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그만 사겠다는 결심을 또 어겼다. 지난주 누적된 피로로 한참을 앓다 겨우 일어난 주말 오후였다. 개인 하늘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창 밑에 침대를 둔 덕분에 일어나 가장 먼저 바깥 풍경을 마주하는 기쁨을 얻었다. 맑게 닦아둔 흰 창틀은 잘 익은 황매실처럼 반짝였다. 지대가 높아 대로가 트여 보였다. 대열을 이룬 아파트 벽면 위로도 엷은 태양빛이 스몄다. 깊은 밤중에나 점멸등으로 살피던 골목골목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몰랐다. 침대 헤더에 기우는 몸을 받친 채로 허공을 세다 보면 묵은 어둠을 구르는 색색의 불빛, 알사탕처럼 달콤한 피로를 떠안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외로운 사람들... 하지만 헛헛한 생각으로 허비하기엔 아까운 주말이었다. 부산스러운 잰걸음으로 서둘러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간만에 나가 점심을 먹고 좋아하는 카페를 방문하고 싶었다. 차가운 공기에 삶의 무게를 떠밀어 상가 처마마다 놓아두고 돌아올 작정이었다. 그렇게 품에 한아름 책을 안고 언 도로를 돌아 귀가한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읽지도 못할 책을 모아 책장을 꾸리는 건 설익은 아쉬움 때문이다. 겨울의 초입, 외롭기엔 바빴고 한가롭지 않아 매일이 무거웠다. 이미 열병이 오를 대로 오른 몸을 끌고 신서울 곳곳을 누볐다. 여의도의 칼바람은 매서웠고 구로 인근의 공단은 뭉근하게 고인 냉기로 발목이 시렸다. 강남과 광화문 대로는 개인의 삶을 쉽게 집어삼켰다. 건물마다 배긴 귀중하거나 사사로운 이야기가 조직을 이뤄 하나의 문화로써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속한 기업의 얼굴을 달고 가쁘게 웃었다. 감정은 짧고 말은 길었다. 군맹평상이라는 농담처럼 순간의 경향성은 살필 수 있어도 비즈니스의 윤곽을 단숨에 꿰차기는 어려웠다. 미팅이 끝나면 온갖 곳에 감사 인사를 전하기에 바빴다. 미팅이 없으면 때에 맞춰 식사를 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쌓인 일감이 여간해야지... 게다가 격의 없음의 이름으로 헤집힐 때마다 열이 끓어 골이 울렸다. 특유의 빈정대는 마음이 잘 갈려 손 끝을 맴돌다가도 무기력한 피로에 짓눌러 말과 마음을 참았다. 하지만 이렇게 참는 것도 젊은 시절뿐이겠지. 시간이 흐르고 나중이 되어서,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될 즈음에, 그때는 과연 내가 어떤 칼을 쥐고 있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