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by 김기린

<누룽지>



씻겨주고 안쳐주니 좋더라

배 부르고 등 따시면 그만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었네


문이 닫히면 온통 까만 방

점점 뜨거워진 방바닥은 아랫목

가만히 보니 굴뚝이 안 보이더군


우리 서로가 뜨겁게 포옹하는 사이

따뜻한 쌀밥 내음 속에는

애 태우고 뜸 들이던 시간이 녹아있네


하얀 얼굴의 널 위해

난 기꺼이 바닥으로 향할 때

발 아래 뜨거움도 점점 무뎌지더니


불꽃이 어느새 연기로 모락모락 피어나

방 안 전체에 환하게 번지면

난 아무 일 없듯 바닥을 훌훌 털고 일어난다


구멍 숭숭 뚫린 몰골이라지만

흥부처럼 밥주걱 따귀 안 맞고도

밥알 몇 점 챙겼으면 족한 것이라


삶은

계란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삶은

누룽지


세상 솥 가장 낮은 곳

나는 그곳에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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