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을 접으며

2020년 2월 21일

by 졸팍

내 방 찬장에는 비닐통이 있다. 한때는 투명했지만 이젠 닳고 구겨져 뿌연 비닐이 통 안에 가득하다. 그런데 나는 비닐을 산 적이 없다. 부산 집에 다녀올 때마다 어머니께서 음식을 담아 챙겨주셨던 비닐이다. 쪽지 모양으로 접어 하나둘씩 넣었는데, 어느새 가득 찼다. 지구가 소중해 한 번이라도 더 쓰고 버리자는 기특한 마음으로 모은 건 아니다. 그저 어머니께서 준 비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물건에 시간이 쌓이거나 사연이 덧칠되면 버리기 어렵다. 열다섯부터 손목에 찬 시계가 있다. 오랜 시간만큼 흠도 늘었다. 건전지를 서너 번 갈아 주었다. 그마저도 다 되어 시곗바늘이 멈추었다. 그럼에도 버리지 않고 서랍 한구석에 가만두었다. 평범한 비닐에 "어머니께서 담아 준 마음"이라는 사연이 더해졌다. 비닐을 무심하게 버리자니 어딘가 죄송스럽다. 하는 수 없이 고이 접어 통에 넣어두었다.


물건은 언젠가 쓸모없어진다. 쓸모가 사라지면 버려진다. 물건은 버려지는 게 곧 죽음일 테다. 나는 그 죽음을 인정하고 놓아주는 게 그렇게 어렵다. 비단 물건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삶에 여러 종류의 이별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회자정리, 어찌 보면 그저 순리인 것을 나는 자꾸만 생각한다. 가난이나 질병 같은 불행을 만난 사람에게 연민이 생긴다. 위태롭고 스러져가는 것에 마음이 쓰인다. 이어령 선생의 책을 읽다 이 문장에 부딪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가난이 너무 싫고 굶주린 사람의 얼굴이 나에게는 너무 큰 슬픔을 주었기 때문이다."
- 이어령 "생명이 자본이다" 중에서. (마로니에북스, 227쪽)


위태롭고 스러져가는 것을 위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윤동주의 서시를 나는 이렇게 읽는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keyword
팔로워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