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렸다. 어쩐지 투명한 햇빛에 비해 날이 포근했다. 깎아지른 비탈길 복판에 거취를 구한 탓에 대로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이다. 겨울 하늘은 높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다. 온통 창백한 사위를 허정대며 걷다 멈춰 서면 앉은뱅이 주택 담장에 고인 찬란한 빛에 계절을 체감한다. 사방이 밝고 깊다. 공기가 가벼운 만큼 색의 물성은 짙게 가라앉는다. 경기도 외곽, 평지에 드리운 평탄 평온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누린 적 없던 계절의 단면이다. 낡은 주택 굴뚝을 타고 희부연 연기가 오르면 수분 없이 말라 얇게 비틀린 가지가 희미하게 모습을 감춘다. 아름답게 조성된 가로수 잎새는 아직 우수수 붉고 노랗게 흔들리는데, 산비탈 동네는 보다 정적이다. 잎새 대신 우렁우렁 맺힌 감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갈 데 없는 신세라도 어쩐지 멀찍이 떠나고만 싶다. 얇은 비단 물결 일렁이듯 어지럽던 실루엣도 깨끗하게 개고 온통 선명한 계절이니까. 출근길마다 애틋해진다. 아주 밑으로 내려가 산맥 깊게 잡힌 계곡을 찾고 싶다. 날카롭게 잘린 바위 옆면을 서성대면 바삭하게 마른 갈잎이 신발 밑창을 구르고, 물살 위로 새털 구름처럼 사박사박한 살얼음이 맺혀 깔깔하고 고요한 소리가 낮게 깔려 있을 테다. 흙먼지로 더러운 자갈을 주워 문지르다 보면 만사 단순해지기 마련인데, ... 도심의 8차선이 가쁘고 바빠 그러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