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거인
종로3가 지하철역 10번 출구를 나서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폭 50미터, 길이 1킬로미터. 세운상가다.
처음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시간의 정지였다. 좁은 복도, 낮은 천장, 깜빡이는 형광등. 양쪽으로 늘어선 전자 부품 가게들. 먼지 쌓인 플라스틱 서랍장에는 저항, 콘덴서, IC칩이 분류되어 담겨 있었다. 이곳은 2010년대였지만, 동시에 1970년대이기도 했다.
미래였던 건물
이 건물은 미래 도시의 상징으로 지어졌다. 김수근이 설계한 '인공 대지'. 땅 위에 또 다른 땅을 만들어 올린다는 개념이었다. 지상층은 자동차를 위한 공간, 상층부는 사람을 위한 공간. 건물과 건물은 공중 보행로로 연결되어, 사람들은 하늘 위를 걸으며 이동할 수 있었다.
완공 당시 사람들은 이 건물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선 빈민촌이었던 자리에, 갑자기 거대한 백색 건물이 나타났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한국의 근대화. 세운상가는 그 상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건물은 작동했다. 전자 부품을 다루는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라디오를 만들려는 학생들이 찾아왔다. 컴퓨터를 조립하는 기술자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삼보컴퓨터가 이곳에서 태어났고, 한글과컴퓨터가 시작되었다. 세운상가는 한국 전자산업의 심장이었다.
당시 청소년들에게 이곳은 다른 의미로 특별한 공간이었다. 불법 복제 게임, 성인 잡지, 수입 음반.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여기 있었다. 시인 유하는 이곳을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이라는 시로 기억했다. 금지된 것들이 가득한 자유의 공간.
중심이 남쪽으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황은 달라졌다. 여의도가 개발되었고, 강남이 떠올랐다. 서울의 중심축은 점차 남쪽으로 이동했다. 용산에 전자상가가 생기고, 명동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세운상가의 독점적 지위는 흔들렸다.
재개발 계획이 두 차례 발표되었지만 무산되었다. 경제 위기와 주민 반발. 그리고 첫 번째 건물인 현대상가가 실제로 철거되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철거 예정지'라는 꼬리표만 남았다.
주거 공간은 비어갔다. 상가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세운상가 앞 풍경은 바뀌었지만, 건물 안은 여전히 과거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단절의 벽, 연결의 복도
세운상가는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그래서 늘 비판받았다.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축을 막는다고. 을지로와 종로를 분리시킨다고. 실제로 서쪽은 종로, 전통적인 서울의 중심이고, 동쪽은 을지로, 인쇄소와 공구상이 모여 있는 제조업 지대다.
하지만 동시에 이 건물은 연결의 장치이기도 했다. 3층 공중 보행로를 따라 걸으면, 신호등 없이 1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좁은 복도를 걷다가 문득 아트리움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비현실적인 감각이 든다.
세운상가 내부로 들어가면 2층과 3층 상가는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복도 폭은 2미터 남짓. 천장은 낮고 조명은 어둡다. 60년 가까운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작가들이 본 풍경
소설가 황정은은 『백의 그림자』에서 재개발 예정지로 낙인찍혔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운상가를 그렸다. 전자 부품 가게 주인과 수리공. 그들에게 세운상가는 낙후된 슬럼이 아니라 평범한 삶의 터전이었다.
김민석 감독의 영화 『초능력자』에서도 세운상가는 주인공이 일하는 일상의 공간으로 그려졌다. 반면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에서 세운상가는 자본의 폭력이 작동하는 어두운 무대가 되었다.
같은 건물, 같은 시기인데 작가들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삶의 터전이였고, 어떤 이에게는 착취의 공간이었다.
이것이 박원순의 '다시세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직전, 세운상가의 모습이었다. 철거될 것 같으면서도 철거되지 않았고, 사라질 것 같으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쇠락한 거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