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은 결론이 되는 하나의 문장과 전제로서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제시된 문장(들)의 집합입니다. 그런데 이 논리적 뒷받침은 한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아요.연역deduction과 귀납induction의 차이는 바로 전제가 어떤 방식으로 결론을 지지하려 하는지에서 비롯됩니다.
연역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귀납
탈레스는 죽었다
피타고라스는 죽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죽었다
아낙사고라스는 죽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죽었다
제논은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 모든 인간은 죽는다
나 좀 그만 죽여라. 식상하지도 않냐?
[2] 전제는 결론을 어떻게 지지하려 하는가
첫 번째 논증에서는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도 필연적으로necessarily참입니다. 전제가 모두 참일 때 결론이 거짓인 것은 불가능해요. 만약 결론이 거짓이라면(=소크라테스가 불사의 존재라면) 전제 중 최소 하나는 거짓일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사실은 인간이 아니거나, 죽지 않는 인간이 존재하거나. 혹은 둘 다.
(1) 소크라테스가 인간이고 (2) 모든 인간이 죽는다면, 소크라테스는 언젠가 반드시 죽겠죠?이럴 경우 전제가 결론을 연역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말합니다. 올바른 연역 논증이죠.
연역 논증이 모두 올바른 건 물론 아닙니다. 전제가 결론을 연역적으로 뒷받침하도록 의도되었지만, 실제로는 뒷받침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럴 경우엔 올바르지 않은 연역 논증이 성립하겠죠?
비가 오면 공연은 취소된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
∴ 오늘 공연은 취소되지 않는다
이건 연역 논증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겁니다.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도 반드시 참이 되는 논증으로서 제시된 것이라 본다면요. 하지만 전제가 모두 참인 경우에도 여전히 결론은 참이 아닐 수 있죠? 비가 아닌 다른 이유로 공연이 취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요. 전제가 결론을 실제로 지지하지는 않는 거죠. 그래서 올바르진 않습니다.
두 번째 논증은 좀 달라요. 여기서는 전제가 모두 참인 경우에도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전제의 참이 결론의 참을 담보하지 않아요. 최근에 죽지 않는 인간이 처음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고, 죽지 않는 인간이 깊은 산속에 숨어 살 수도 있으니까요. 검은 고니black swan 이야기 다들 아시죠? 고니를 아냐고요? 제가 아는 타짜 중에 최고였어요.
그래도 결론이 참일 개연성은 높아 보이죠? 전제가 모두 참이라면 결론은 개연적으로probably 참입니다. 그저 참일 개연성이 높다는 거죠. 저 많은 인간들이 정말 다 죽었다면 아마도 모든 인간은 결국 죽는 거겠죠? 이럴 때는 전제가 결론을 귀납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해요.
지금껏 관찰된 수많은 고니가 하얗다는 말로 모든 고니가 하얗다는 걸 100% 담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3] 연역적 올바름, 귀납적 올바름
올바른 논증은 전제가 모두 참인 경우에 결론도 반드시 참이 되거나 적어도 결론이 참일 개연성이 높은 논증이라고 했었죠? 연역적으로 올바른 것과 귀납적으로 올바른 걸 구분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연역논증이 올바를 때, 그러니까 전제의 참이 곧 결론의 필연적 참을 의미할 때 그 논증을 일컬어 타당하다valid고 합니다. 반대로 전제가 모두 참일 때에도 결론이 거짓일 수 있다면(=결론의 참이 필연적이지 않다면) 그 논증은 부당invalid하죠.
연역 논증은 그래서 모두 올바르거나 올바르지 않습니다. 중간은 없어요. 전제가 모두 참인 경우에 결론이 결코 거짓일 수 없다면 타당하고, 그런 경우에도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이 남는다면 타당하지 않은 거예요. 올바르거나 올바르지 않거나.
Q. 논리학자가 총을 쏘면 무슨 소리가 날까?
A. 타당타당
그러나 귀납 논증은 다릅니다. 귀납 논증이 올바르다는 건 전제가 참일 때 결론도 참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죠? 높고 낮음은 상대적인 겁니다. 그러니까 귀납 논증의 올바름에는 정도가 있어요. 귀납 논증은 더 혹은 덜 올바를 수 있는 거죠.
이 집생선찌개는 맛있다
이 집 생선 구이는 맛있다
이 집 생선찜은 맛있다
이 집 생선회는 맛있다
∴ 이 집 요리는 모두 맛있다
생선찌개와 구이, 찜, 회가 모두 맛있는 집이라면 다른 메뉴도 모두 훌륭한 맛집일 개연성이 높겠죠? 그래서 이 논증은 어느 정도 올바른 논증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다음 논증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이 집 생선찌개는 맛있다
이 집 생선 구이는 맛있다
이 집 생선찜은 맛있다
이 집 생선회는 맛있다
∴ 이 집 생선 요리는 모두 맛있다
이 논증은 더 올바른 것 같죠? 가령 이 집에서 파는 제육볶음과 계란찜이 맛있을 개연성보다 생선 조림이 맛있을 개연성이 더 높을 겁니다. 그건 이미 맛있는 것으로 확인된 생선찌개와 구이, 찜, 회 등이 생선 조림과 유사하기 때문이죠. 같은 생선 요리니까요. 물론 제육볶음이나 계란찜과도 유사하긴 합니다. 어쨌든 요리라는 점에서요. 그래도 그 유사성이 좀 떨어지는 게 사실이죠.
A 고등학교 남학생 중 임의로 선정된 1,000명의 평균 신장은 169.6cm이었으며, 표준편차는 2.7cm로 나타났다.
∴ A 고등학교 남학생 전체 평균 신장은 164.2cm와 175.0cm 사이의 범위 안에 있다.
이 논증에서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도 참일 확률이 약 95.4%입니다. 상당히 올바르다고 할 수 있겠죠?
A 고등학교 남학생 중 임의로 선정된 1,000명의 평균 신장은 169.6cm이었으며, 표준편차는 2.7cm로 나타났다.
∴ A 고등학교 남학생 전체 평균 신장은 140.0cm와 200.0cm 사이의 범위 안에 있다.
(전제가 모두 참이라면) 이 결론이 참일 확률은 99.99%를 훌쩍 넘어섭니다. 그래서 이 논증은 이전 논증보다 훨씬 더 올바르죠.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논증이 모든 측면에서 더 좋은 논증이란 건 아닙니다. 학생들 전체 신장 평균이 140cm~200cm 범위 내에 있을 것이란 주장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요. 이 결론이 제공하는 정보는 별로 가치가 없죠.)
결론이 같더라도 전제가 다르면 논증이 올바른 정도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든 고니가 흰색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고니 100마리에 대한 관찰 증거를 제시하는 것과 10,000마리에 대한 관찰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죠.
(어떤 철학자들은 하얀 고니에 대한 관찰 사례가 추가되어도 고니가 모두 하얗다는 주장의 신뢰도는 다만 조금도 늘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4] 연역과 귀납은 그런 게 아니야
연역과 귀납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면서 함부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책임한 일이죠.
가장 흔한 오해는 아마도 이런 것 같아요. "연역은 보편적 전제에서 개별적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귀납은 개별적 전제에서 보편적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수많은 논술 학원 강사들이, 심지어 상당히 많은 학교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연역과 귀납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주 개판입니다.
사실 전제와 결론이 보편적이라느니 개별적이라느니 이런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어떤 문장이 보편적이라는 건 그 문장이 (어떤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에 관한 사실을 진술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가령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런 거요. 반면 개별적 문장이란 (어떤 범위 내에 존재하는) 일부 대상들에 관한 사실을 진술하는 문장을 일컫는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런 문장이죠.
하지만 연역과 귀납의 차이는 전제와 결론 사이에 성립하는 논리적 지지 관계가 어떤 성격인지, 그러니까 전제가 결론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지지하고자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전제와 결론이 되는 문장들이 각각 어떤 성격의 것인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 논증이 연역적인 건 그 결론이 소크라테스라는 특정 인물에 관한 사실을 진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제가 결론을 연역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서 제시되었기 때문이죠. 연역적 논증은 얼마든지 (어떤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대한 결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네가 이해할 수 있으면 전교생이 이해할 수 있다
이건 네가 이해할 수 있다
∴ 이건 전교생이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는다
결혼하면 불행하다
결혼하지 않으면 불행하다
∴ 모든 사람은 불행하다
이건 모두 연역 논증입니다. 전제가 모두 참일 때 결론이 결코 거짓일 수 없잖아요? 하지만 특정 학교의 모든 학생,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한 진술을 결론으로 삼고 있죠. 결론이 어떠한 사실을 진술하는지는 그 결론으로 구성된 논증이 연역적인 것인지 혹은 귀납적인 것인지와는 무관합니다.
귀납 논증은 전제가 결론을 귀납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서 제시된 논증입니다. 전제와 결론이 각각 어떤 문장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당연히 (특정 범위 내 존재하는) 일부 대상에 대한 진술이 결론으로 올 수도 있어요.
황다랑어는 맛있다
황다랑어와 참다랑어는 비슷하다
∴ 참다랑어는 맛있다
지금까지 해부된 모든 펭귄은 심장을 갖고 있었다
뽀로로는 펭귄이다
∴ 뽀로로는 심장을 갖고 있다
이 논증에서는 전제가 참이더라도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이 남습니다. 그래서 귀납적이에요. 하지만 모든 물고기와 모든 펭귄이 아닌 참다랑어와 뽀로로에 대한 문장을 결론으로 갖죠.
탈레스는 죽었다
피타고라스는 죽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죽었다
아낙사고라스는 죽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죽었다
제논은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게 귀납적인 건 모든 인간에 대한 결론을 내세우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제가 모두 참이라면 그 결론도 반드시 참일 수밖에 없다는 수준의 강력한 주장을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죠.
연역과 귀납의 구분은 전제와 결론 사이의 관계에 따른 것입니다. 전제와 결론이 어떤 사실을 진술하는지는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