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유리, 저녁, 내리는 눈

by 신모나

눈이 걷혔다. 주말 아침부터 일정이 있어 외출을 감행했다. 담장에 쌓인 눈은 새벽 추위에 그대로 얼어있었다. 서로 엉겨 붙어 퍼석퍼석해진 얼음 알갱이 사이로 희미하게 빛이 고였다. 닦아 빛을 낸 진주알 같은 광채가 잠시 드리웠다 사라졌다. 길이 바빴고 귀가할 즈음, 진눈깨비 예보를 들었다. 어쩐지 차창 너머의 하늘이 어둡고 무거웠다. 뜨거운 커피에 진한 수프를 곁들이고 싶었다. 아주 잠시. 그러고선 주중에 읽다 만 책들을 해치웠다. 비상계엄 앞뒤로 드러난 군 수뇌부의 묵은 관행. 과오를 디딤돌 삼아 조직을 깨끗하게 씻어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뚜렷했다. 관찰자로서 보일 수 있는 지극한 애정이 인상 깊었다. 사람이 모이면 계파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무리 짓는 본능을 사회의 줄기와 통通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법이니까.


역시나 이번 주도 게으름과 성급함이 공존한 시기였다. 어쩌면 깊은 한탄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째서 감정은 때묻기 마련인가. 분명 처음 느꼈을 때는 순도 높은 희락이었을 텐데, 굽이치는 세월 따라 꺾이고 비틀려 종래에는 시작과 끝의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왜곡되고 만다. 바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과 나 자신을 속이는 속물적인 근성에는 진저리가 난다. 기대 없이 새롭게 알아가는 인간을 볼 때는 그런 속물 근성 역시 귀여운 매력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사건의 마디 마디 꺾여 느릿하게 변해가는 지난 인연을 바라볼 때다. 나 역시 장님은 아니다. 아니라면 본인의 영특함이 사회 평균 수준을 상회한다고 여기는 건지, ... 어떤 인터뷰에서 듣기로 "인간의 가장 큰 자유라 함은 스스로를 망칠 권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의하는 바다. 비합리적인, 부조리한 선택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다. 족쇄를 차는 일이야말로 누구의 간섭도 허용되지 않는 선택 아닌가. 단적으로 밝은 쪽으로 나가가는 일은 내부적으로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외부 조건에 따라 계산기를 두들기다 보니 번민이 쌓일 뿐이다. 여하튼, 갖은 내적인 괴로움 끝에 선택한 망가짐. 품위를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얻은 타인의 자유가 이렇게 징그럽게 느껴질 줄이야. 시간에 물살에 떠밀리는 것은 나뿐 아니다. 무언기를 그대로 놓아두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이제야 이해한다. 변한다는 것이 이토록 끔찍한 일이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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