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처음이지만 지식은 커지더라

by 필민

한 잔의 커피에도 수많은 학문이 숨어 있다.

머리로 배운 지식은 손으로 익혀질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커피를 배우며 세상을 함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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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시작했던 커피가 10년이 지나, 나를 공부의 길로 이끌 줄은 몰랐다. 외우는 공부가 싫어 책조차 멀리하던 내게 커피는 자연스럽게 공부로 다가왔다. 커피 관련 책뿐 아니라 과학, 화학, 생명 분야까지 흥미가 번졌다. 커피를 깊이 이해하려면 과학의 원리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책부터 보기 시작했다.

커피를 볶을 때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을 이해하려다 보니 화학 교과서를 펼쳤고, 향미의 추출 과정을 알고 싶어 물리학의 용해도와 확산 이론을 공부했다. 커피 체리가 익어가는 과정은 생물학의 영역이었고, 맛을 느끼는 감각은 뇌과학과 인지학으로 이어졌다. 하나의 궁금증이 다른 학문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기억은 느려졌지만, 이해는 깊어졌다. 젊은 친구들보다 정보를 오래 기억하기 어렵지만, 어려운 책도 반복해 읽었다. 다섯 해를 넘기자 뇌에 정보가 차곡차곡 저장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개념을 이해할 때마다 도파민이 분출되며 온몸이 깨어나는 듯했다.


커피에서 출발한 공부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뇌과학, 인지학으로 확장되었다. 지식은 내 삶의 또 다른 영양이 되었고, 살아 있는 한 배우며 성장하고 싶다는 욕망을 일깨웠다.


하지만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쉽게 식는다. 몸으로 겪어본 배움만이 오래 남는다. 커피 로스팅을 처음 배울 때, 관련 용어조차 생소했다. 책을 미리 읽었다면 조금은 이해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단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낯선 단어들이 외국어처럼 느껴졌고, 몇 년 뒤 예전 노트를 다시 펼쳐보며 그 단어들이 익숙하게 다가오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깨달았다. 앎은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을.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며 수많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경험의 가치는 단순히 '해봤다'는 사실로 결정되지 않는다. 경험은 감탄으로 끝나지 않고, 이해로 이어질 때 의미가 된다.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조금씩 알아갔다.


커피를 공부하면서 예전의 요리 경험들이 떠올랐다. 밥 짓기, 불고기 볶기, 갈비 양념하기—그 과정 하나하나가 열과 시간, 재료의 조화였다. 커피도 다르지 않았다. 경험만으로 기술을 익힐 수도 있지만, 과학적 탐구와 결합될 때 비로소 깊어진다. 커피는 결국, 일상의 경험을 다시 이해하게 했다.


커피의 향은 미각을 깨우고, 지식의 향은 사유를 넓혀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커피 한 잔 앞에서 생각한다. 이론과 경험이 만나는 곳에서, 나는 손의 기억으로 배움을 새긴다. 배움은 끝이 없고, 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혼자 배우던 불씨가 이제 다른 이들의 손끝으로 옮겨간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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