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를 들다 01.] 배고파서, 안 먹으려고 쓰는 글

by ONDI

입 짧은 아들이 저녁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요구했다.

라면 좀 끓여 달라고.

하필 오늘이냐.

나 식단 이틀차인데.

숨을 참으며 라면을 끓였다.


지금 막 남편이 퇴근했다.

라면을 끓인다.

끓여달라고 하진 않았지만 배려는 거기까지였다.

후루룩이라니, 다이어트하는 마누라 앞에서 후루룩이라니.

나 식단 이틀차인데.


라면은 잔인하다.

냄새며, 소리며, 빛깔까지.

오감을 무자비하게 들쑤신다.

나 무려 무. 염. 식단 이틀차인데!


두서없는 이 글은

필사적으로 '한 입만'을 참기 위한 글.

손이 떨린다. 자꾸만 멈칫거린다.

면 한가닥은 괜찮지 않을까.

국물 한 방울은 인간적인 거 아닌가.


아... 다 집어 칠까.

아니야, 송옥이 살 빼면 다 잘 풀린댔어.

내 살에 우리 집 재물운이 달렸을지도 모르는데

면발 한가닥에 마음이 무너진다.

이 자괴감이란...


쓴다. 계속 글 쓴다.

무슨 말을 쓰는지도 모르겠지만 쓴다.

타이핑 소리로 후루룩을 이겨보자.

언제까지 먹을 거냐.


내가 오늘 먹은 식단을 곱씹어본다.

나트륨 삭제한 어마무시한 식단.

내가 그걸 해냈다.

이렇게 실패할 순 없다.


근데 이제 겨우 이틀차잖아.

리셋하고 내일부터 다시 할까...


너네 진짜 나한테 왜 이러냐.


엉킨 실타래... 그냥 조금만 잘라버릴까.

한 가닥 잡아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한 손에 가위를, 다른 한 손에 쉽지 않은 한 가닥을 부여잡고,

나는 계속.. 고뇌 중.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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