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도시에 왔다. 색이 옅은 구옥 건물은 몸체가 곧다. 인적이 드문 만큼 단순 명쾌한 합리성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새벽녘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고속도로를 달렸다. 차가운 어둠 장막을 가르고 빛발 사이로 드러난 능선의 굴곡이 깊었다. 은사 레이스 안개를 따라 겹겹이 가려진 산등성이가 흐릿해 문득 눈물이 차올랐다. 어쩌자고 짙은 피로를 견디고 나와 무작정 달음박질을 시작한 걸까. 안팎으로 조여오는 삶의 얼개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만들어 조직 깊숙하게 심은 문제에 등을 돌린 채 오래도록 쉬고 싶었다. 바라는 건 간단 명료한 일상이었음에도 불현듯 이는 파란에 주와 달, 이를 넘어 몇 년을 성큼성큼 잃어버리며 살기를 자주였다. 기댈 구석과 비빌 언덕이라는 표현으로 심상한 삶을 낮잡아 부르면서도, 어쩌면 간절히 의지할 데를 바라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내게 한가롭게 소설을 읽고 글을 쓰자고 청했다. 나는 순순히 수락했다. 그리고 이틀, 긴장이 풀어지자 단어와 문장이 심장에 닿았다. 감상은 봄날 바람결처럼 살갑게 밀려왔다 흩어졌다. 그간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던가. 광화문 인파 사이에서 어깨를 펴고 주먹을 세게 쥐어가며, 걷는 걸음마다 무게를 더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런 나를 안타까워 하는 그의 마음 앞에서 나는 자주 다리가 풀렸다. 많이 앓고 우기며, 가끔씩은 울었다. 혼자 울 때도 보란 듯이 훌쩍일 때도 있었다. 내 안에 우물처럼 깊은 눈물이 쌓여 있는 줄 이제껏 몰랐다. 지난밤,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앉았다. 그는 겹겹으로 감춰진 나의 외로움을 읽을 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맨다고 했다. 나는 몇 마디 말속에서 상태 '이상 없음'을 포착해 깨진 틈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그 마음에 손바닥이 간지러워졌다. 맑고 차가운 공기가 몸 안에 쌓였다. 떨림 속에서 차오르는 선량함을 느낄 때마다 다른 사람처럼 침대 맡을 서성대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잠든 상대의 고운 눈까풀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일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