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찰나, 그 속을 지나치는 시선들
흑백사진 이 전하는 어떠한 감성, 노스탤지어 가 있다.
로버트 파카의 보도 사진 에서 부터, 그 유명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진들 까지
무수히 많은 흑백사진들은 색이 없기에 때로 우리에게 현실을 포착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조금 더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묘한 매력을 전달한다.
지난주 성수동 사진공간 에서 조그마한 전시회를 연 '오병기' 사진작가의 전시전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충만한 감흥을 전달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유독 눈을 뗄 수 없었던 한 사진이 있었다.
한 공간에 있는 두 남녀는 담배를 피고 있지만,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저 사진.
그런데 이 둘은 어떻게 이렇게 같은 공간에 있게 된건지, 의도한 것 인지, 둘은 무슨 사인지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사진을 찍은 작가님이 목격한 실제 이야기도 있었다.)
결국 때로 어떠한 사진들은 찰나의 포착을 통해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이야깃 거리와 상상력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 사진이 유독 눈에 띈 것은 그 유명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말하던 '찰나의 포착' 과는 조금은 다른 맥락에서 전해주는 감흥이었다. 그것은 바로 '저 두남녀의 서로 다른 시선' 이 불러일으키는 어떠한 감정들이라는 점이다.
-시선이라는 것-
우리 자신들의 연애를 떠올려 보자.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구나, 혹은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고 있구나. 라는 감정은 서로 마주보는 시선에서 기인 하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눈빛은 사랑하는 감정을 감출 수 없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즉, 우리에게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시선은 그만큼 명료한 감정의 표현도구 이다.
여기 이 사진에서 두 남녀는, 분명 다른 곳을 바라보는 데, 그렇다고해서 두 사람이 모르는 사람같지 않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같은 공간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조금의 거리를 두고, 같은 행위(담배를 핀다) 를 하고 있다.
물론, 우연히 같은 공간에서 담배를 핀 낯선 두 남녀 일 수 있지만
이 두 사람의 같은 공간, 같은 행위,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재창조해낼 수 있다. 이 둘은 이별을 앞둔 연인일 수 도 있고, 흔히 말하는 썸을 타는 관계일 수 도 있으며, 비슷한 노동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남녀가 잠시나마 만끽하는 휴식의 시간 일 수 도 있다. 아니 어쩌면 심지어 이 두사람은 이터널 선샤인 처럼 서로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 옛 연인일 수 도 있다.
이렇게나 많은 추측을 하게 한다는 것은
이 사진이 누군가를 오랜기간 바라보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의 사진적 개념과 동 떨어진
어느 순간을 포착해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마치 우리들이 흔히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는 어떠한 남녀를 바라보며 속닥속닥 대며 이야기를 새로이 짜맞혀보는 '관찰자'의 입장에 더 가깝게 사진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들은 흔히 말하는 '남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산다.
그것이 어떠한 유익과 무익을 뛰어넘어 그저 유희할 수 있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진을 통해서 두 남녀의 엇갈린 시선이 주는 묘한 감정을 통해
필자는 때때로 지나간 그 누군가들을 혹은 저렇게 담배를 피우고 난 뒤, 서로가 마주보게 되는 두 남녀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즉, 사진에서 시선이라는 것은 결국 '의도하지 않음'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과 이야기의 전달 매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의도하지 않음' 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객관화 하지 못하는 우리자신들의 순간, 순간들 이 모인 삶의 시간이라는 점 이다.
이 한장의 사진으로 인생을 비유하는 것 까지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병기 사진 작가의 이번 흑백사진전 은 꽤나 아름다운, 기묘한, 다정한, 삶의 찬가와 슬픔을 오가는 감정들을 포착해내었다.
잠시나마 이러한 감흥을 전달해준 오병기 사진작가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1. 성수동 사진공간에서 7월31일 까지 전시중에 있으며, 필자는 작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2. 작가님이 밝혀주신 대로 라면 저 두 남,녀는 작가님이 보시기에 썸을 타는 남, 녀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순간의 어색함과 거리감을 포착해냈다고 하십니다.
3. 필자는 사진전에 있는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 들 몇장을 벽에 붙여놓았는 데, 사진들을 바라볼 때면 모든 사진들이 영화의 스틸 이미지같다는 생각에 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4. 이 사진은 작가님이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를 다니시면서 5D MARK2 와 라이카 카메라를 번갈아 가며 찍은 사진들이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