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고통에 저항하는 인간의 행동에 대해

영화 <스틸 플라워> 속 하담을 돌아보며..

by TGKim


하담이라는 소녀가 있다. 무슨 일 이 있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지금 하담은 마땅히 잠을 잘 곳이 없어 폐가를 찾아내 거기서 잠을 청해야만 한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 이든 해야만 한다. 그런 그녀 하담의 척박하다 못해 거칠어져 버린 삶의 비루한 현실에서, 그녀의 눈을 반짝거리게 하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탭 댄스'이다.


여기까지가 영화 <스틸 플라워>를 요약할 이야기 골자 일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를 벗어나서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 창작가가 항상 겪게 되는 딜레마 중 하나는 이것이다. '우연'과 '작위적 인 것'의 차이. 좋은 이야기는 우연을 단순히 사건의 촉매제로써만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물 그 자체를 휘감아버리는 운명의 소용돌이로 그려내거나, 그 원인을 뛰어넘는 인물의 '결단' 그 자체와 일맥상통하게 만드는 심도 깊은 고민의 결과물로 만들어낸다.


스틸 플라워. 에서의 우연은 너무나 많다.

그녀는 왜 하필, 탭댄스 에 현혹된 것 일까.

그녀는 왜 하필, 자신의 억울함과 변명과 살아온 이야기를 말로 표현해내지 않거나, 거부하면서 폐가로 보이는 곳에서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것 일까.

왜 하필 그녀에게 이리도 지독한 어른들의 이기심과 세상의 차가움이 언제나 마주해야만 하는 걸 다.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이것이다. '우연의 고통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흔히 TV에서 혹은 주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어려운 고난들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러한 이야기는 단발적인 희망, 혹은 경외심.이라는 감정과 함께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각자 누구나의 삶에 놓인 우연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한 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목도할 때 우리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절망감 앞에서 "나는 이래 이래 해서 이겨냈어요. 그러니 힘내요"라는 개인의 경험의 고백이 누군가의 삶을 뒤바꿀 만큼 진실된 힘이 될 수 있는 것 일까?라는 질문은 늘 남게 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하담은 바다를 정면으로 두 번 마주한다. 마치 삶의 어려움들을 비유한 것 같은 파도가 거센 바다 앞에서, 자신이 일을 해서 이 곳에서 버텨내겠다는 다짐으로서의 바다가 초반부에 등장하고,

새로이 희망을 품고, 탭댄스 신발을 구해 처음으로 희미한 삶의 기쁨을 만끽한 후, 어렵사리 자리 잡은 식당에서 자신을 오해한 어느 여자와의 다툼 끝에 일을 할 수 없게 된 뒤, 절망의 얼굴을 한 체, 그 어느 때 보다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앞에 마주하는 후반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영화 속 하담은 '말'을 하지 않고, '행동'만을 보인 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연과 힘듦을 구구절절이 이야기나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겠다.라는 의지를 그저 묵묵히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탭댄스 신발을 갖고 가로등이 비치는 길가에서, 그것도 재개발 예정지 초입 직전에 유일하게 빛이 비치는 그 거리에서 탭댄스 신발을 신고, 마치 자신만의 공연을 펼치 듯 춤을 추는 그녀의 감정표현 역시 그저 행동 일 뿐이었다.


마지막 장면. 파도가 거세 앞에 서 있는 하담을 넘어지게 할 정도의 바다 앞에서 그녀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누구 하나 알아줄 리 없는 자신의 삶. 자신이 처한 우연의 고통들. 원인을 알 수 없이 살아야만 한다, 는 삶의 대명제를 마주한 어린 소녀. 그녀의 구구절절한 마음과 아픔과 희망의 전조는 결국 '그녀의 그 행동' 만으로 보는 이의 가슴에 미소가 어린 눈물을 짓게 만든다.

탭 댄스가 그 어떤 춤 보다 소리와 행동으로만 이루어진 춤이라는 것을 가늠할 때, 아마도 어쩌면 하담에게 탭댄스는 자신의 삶의 유일한 표현법이 된 '행동'의 감정을 표출하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버팀목 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그녀가 비 바람이 매서운 바다와 파도 앞에 마주 서서, 시선을 피하지 않고 탭 댄스를 출 때. 그녀의 행동에는 원인 도 결과도 없다. 그저 '삶의 현실과 아픔을 마주하려고 애쓰는 누군가의 결연한 삶의 의지와 아픔.' 그 자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스틸 플라워> 속 하담은 그렇기에 자신에게 처한 우연한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행동으로 마주하겠다는 다짐의 시작 점 위에 놓인, 인간의 담대한 의지와 그로 인해 느껴지는 희미할지 언정, 꺼지지 않는 그녀의 삶에 대한 슬픈 찬가를 그린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누구나에게 원인 모를 우연으로 엮인 삶의 아픔들이 존재한다. 어느 작가들은 그 자체를 자신의 작품의 테마로 끊임없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소설가 필립 로스 나 폴 오스터: 이 작가들의 글에 대한 단상도 앞으로 실을 예정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술 작품이 되었던 혹은 자신의 삶의 경험이 되었던. 그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마주한 삶의 고통의 우연을 이겨낸다는 것은 때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때론 죽음 이 될 수도 있다는 삶의 명징한 진실을 우리는 알기에.. 다만, 우리는 마주할 수 있는 용기나 다짐을 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떠한 소소한, 작은 혹은 큰 행동으로 자신의 삶의 의지를 표현해낼 때, 우연은 우연. 그 자체로 끝이 난다. 그러니 모두들 (박노해 시인의 말을 빌려) 사라지지 말기를. 마주하기를. 그리고 그 마주함의 용기를 함께 손잡고 응원하거나, 공감해줄 누군가들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