 모아둔 동전만을 조사한다면 그 표본이 아무리 크더라도 동전 전체에 대한 일반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 표본 동전 100개 모두가 2000년 이후에 주조된 것이더라도 이 은행이 보유한 다른 동전 10만 개가 2000년 이전에 주조된 것일 수 있잖아요?

개헌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가 특정 지역민 혹은 특정 연령층에 대해서만 이루어진다면 이 역시 전반적인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참고자료로서 가치가 없을 겁니다.

배터리 불량 검사 대상을 임의로 고르지 않고 공장이 문 닫기 전에 나온 마지막 100개 정도만 조사한다면 어떨까요? 기계가 하필이면 오후 늦게 고장이 나는 바람에 그 100개 모두 불량으로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전에 생산된 배터리는 멀쩡하더라도 말이죠.

집사가 매주 불금과 불토를 보내느라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는 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외에는 꼬박꼬박 밥을 챙겨주는 반면에 말이죠. 주말에 집사가 끼니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 집사는 아마 월요일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밥을 해주지 않을 거라 결론 내려선 안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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