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그 자체인 사장님
해외살이가 만 2년을 넘어가면서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는데 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함께할 동료의 부재이거나 페이스메이커의 부재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을 배우려 하더라도 낯선 장벽이 있다는 둥 자꾸만 못하는 이유를 찾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조건이 완벽하지 못하니 할 수 없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였다.
이럴 때는 젊고 에너지 넘치는 기업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에너지를 채워가는 시간을 가지면 다시 시도해 보아야겠다며 결의를 다질 수 있을 텐데, 황량하기 그지없는 내 인맥 중에 이런 사람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그러던 중 SNS를 통해 태국에서 스타트 업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트렁크만 덜렁 들고 외국에 와서 스타트업이라니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대기업도 살아남기 힘든 태국에서 스타트업이라니. 이 사람 사업을 알긴 아는 사람인가? ‘
그런데 이 무모한 도전을 홀로 이어가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왜 여기서 사업을 하는 것일까?‘
나에게 회계를 맛 보여준 K의 도움으로 H를 만나게 됐다. H는 바쁜 와중에 나를 위해 잠시 시간을 내주었다.
만남을 약속한 날, 그가 도착하기 전에 왜 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는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스타트업의 출구전략은 무엇인지 등등 질문을 스무 개 남짓 써두었다. 그의 생각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싶은 내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했고 중간에 대화가 멈추었을 때 어색함을 방지하려는 나의 묘책이기도 했다.
저 멀리서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그의 아우라에는 젊음이 이라는 아름다움과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진 에너지가 느껴졌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전투적으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나의 첫 번째 질문 이후 나머지 질문들은 의미를 잃었음을 알았다.
그 질문은 바로 “왜 태국인가요? “ 였다.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서요.”
나는 순간 말을 잊지 못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자주 듣던 ‘칠칠치 못하다’, ’ 뒷손이 부족하다’, ‘꼼꼼하지 못하다 ‘는 지적들은 늘 나를 따라다녔고 ‘마무리를 잘하지 못한다 ‘는 평가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업무를 하면서 규정과 맞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보고 또 보지만 결국 놓치는 부분이 생겼을 때, 글의 소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지 계속 검열했지만 막상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심지어는 발표를 하다가 꼬인 발음에도 자책했다. 사실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별일 아닌 것들이다.
행여나 틀렸더라도 빨리 수정하거나 해결방법을 찾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면 되는데 창피함에 자아가 박살 날 일도 아니고 트라우마에 짓눌린 나는 그토록 스스로를 몰아세워 불안만 더 높여왔다.
그를 만나고 그 주 주말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보냈다. 보통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과 주말 시간을 이용해 해치우듯 마무리하는 과업들이 몇몇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게으름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조차도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미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용기.
그것을 더 끄집어내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