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주는 것들
동남아에 살면 정수 필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이 된다. 깨끗한 한국의 수돗물, 그 당연했던 일상은 정말이지 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음을 다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유럽에서는 석회 성분이 가득한 물로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투명한 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필터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엔 낯설고 번거로웠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또 다른 필터
비단 물뿐일까? 해외에 거주하면서 드는 막연한 두려움 중 하나는 내가 그동안 자연스럽게 사용해 왔던 보이지 않는 필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했기에 그 안에 있을 때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의 존재감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학연, 지연, 혈연.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악습이라 흔히들 말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가치관을 형성한 토대는 바로 그것에 있었다. 그 틀 안에서 나는 안전했고, 그 울타리 안에서 나는 이해받았으며, 그 경계 안에서 나는 편안했다.
고만고만
내 친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정말이지 고만고만하다. 내가 살던 동네, 같은 지역, 비슷한 소득 수준, 비슷한 교육 수준, 닮은 취미와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여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그들과는 말이 통한다. 긴 설명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농담에 웃으며, 비슷한 고민을 공유한다. 그들과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위치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환경을 바꾸라는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필터 안에 머무르는 한, 나는 영원히 그 틀 안의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까.
낯선 곳에 던져짐
익숙함과 편안함을 뒤로하고 새로운 필터로 갈아 끼우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해외에 거주하다 보면 앞서 말한 동네, 지역, 소득 수준, 교육 수준, 취미, 성향이라는 세밀한 필터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한국인'이라는 거대하고 거친 하나의 필터만 남는다.
내가 영어를, 혹은 거주하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나는 당장에 가장 최소한의 필터만 끼우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곳엔 정말이지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평생을 가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상대방이 한국어를 사용하니 내가 알아들을 뿐이지, 그들의 행동과 가치관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 그 낯섦 속에서 나는 종종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내가 기대고 있던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그것이 사라진 지금에야 절실히 깨닫는다.
새로운 필터 찾기
이곳에서의 내 필터가 형편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기 때문일까? 나는 이곳의 언어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의 필터를 조심스럽게 빌려 쓰고 있다. 신기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 그 따뜻한 안정감을 느낄 때면 가슴 한편이 촉촉해진다. 그리고 이 소중한 감정을 얼마 전 태어난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어진다. 이곳이 우리 아들에게는 좋은 필터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이곳의 언어를 배우며, 이곳의 문화 속에서 자랄 것이다. 나에게는 낯설었던 것들이 아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이 자라 자신만의 필터를 가지게 될 때, 그것이 든든하고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길 바란다.
필터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필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과정이 때로는 힘들고 외롭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내와 아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이 낯선 땅에서 한 걸음씩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