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지난 주말 하동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마다 빼놓지 않고 책을 들고 가는 편. 이번에는 목정원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과 함께 했다. 일정은 단순했다. 관광지는 쌍계사와 차밭 한 곳 외에는 없었다. 목적인 휴식을 위해 넉넉한 마음으로 계획을 짠 덕분이다. 다만 계절이 가을로 접어듦과 함께 아프기 시작했던 몸이 여행이라고 편안하진 못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어느덧 11월도 중엽. 늦봄에 퇴사한 뒤 벌써 세 번째 계절이다. 평년보다 숲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덕분에 초겨울에 단풍을 맞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제껏 국내 여행을 자주 다녔으나 산맥을 파고든 건 처음이었다. 깊은 숲과 빛나는 강, 움푹 패인 줄기 사이로 시간이 고여 흐르지 않는 듯 고요한 마을. 도회지와는 다른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혔다. 실타래 같은 바람을 최대한 즐기고 싶었지만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불교 신자인 친구를 따라 할 수 있는 예의를 차리고 돌담에 기대 햇볕을 맞았다. 눈 닿는 곳마다 은행 나뭇잎이 날리고 있었다. 물에 갠 금가루를 바람에 덧입히면 꼭 지금과 같을까. 이상야릇하게 어지러운 계절 속에서 나는 내 마음 하나 추스르기 어려웠다.
평년과 비교해 템포가 느린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간의 흐름은 점점 무뎌졌다. 천천히, 또다시 천천히. 하루가 늘어질수록 마음은 연해지고 있다. 작은 흔들림에도 쉽게 멈춰 서는 발걸음. 아니라지만 섬세하다는 말을 나약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여겨왔던 내게는 좋지 않은 변화로 느껴졌다. 몸이 아픈 것 역시 그 때문으로 여겨지기에 더더욱. 좋은 건 하나다. 갖은 문장들을 눈에 품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목정원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한창 근무할 때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이다. 일을 할 당시에 나는 예외나 변수를 두지 않는 차갑고 날카로운, 동시에 단단한 문장을 앞세워야 한다고 배웠다. 섬세한 단어를 겹겹으로 쌓아 마음을 전하는 화자의 글은 내게 너무 멀었다. 내게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해야 할 이야기도 들어야 할 이야기도 너무 많았다. 보이지 않게 밀어 둔 책을 여행길에 챙겨 들게 만든 건 누구의 안배였을까.
'그 시집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깊이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일, 낯선 서울의 겨울을 산책하는 동안에도 아마 그것을 끝내 다행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덕분에 저는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충분히 쉬었다는 생각과 아직 모자라다는 생각이 수시로 교차한다. 도회지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익숙한 장소와 당시에는 몰랐으나 그리운 이름, 떠오르는 추억들은 나를 쉽게 뒤흔든다. 과거는 나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어쩌면 생각을 멈추고 다시 일상에 투신하는 것만이 나를 편안케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년 겨울, 나는 운수가 없었으므로 올해는 특히나 혹독한 나날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겪어야 했던, 혹은 겪지 않아도 좋았던 모든 상처가 나를 앞으로 밀어 올렸음을 알고 있기에, 또한 어떤 사건은 피한다고 피해질 것이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언제나처럼 해야 할 일을 꾸려 하루를 채우고 비워내는 일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