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혼자 오시던 손님이 생각났다. 그분은 서울에서 오셨다고 했는데, 손에는 늘 신문이 들려 있었다. 나이가 지긋했지만 에스프레소를 주문했고, 커피를 마시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분은 예전에 공무원이었고, 지금은 쉬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했다. 고위직이었던 듯했다. 약간은 자기 자랑이었고, 그렇게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가셨다.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나는 여러 사람이 모이면 주로 듣는 편이었다. 모임에서 말할 기회를 찾기도 어렵고, 말하는 도중 집중력이 약해 주도권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말재주도 타고 나야 하는데, 나는 그마저 부족했다. 그런 내가 4시간 동안 말을 이어간 경험을 했다. 뭘 알아야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예전에 와인을 배울 때 강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와인을 마시며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농장의 역사, 떼루아, 품종, 지역 등을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음료가 무엇이냐는 단순한 질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산지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곳 소식을 가져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눈다. 대를 이어 발전시킨 농장 이야기, 병충해를 이기기 위한 품종 개량 이야기, 기후 때문에 수확이 줄었다는 이야기 등이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수다로 연결된다.
커피를 도구로 모이는 그룹도 많다. 내가 속한 그룹은 나이와 경력이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각자가 경험과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같은 커피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인지하고 표현한다는 것을 이해하며, 우리는 서로의 표현력에 감탄했다. 연령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았다.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우연히 시작되지만, 때로 그 우연이 인연이 되기도 한다. 15년 전 세미나에서 처음 만난 젊은 친구들과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