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on glacé Sweater [Knits.pourmoi]
12월 말, 나는 Atelier MMUG의 새로운 건축 공모전 준비로 한창 바빴다. 하지만 워커홀릭 수민은 그런 나를 기다려줄 리가 없었다. 어느 날 수민은 몇 장의 레퍼런스 이미지를 들고 와서 여성스러운 실루엣의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옷은 카라가, 다른 옷은 무늬가, 또 다른 옷은 실루엣 자체가 여성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각 사례의 장단점을 함께 논의한 끝에, 늘 그렇듯 수민이 가장 뜨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카라를 강조한 디자인. 동시에 내 바쁜 스케줄을 고려해서 이번에는 내가 주로 맡고 있는 스티치 무늬 작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빠르고 쉽게 하고 싶다 해도, 언제 디자인이 그렇게 순순히 되던가. 이번에도 며칠간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무늬을 최대한 간결하게 가져가고 싶다 보니 겉뜨기와 안뜨기를 중심으로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스웨터의 출발점은 카라를 평소보다 크게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카라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이렇게 눈에 띄는 카라가 옷 전체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카라만 붕 떠 보이지 않으려면, 그것이 전체 실루엣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했다. 우리가 가장 오래 고민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결국 찾은 해결책은 카라와 레글런을 유사한 방식으로 처리하고, 그 흐름을 고무단까지 연속시키는 것이었다. 카라에서 시작된 선이 레글런을 따라 내려오고, 다시 고무단까지 이어지면서 하나의 연속적인 구조를 만든다. 이 연속성이 전체적인 균형감과 통일성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했다. 구조적으로는 완결되었는데, 자칫 단순해서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겉뜨기와 꼬아뜨기가 가지는 미묘한 질감 차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빛을 받으면 표면에 미세한 변화가 생긴다. 이 작은 변주가 편물 고유의 텍스처를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 주면서, 동시에 디자인의 간결함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전체적인 스타일, 구성 요소, 디테일, 그리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개념이 결정되고 나면, 이제 수민의 시간이다. 수민이 직접 뜨개를 해나가면서 서술형 도안으로 정리하고 패턴을 마무리한다. 이 과정은 수민이 가장 좋아하는 과정이다. 보통은 이 단계가 끝나고 나서 내가 패턴을 사이즈별로 그림으로 그려가며 다시 검증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번 디자인은 우리의 전략대로 단순하게 진행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필요 없었다. 다행이었다.
수민은 옷을 뜨는 동안, 요소가 하나씩 마무리될 때마다 중간중간 보여주곤 한다. 그래서 진행 과정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최종적으로 완성된 옷을 수민이 직접 입었을 때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너무 단순한 건 아닐까, 카라가 지나치게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있었는데, 막상 입은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수민에게 너무 잘 어울렸다.
옷은 완성되었지만, 아직 하나 남은 게 있었다. 스웨터의 이름. 이름 짓기는 항상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는 보통 완성된 디자인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막 던지고,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는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봐도 도통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러다 출시 예정일이 다가올 무렵, 잠결에 무심코 던진 단어가 있었는데, 둘 다 바로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정해버렸다. 마롱 글라세. 오래 고민한 끝에, 정작 이름은 그렇게 불쑥 나왔다.
디자인을 아무리 오래 해왔다 해도 그 과정에 필요한 시간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어떨 때는 짧은 시간에 나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오기도 한다.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안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넉넉하다고 해서 항상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결국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둘이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마음에 드는 무언가가 나오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게 성공하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