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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Sep 30. 2020

존 로크와 토마스 리드가 본 자유

두 가지 자유 개념

프리덤이란 무엇일까


존 로크가 본 자유


원하는 일을 하는 게 곧 자유일까요? 로크는 그건 자발적voluntary일 뿐, 반드시 자유로운free 건 아니라고 말해요. 자유로운 행위란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행위 이상의 무엇이라는 거죠.

자발적인 행위란 하고 싶어서 하는 행위다

방콕을 하고 싶어서 방콕을 한다면 그건 분명 자발적인 행위예요. 그러나 자유란 자발성과 함께 (실제로는 원하는 그 행위를) 만약 원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성립한다고 로크는 주장합니다. 분명 방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방콕을 했더라도, 사실 가택 연금 중이라 설사 외출을 하고 싶었더라도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자유를 누리는 거라고 볼 순 없다는 거죠.


이렇게 볼 때 자유는 결정론determinism과 양립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외출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절대 외출을 하지 않을 정도로 몸이 무거운 집돌이로 성장할 운명이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실제로 이 사람이 방콕을 한다면, 그리고 (실제론 그렇지 않지만) 만약 그가 외출할 마음이 동했더라면 외출을 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면 말이죠.


그래서 로크는 결정론이 성립하든 하지 않든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범죄자가 "난 어차피 이렇게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자랄 운명이었다"고 말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정말로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자랄 운명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가 범죄를 저지를 마음이 들지 않았더라면, 그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요? 그랬겠죠?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라고 협박을 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따라서 그는 자유롭게(!) 범죄를 저지른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착하게 살려고 아무리 노력했어도 어차피 범죄자가 됐을 거란 핑계? 그딴 건 로크 형님에게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로크는 자유를 행위의 문제로만 본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할 순 있어도, 그 마음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도 자유가 성립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자유는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만약 미친 과학자가 이 범죄자 A의 뇌를 조종해서 범죄를 저지르려는 욕구를 갖게 만들었다면? 그래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만약 (미치광이 과학자가 개입을 하지 않아서) 그가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았더라면 그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자유로웠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라이프니츠는 이걸 두고 "사람의 마음이 커다란 정념에 사로잡혔을 때 그는 진정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이는 정념을 사로잡아야지, 도리어 그 반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정념passion이 아닌 이성reason에 따를 때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마도 뇌를 조종당한 범죄자를 두고 충분히 이성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생리학적 조작에 의해 발생한 정념에 휘둘렸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평가할 겁니다.


그런데 이성의 법칙에 따르는 건 자유로운 걸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이성은 무엇이 특별하길래?



토마스 리드가 본 자유


리드는 자유가 의지will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진정한 자유는 반드시 "스스로의 의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동반한다는 거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자유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리드가 볼 때 진정한 자유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먼저 소극적 테제는 이런 것이에요.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사람의 안과 밖에 있는 무언가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 자유로운 행위는 범죄를 저지르라는 협박 등 외부적 요인은 물론이거니와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욕망 등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요인이 없었더라도 가능한 행위만이 자유로운 행위라고 불릴 여지가 있어요.


물론 이 소극적 테제만 충족된다고 자유가 성립하는 건 아닙니다. 자유로운 행위는 소극적 테제와 함께 적극적 테제도 만족시켜야 해요.

행위를 하고자 하는 의지는 바로 그 행위자 자신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이는 행위자는 그 행위를 하고자 할 의지를 발휘할 수도 있으면서, 또 그 행위를 하지 않고자 할 의지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함을 의미해요.


리드가 볼 때 뇌를 조종당한 범죄자 A는 벌써 소극적 테제에 의해 자유롭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뇌에 주어진 외부 자극에 의해 의지가 동한 것이니까요. 적극적 테제도 통과하지 못해요. 그가 갖게 된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의지의 원인은 본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A는 로크가 볼 땐 자유로워도, 리드가 볼 땐 그렇지 않죠.

파이를 먹겠다는 그 의지 자체를 스스로 발현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

물론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로크가 볼 땐 자유롭지 않지만, 리드가 볼 땐 자유로운 경우요.

범죄자 B는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의지를 형성하고, 그 흔들림 없는 의지에 따라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부적 혹은 외부적 요인의 개입이 없었어요. 그러니 리드는 B가 자유롭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미친 과학자가 등장합니다. 뇌 조종 장치를 B의 뇌에도 심어두죠. 하지만 그걸 실제로 작동하진 않아요. 그저 B를 지켜봅니다. 혹시 B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때 장치를 가동해 범죄를 저지르려는 나쁜 마음을 먹게 할 계획인 거죠. 때문에 B는 설사 문득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뇌 조종 장치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려는 마음을 다시 먹게 될 것이고, 실제로도 범죄를 저질렀을 겁니다. 그러니 로크는 B가 자유롭지 않다고 말하겠죠.


결정론적 세계에서도 자유는 있는가?


리드가 생각하는 자유는 결정론과 양립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결정론은 행위자에게 적용되지 않고, 오로지 사건들에만 적용된다고 본다면 가능하긴 할 겁니다. 행위자는 인과율의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칸트의 이원론적 세계관이 여기에 들어맞겠네요. 그런데 모든 것이 결정된 대로 흘러가는 세계가 사람의 의지만 내버려 둘 수가 있는 걸까요? 결정론적 세계에서 사람의 의지는 "밖에 있는 무언가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하지는 않을까요? 당장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리드가 볼 때 도대체 자유로운 인간이 있긴 할까요?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를 결정하는 게 그 사람의 안팎에 있는 그 무엇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이라면… 그 사람은 스스로 언제든지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을 겁니다. 어제는 개망나니로 살다가도, 오늘은 성인군자처럼 살 수 있겠죠. 그런 게 가능할까요? 자유 인간은 절대로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진정 자유로운 사람들도 나름의 관성(?)을 갖고 살아갈 것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요?


캠벨C.A. Campbell은 이게 오해라고 말해요. 진정 자유로운 사람에게서도 나름 일관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어제 개망나니로 살던 사람은 대개 그렇게 하고자 할 의지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하고자 할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욕망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 욕망이 지속하는 한 오늘도 내일도 개망나니처럼 살 거라고 예상할 수 있겠죠. 물론 이 사람이 정말로 자유롭다면 개망나니의 삶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는 언제든 세울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러면서 캠벨은 성향disposition이나 성품character는 의지를 품는 자아self와는 다른 것이라고도 첨언합니다. 흠, 성향·성품과 별도로 존재하는 자아? 그게 대체 뭘까요?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세뇌를 받은 사람도 그렇게 형성된 성격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의지를 발현할 수가 있는 걸까요?



#형이상학 #자유 #자유의지 #존_로크 #토마스_리드


 

William L. Rowe, "Two Concepts of Freedom," Proceedings and Addresse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Association 61(1) (1987): 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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