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희망이란 것을 생각해보다
얼마 전 DVD 를 구입해 영화 <우리 사이의 거대한 산> 을 보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정식 개봉일이 아직 잡혀있지 않지만, 이미 부산 국제 영화제 나 기타 영화제를 통해서 입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영화였다.
영화 내용은 간략하게 이렇다.
모험심과 본능에 따르는 성격인 분쟁지역을 촬영하는 사진 작가 알렉스 (케이트 윈슬렛) 는 덴버로 향하는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취소되자 경비행기로 갈 방법을 궁리한다. 그러다 때마침 의사 벤(아이드리스 엘바) 을 만나게 된다. 벤 역시 긴급한 수술이 잡혀있어 뉴욕으로 가야하는 상황. 알렉스는 벤 에게 자신과 함게 경비행기로 떠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래야만 비행기가 경유를 해서 갈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게 둘은 경비행기를 타고 떠나는데, 기상악화 보다도 비행기 운전사가 갑작스레 뇌졸증으로 운행 중에 쓰러져 버리고 결국 두 사람이 탄 비행기는 눈 덮힌 산에 추락하고 만다.
그리고 벤 과 알렉스는 그 곳에서 구출되기 위한 생존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재난 생존 영화의 틀이다. 내용만으로 봤을 때, 필자 역시 재난 과 멜로 라는 것의 결합에 있어서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 좋은 서사가 그렇듯 언제나 고전적 드라마와 개인 내면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성장기가 합쳐져 감동을 전해주게 되는데. 이 영화 역시 필자에겐 그러했다.
알렉스는 곧 결혼을 앞둔 신부이다. 그녀는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본능을 쫓아 살기위해 무엇인가라도 해야 하는 직관이 있는 여성이다. 반면, 벤은 2년 전 병 으로 쓰러져 자신이 직접 치료를 해야만 했던 죽은 부인에 대한 트라우마로 마음을 닫은 상태다. 의사인 벤 은 눈 속 생존을 위해서는 냉철하게 모든 것을 관장하지만, 한 편으론 '심장은 그저 근육덩어리 일 뿐이다.' 라며 이성을 강조한다.
그렇게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마음이 합쳐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험난한 눈길 속 에서 먹고, 마시고, 살아내는 것을 함께 이겨낸 동료의식 같은 것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마음이 밝혀지는 것은 그간 알렉스가 벤을 오해해왔던, 벤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즉, 본능이 우선인 여성이 이성으로 흔들리지 않으려는 남성과 조우했을 때 다.
사람이 사랑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본능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사랑 그 자체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미래는 자명하다. 죽거나, 살거나..
산다면, 둘은 헤어질 것 이다. 알렉스는 결혼을 할 것이고, 벤은 의사로서의 삶으로 돌아갈 것 이다.
두 사람이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 이다.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이 목적이었던 두 사람이
생존 때문에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그 마음이 다시금 현실 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는 자취를 감추어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희망'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두 사람이 살아낸다면 이 둘의 희망은 '앞으로 우리는 함께..' 라는 명제가 붙어야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그럴 수 가 없다는 점 이다. 단순히 알렉스의 결혼, 때문만이 아니라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감정이 극한상황에서 느낀 동지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것이 동지애를 품은 사랑 이라 한들 그것은 지금의 현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어떠한 영화들은 인물들의 이러한 고민 보다, 사건을 더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인물을 대하는 작가의 감독의 태도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이 산에서 벗어나고 각자의 일상을 고독하게 살아갈 때 감독은 이 두 사람의 현실을 거리를 두고 천천히 살핀다.
생존을 해낸 것 역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 인물들을 살피면서
어쩌면 영화 속 알렉스 와 벤 은 자신들의 희망이 그저 생존 자체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때로 사랑에 있어서 희망은
순간 그 자체에 있다고들 말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우리에겐 희망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끝난다면..? 그것은 절망인 것 일까?
희망이란 앞으로 행복한 일 만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즉, 사랑에 있어서 많고 많은 역경과 문제와 고민들과 서투름은 그 자체만으로 희망의 전제조건이 될 것 이다.
사랑은 그대로인데, 사랑을 행해야 하는 사람만이 언제나 후퇴한다.
사랑은 정확하고, 정직한데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언제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뒤늦게 깨닫는다.
이 영화의 두 사람은 그 깨달음 속에서 자신들의 감정과 마주하고, 결국 다시금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은 두 사람이 포옹을 하려는 그 찰나에서 스톱모션으로 끝을 맺는다.
자신들의 현실과 마음의 거대한 산 을 뛰어넘어 다시금 하나가 되려는 두 사람의 사랑의 행위.
그 행위는 눈 덮힌 산을 이겨낸 생존의식 보다 어쩌면 더욱 더 위대할지도 모른다.
그 둘은 서로를 보며 말한다.
"당신과 함께 했기에, 사랑했기에 살아낼 수 있었다."
이 말이 사랑의 희망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늦게 깨달은 영화 속 알렉스와 벤 처럼
우리들 역시 때때로 뒤늦게 깨닫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겨울 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