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삶이 보인다
이호 작가의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웅진지식하우스, 2024)은 30여 년간 법의학자로 살아온 저자가 수많은 죽음의 현장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묻는 책이다. 제목에 ‘죽음 수업’이 들어 있지만, 이 책은 죽음을 분석하거나 가르치는 교재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성찰의 기록이다. 저자는 사고사의 원인을 차분하게 밝히며,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와 교훈을 따뜻하고 명료한 언어로 전한다.
책은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삶은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
법의학자인 저자는 다양한 죽음의 사례—사고사, 의문사, 재해—를 통해 사회 구조의 결함과 안전망의 부재를 드러낸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죽음을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연장된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는 개인의 처벌보다 사회적 책임과 제도적 예방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잘 살고 싶다면 죽음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을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소중함과 사랑, 연대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안전망을 이야기하던 저자는 그 책임의 근원이 결국 ‘기억하는 인간’에게 있음을 일깨운다. 죽음은 제도의 문제이자, 동시에 누군가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우리의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첫 번째 죽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죽음 이후에는 ‘나’의 의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죽음은 남겨진 자의 기억 속에서 일어난다. 나 또한 세상을 떠난 부모와 지인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기린다. 즐거움, 슬픔, 후회로 얽힌 기억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저자는 기억의 윤리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짚는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숨이 멎을 때, 두 번째는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다.” (p.141)
저자는 실수와 책임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며, 처벌만으로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필요한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원인 분석과 시스템 개선’이다. 객관적 조사를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재발 방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되는 사고는 결국 사회적 인식과 학습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주의를 집중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처벌을 강화하면 실수가 줄어든다”—이 두 가지는 모두 착각이다. (p.176~177)
죽음을 연구해온 저자가 자연의 언어로 생명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배운 것은 결국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이는 곧 공감과 배려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서남대학교 의대 김성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배려와 공감이야말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근본 가치임을 상기시킨다.
“나뭇잎은 바람에 흩날려도 서로 간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p.257)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는 말을 남긴다. 타인의 고통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자신에게 배려와 사랑을 가르쳐준 김상호 교수와 문국진 교수, 두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매일 죽음을 마주하지만,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는 법의학자 이호. 그는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며, “잘 살고 싶다면 죽음을 배워야 한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인간 존재의 품격을 묻는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 삶에 지친 이들,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노년의 독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통찰을 줄 것이다.
“삶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지금 살아 숨 쉬는 모든 당신이 기적이다.” (표지 뒷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