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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린 Mar 06. 2023

수라(修羅)/ 백석

나,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수라(修羅)/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동시를 쓰다가 ‘디카시’를 쓰고 있는 난, 방송대 국문과 교재를 받고, '시 창작론 ' 강의를 제일 먼저 들었다. 그러더니 1주일이 가기도 전에 강의를 모두 다 들었다.     

백석의 詩는 저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눈이 "푹푹 나린다" 거나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란 구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교재에서 처음 만난, '수라'는 그에 비해 다소 덜 알려진 詩일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시를 읽고 백석의 詩를 모조리 찾아 읽고 싶어졌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공감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사용된 시어 중 무척 재미있는 부문을 찾았다. 이를테면 1행에서는 거미의 새끼를 "거미새끼"라 하더니 이후에는 "새끼거미"라 표현한 부문이 그렇고 “울고불고할”이라고 표현한 부문이 그렇다.  

    

나 역시, 시를 쓰면서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나오면 언어유희를 즐기기도 한다. ‘수라’에서는 “거미새끼‘와 ”새끼거미’는 의미가 좀 다르게 쓰이고 있다. 시인은“새끼거미”를 “거미새끼”로 표현하며 성가시고 대수롭지 않은 미물(微物) 정도로 치부하며 무심하게 시를 시작한다. 그러다 연이어 나타나는 거미(가족)를 보며 감정의 점층적 변화. 즉, 짜릿하다 → 서러워하고 → 가슴이 메이고 → 슬퍼하는 것이다.“울고불고할”은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잘 대변하는 시어로 쓰였다.    


그다음 주목한 것은 제목이다. 나 같으면 ‘거미’ 정도로 제목을 지었을 터인데, 시인은‘수라’라 지었다. 수라는 불교에서 쓰이는 아수라의 준말이다. 중생이 윤회하는 천(天), 인(人), 아수라(阿修羅), 아귀(餓鬼), 축생(畜生), 지옥(地獄)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흔히 끔찍한 혼란 상태에 빠진 현장을 가르쳐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하는 것처럼 자주 쓰이는 용어이다.     


시인은 거미 대신‘수라’라고 제목을 지은 것은 거미의 처지에서는 가족과 헤어져 차디찬 밖으로 내 버려지는 상황은 곧 아수라장과 같은 혼돈과 폭력의 상황을 빗대어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또한, 시인처럼 1930년대 일제 치하에서 고향을 떠나 낯선 객지에서 생활해야 했던 당시 상황을 거미 가족의 의인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리라.



* 사진 : 서울신문 기사(2017. 11.5.)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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