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경 Oct 09. 2019

발견 vs. 정당화

논리학 입문 #4

[1] 뉴턴의 사과나무


아이작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머리에 맞고서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discovery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다들 아시죠? (이 일화의 역사적 사실 여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뉴턴 개인이, 더 나아가서는 인류가 어떻게 만유인력 법칙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인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열매가 자유 낙하하여 어느 뛰어난 과학자의 머리를 때리게 된 사건이 그가 만유인력 법칙을 떠올리게 된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는 내용이니까요.


이 사과는 뉴턴의 머리를 향하지는 않는군요

하지만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 등 고전 물리학에 관한 연구를 발표할 때에는, 그러니까 가령 질량을 갖는 모든 물질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주장정당화justification하려 할 때에는 사과나무를 들먹이지 않았을 겁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더라도요. 그가 쓴 논문에는 물리학적 계산과 천문학적 관찰 증거가 가득하겠죠. 그러니까 뉴턴 스스로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가 만유인력 법칙을 수용하게 된 것은 그것이 논리적으로 논증되었기 때문이죠.



[2] 발견 정당화가 아니다


무언가발견한다는 건 그 존재에 대해 사유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어? 아! 질량을 갖는 모든 것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이겠구나!" 뉴턴은 이렇게 존재하던 만유인력 법칙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죠. 발견의 순간입니다. 반면, 무언가를 정당화한다는 건 그 존재를 인정할 근거를 제시함을 의미해요. 뉴턴이 학자로서 각종 논문 등을 통해 한 일이 이거죠. "이걸 보세요, 질량을 갖는 모든 것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게 정말 맞습니다!" 이렇게 만유인력 법칙을 표현하는 문장이 참이라고 주장하는 거요.

발견이 곧 정당화를 의미하는  당연히 아니에요. 로또 1등 당첨자가 꿈속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당첨 번호를 들었다면(!) 부럽습니다 그 꿈을  밤에 이미 1등 당첨 번호를 발견하게  겁니다. 어쨌든 특정 번호가 로또 당첨 번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들 번호가 정말 1등 당첨 번호라고 믿을만한 근거는 없었죠? 정당화이루어지지 않았던 거예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에서 다음 로또 1등 당첨 번호는 9, 12, 25, 31, 38 그리고 42라고 말했다

 다음 로또 1등 당첨 번호는 9, 12, 25, 31, 38 그리고 42

이 결론이 참이라고 믿어야 할 이유는?


경우에 따라서는 발견 과정에서 정당화 근거가 함께 마련되기도 합니다. 문득 입김이 나온다 알아차린다면, 기온이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죠? 추워졌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마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죠. 그런 사람이 추워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까는 나오지 않던 입김이 지금은 나온다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 정도면 기온이 하락했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것 아요.



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워졌다

추워진 거 맞네



[3] 발생학적 오류


발견 경위에 대한 설명을 정당화 근거라고 착각할 때 발생학적 오류genetic fallacy가 일어납니다. 상대방은 그저 어떻게 특정 문장을 떠올리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뿐인데, 그 문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며 논증을 펼치려 한다고 착각하는 경우죠.


누군가가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를 듣고

만유인력 법칙은 떨어지는 사과를 머리에 맞고 떠오른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에 불과하므로 옳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주장한다면, 바로 발생학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죠.


사과나무 이야기는 애초에 어떤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유인력 법칙이 발견된 경위를 인과적으로 설명할 뿐이죠. 그런데 발생학적 오류를 범하는 사람은 그 설명을 논리적 근거로 보고, 논증이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급이 아닌 자본을 권력으로 삼는 자본가들이 더 많은 노동력을 값싸게 사용하고자 고안해 낸 것이다. 이는 자본가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내세우는 불순한 주장이므로 옳다고 볼 수 없다.
대한민국 표준시를 (기존 UTC+9에서) UTC+8.5로 변경하자는 주장은 최근 북한이 그렇게 함으로써 대두된 것이다. 북한은 국제 사회에서 정치적ㆍ경제적 신뢰를 잃은 불량한 국가다. 따라서 북한을 따라 대한민국 표준시를 마찬가지로 변경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이런 주장이 모두 발생학적 오류의 사례입니다. 누군가는 저렴한 노동력이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를 고민하다가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는 담론을 떠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표준시를 변경했다는 뉴스를 접하고서 대한민국도 표준시를 변경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 수 있죠.

하지만 이건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뉴턴이 연구실이 아닌 나무 아래에서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만유인력 법칙을 비판하지 않죠.


주장은 모두 그것이 발견된 사건과는 독립적으로 정당화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일단 자기  잇속을 챙기려 노예 해방론을 떠올렸더라도, 모든 인간은 인권을 갖는다는 등 윤리학적 근거를 들어 그걸 정당화할 수도 있는 것이죠. 표준시를 30분 앞당기자는 주장도 그렇습니다. UTC+8.5로 변경된다면 태양 고도가 가장 높을 때와 낮 12시가 가까워지기는 할 테니까요.

만유인력 법칙을 부인하려면 그 존재를 뒷받침하는 물리학적천문학적 근거를 공격할 일이지, 뉴턴이 다름 아닌 사과나무 아래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일화를 무기로 삼을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노예제 폐지와 표준시 조정에 반대하려면 애초에 그 정당화 근거로 제시되지도 않은 것(=발견 계기)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정당화 근거로 제시된 것을 제대로 찾아서 다투어야 하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연역 vs. 귀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