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연기하고 싶은 나에게

네가 죽는다고 변하는 건 없어

by 시우

어두운 새벽과 짙어진 어둠 그리고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 화면은 꺼진 채 아무런 빛도 내지 않고, 방 안의 정적은 그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태워낸 담배 때문일까 복잡한 생각들 때문일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관자놀이 부근에서 박동하는 통증이 마치 누군가 내 머릿속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긁어내는 것만 같다. 방 안을 메운 연기는 흩어지지 않고 바닥으로 가라앉아 나를 짓누른다.


절망 속에 갇혀 있을 때 즈음 네가 온다는 문자를 봤다. 뒤늦게 확인한 액정 속의 글자들은 무미건조했다. 절망과 망상 사이 그 어딘가에 잠겨 있을 때쯤일까 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어록이 해제되는 기계적인 소음이 방 안의 진공 상태를 깨뜨리고 들어왔다. 바깥공기보다 더 찬 눈빛을 가진 채 말이다. 너는 현관에 서서 잠시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 시선에는 어떤 온기도 섞여 있지 않았다.


아마 연락이 안 됐던 탓일 것이다. 며칠째 꺼져 있던 나의 침묵이 너를 화나게 했을지도, 혹은 지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한 듯이 넌 나를 가만히 둔 채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너의 발소리가 부엌 타일 위를 규칙적으로 오갔다. 곧이어 쌓였던 설거지라도 하는 듯 그릇들이 맞닿는 소리와 끊기지 않는 물소리가 들렸다.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그 마찰음은 비명처럼 날카로웠다. 나도 그릇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곤 했다. 깨지지만 않으면 새것 같을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겉면만 매끄럽게 닦아내면 그 안에 담겼던 오물이나 깊게 팬 스크래치는 아무도 모를 테니까. 나라는 존재도 그렇게 수납장 안에 가지런히 놓인 채 침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식탁에 오라는 소리도 하지 않은 채 식사를 내 방까지 가지고 왔다. 너는 쟁반을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들이치자 방 안의 담배 연기가 소용돌이치며 흩어졌다. 그 순간, 숨이 턱턱 막혀온다. 아 공황이구나 생각했다. 기도가 좁아지고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감각. 망상이 빚어낸 절망 속에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익숙해진 공황에 몸을 맡긴 채 죽어갈 뿐이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산소를 찾아 허덕였다. 입 밖으로 신음이 새어 나왔고, 내가 뱉은 첫마디는 고작 이것이었다.


"그냥 이 상태로 죽었으면 해."

진심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질식의 감각을 끝내고 싶다는 간절함. 그러나 넌 가볍게 생각했던 말이었는지 화를 낸다.

"네가 죽는다고 변하는 건 없어."

너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아와 박혔다. 사실이 재차 확인되었다. 내가 사라져도 세계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 굴러갈 것이고, 너의 분노조차 시간이 지나면 마모될 것이다. 그저 뻔한 위로가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위로조차 사치였다.


죽고 싶은 이유는 고사하고 살아가고 싶은 연유를 만들고 싶었겠지. 내가 정말 죽고 싶었다면 너에게 이런 말을 내뱉지도 않았을 테니까. 살아갈 핑계 따위를 만들고자 했던 잠깐의 방황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숟가락을 쥐었다. 너의 차가운 화가, 그리고 이 비참한 식사가 오늘 내가 죽지 못할 가장 확실한 핑계가 되어주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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