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국제심사관으로 참여하기 위해 엘살바도르를 방문했다. 국내 심사를 거쳐 올라온 40여 개의 커피를 5일간 심사하고, 높은 점수를 받은 농장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순위가 정해지면 온라인으로 옥션이 진행된다.
심사 5일차를 마치고 한국 친구들과 한 농장을 방문했다. 10년이 지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 유명한 농장이었다. 호텔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 농장이었고, 도심에서 산 햄버거를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농장의 모습은 우리나라 시골과 비슷했다. 화장실은 1970년대식 재래식이었다. 휴식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농장을 살폈다. 규모가 커서 차로 이동하며 안내를 받았다. 농장주는 '병충해를 막고, 더 좋은 품질의 콩을 얻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얀 팝콘처럼 꽃이 만발한 나무도 있었고, 익은 것과 덜 익은 열매가 함께 달린 나무도 있었다.
다른 장소로 이동했을 때 풍경은 지금까지 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산을 넘어 햇빛이 한두 줄기 비추고, 뿌연 안개가 덮인 경사진 모습은 마치 꿈속 같았다. 이 지역은 미스트 지역으로, 오후 뜨거운 해가 사라지면서 커피 나무 재배에 최적이라고 했다. 새로운 품종과 게이샤 등 다양한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이 날의 농장 풍경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커피는 우리나라 쌀과 같은 농산물이다. 나라별 기후 조건은 다르지만, 대체로 1년 주기로 수확된다. 농산물은 1년에 한 번 구매할 수 있어, 맛있어도 많이 살 수 없고 쟁여 놓을 수도 없다. 과일이나 채소는 상하기도 하지만, 커피는 상하지는 않지만 품질 저하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커피를 잘 모를 때는 생두의 묵은 냄새를 구별하지 못해 재고를 구매할 때 실수가 있을 수 있다.
커피 품질은 나무의 나이와도 관련된다. 나이가 많은 나무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품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콜롬비아는 한때 가지치기를 심하게 하여 몇 년간 생산량이 줄기도 했다. 정말 맛있게 마신 케냐 커피도 있었지만, 다음 해 기대에 못 미쳐 다른 생산자의 커피로 교체해야 했다.
커피 생두를 선택할 때는 ‘커핑(Cupping)’을 통해 결정한다. 각 나라에서 샘플을 구매해 로스팅 후 맛을 보고 선택한다. 산지에서 직구매할 경우, 샘플을 받고 구매 확정 후 생두가 들어오기까지 빠르면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한 컨테이너를 채우지 못하면 3~4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한 컨테이너에는 대략 250~280백, 1백당 60kg이면 전체 무게는 15~16.8톤 정도다. 공장 규모가 아닌 카페들은 한 종류를 많이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공동 다이렉트 트레이딩을 활용한다.
일반인은 농장 관련 이야기를 카페 주인장을 통하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단골로 가는 카페나 원두를 구매하면 판매하는 곳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커피 문화는 단순히 마시는 것만이 아니다. 누군가와 만나는 자리에서, 커피 혹은 차를 곁들여 향기를 담은 담소를 나눈다. 오늘 나는 그 자리에서, 향그러운 엘살바도르 라스브루마스 농장 커피를 마셨다.
이제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며, 손끝으로 느낀 경험은 단순한 감각을 넘어 과학의 세계와 연결된다. 커피에도 물리와 화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작은 한 잔 속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