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딘 알라이아와 크리스티앙 디올, 두 거장의 만남

비율 | Proportion

by 이건국
Azzedine Alaïa  1.jpg 마레 지구의 아자딘 알라이아 재단


수민이 좋아할 것 같아서 골랐다. 마레 지구의 아자딘 알라이아 재단, 디올과의 공동 전시. 사실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패션 전시를 보러 가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디올과 알라이아의 옷들이 교차로 걸려 있었다. 나란히 보니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차이를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패션이란 계절마다 바뀌는 것, 시즌마다 새로 나오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디올은 백화점 명품관에 있는 브랜드였고, 알라이아는 이름만 들어본 디자이너였다. 그 정도가 내 전부였다.


그런데 옷을 보는 순간,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아, 좋은 건축을 봤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의도가 형태로, 형태가 디테일로 명확하게 이어지는 것. 수민과 Knits.pourmoi에서 매일 고민하는 것들, 옷과 몸의 관계, 디테일과 전체의 조화, 그것이 그들의 작업에도 고스란히 있었다. 그들도 같은 질문 앞에서 오래 고민했다. 그 고민이 옷 하나하나에 쌓여 있었다.


패션이 단순히 유행이 아니라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건축을 한다면서 인접한 분야에 대해 이렇게 무지했다니. 왜 오트 쿠튀르라는 말이 따로 있는지, 왜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2층은 작은 공간이었다. 알라이아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았고, 구석 한쪽에서 짧은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건축과 의상 디자인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알라이아가 간단하게 답했다.


"비율입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프랑스에 와서 내게 가장 크게 변화한 개념이 바로 비율이었다. 파리의 파사드를 보면서 시작된 생각이었다. 파사드는 도시와 건축이 만나는 지점이다. 건축은 도시의 연속성 속에서 통일감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을 가져야 한다. 모순적인 요구다. 파리의 건축가들은 이 모순을 비율로 해결했다. 벽과 창문, 장식의 비율을 정교하게 조율하면서 도시의 조화 속에 각 건물의 고유함을 새겨넣었다.


이 생각은 수민과 뜨개 패턴을 만들 때도 직접 이어졌다. 몸의 비율, 옷의 비율, 각 부분의 비율. 코 하나를 늘리고 줄이며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가는 것. 그 작업이 파사드를 설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는데, 알라이아가 지금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비율. 이 거장의 입에서 똑같은 단어가 나오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같은 옷들인데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소매의 길이와 몸통의 폭, 목선의 깊이와 어깨선의 위치.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계산된 비율의 결과였다. 건축에서 창의 크기나 천장의 높이가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듯, 여기서도 각 부분의 비율이 옷과 몸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고 있었다.


이 거장들은 아름다운 옷을 만든 게 아니었다. 관계를 만든 것이었다.


전시장을 나와 마레의 골목을 걸었다.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형태를 만드는 것일까, 관계를 만드는 것일까. 콘크리트와 천, 공간과 몸, 재료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건축도 하고 니트 디자인도 하는 내 일이 사실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그러다 수십 년 전 이 거리에 도착했을 튀니지 출신의 청년을 떠올렸다. 그도 이 파사드들을 걸으며 봤을 것이다. 파리의 비율을 자신의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같은 방식으로 시작한다. 보고, 걷고, 느끼고,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닫는 것.



Azzedine Alaïa 3.jpg 아자딘 알라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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