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도

쓸모의 농도

by 시우

모든 사물에는 각자의 필요도가 매겨져 있다. 계절이 바뀌면 서랍 깊숙이 밀려나는 옷들처럼, 혹은 심지가 다해 불꽃을 포기한 초처럼, 쓸모가 다한 것들은 소리 없이 폐기된다. 사람의 마음 또한 그 냉혹한 수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의 겨울은 더욱 깊어졌다.


행복을 유능하게 나열하는 이들은 자신의 필요도를 증명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그들의 문장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읽히고, 쓰이고, 찬란하게 소비된다. 반면 나의 문장은 언제나 외곽의 정적만을 닮아 있어,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먼지처럼 쌓여갈 뿐이었다.

나라는 사람의 필요도는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누구의 생에도 끼어들지 못한 채, 다만 혼자서 숨을 고르는 일에만 전념해 온 시간들. 문득 나의 존재가 아무에게도 쓰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면, 연명이라는 행위조차 사치스러운 오답처럼 느껴졌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형체는 희미하기만 해서, 가끔은 내가 정말 이 자리에 고여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기이한 일이다. 무너진 자존감의 틈새로 흘러 들어오는 낮은 소음들이, 나를 다시금 이 비참한 자리로 불러 세운다.

나의 문장이 누군가의 무너진 밤을 아주 잠시 지탱해 주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혹은 아무 말 없이 곁을 지키는 나의 정적이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숨구멍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나는 나의 낮은 필요도를 확인하며 안도한다.

거창한 유용함은 아니어도 좋다. 그저 누군가의 시린 마음에 때맞춰 내리는 비 한 줄기 정도의 쓸모라면. 나의 겨울을 조금 더 견뎌낼 명분으로는 충분했다.

완벽히 소모되어 사라지기 전까지, 나는 나만의 시린 방식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비문을 끝내 마침표로 닫지 못하고, 여전히 다음 장을 넘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