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워킹맘, 두근두근 모험을 다시 시작할 때

너무 불안해 불안을 먹어버린

by ONNA

손목에 겨우 매달린 듯 붙어 있는 스마트워치가 나를 깨우면 일어나 창밖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고요하다.


하지만 도시는 잠드는 법이 없듯 벌써 창밖으로 오토바이 무리가 줄을 지어 도로를 쾌속 질주한다.


일어난 김에 느슨하게 몸을 흔들어 깨우고, 부엌으로 물을 마시러 가는 김에 빨랫감을 수거해 세탁기를 돌린다. 지난밤 무심히 쌓인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을 정리하고 애매하게 하나둘씩 덩그러니 놓인 설거지 거리는 못 본 척 지나치려다 닦아둔다.


매일 챙겨 보내는 아이의 물병은 내가 잠시 게으름을 부린 사이에 곰팡이라도 앉았을 세라 느슨했던 눈 빛에 날을 세워 관찰해 보고 물을 가득 부어 준비해 둔다.


이렇게 방콕 워킹맘의 아침이 시작된다.


국제학교든 현지 학교든 아이들은 학교에 일찍 간다. 이번 학기는 스쿨버스가 7시 10분에 아이를 데리러 오는데 아주 이른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집에서 학교가 가까워서 5분 내로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등교할 때는 가장 나중에 타고 하교할 때는 가장 먼저 내린다. 아이는 이것이 참 좋다고 했다.


아이는 7시에 겨우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지난밤 미리 챙겨 둔 가방을 챙겨 들고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데 어느 날은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가는 날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학교에서 10시쯤에 간식을 준단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나도 출근을 하는데, 원래 심각한 교통체증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가 출근하는 시간은 아무래도 아이들 등굣길과 겹쳐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좁은 도로 위를 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스친다.


업무가 끝나면 출근길 보다 더 심각한 교통체증을 뚫고 집으로 간다. 집에 도착하면 어느 날은 로비에서 배달음식을 찾아 올라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미리 만들어둔 밀키트를 데우고 밥만 퍼서 저녁을 해결한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심각한 교통체증을 뚫고 집에 도착했다. 미리 시켜둔 배달음식을 남편이 가지러 간 사이에 아이는 테이블을 닦고 나는 달걀을 부치고 김치를 꺼낸다. 이렇게 셋이 손발이 척척 맞는 날이 오다니. 감회가 새롭다.


식사를 하다가 주황색 전구를 켠 듯 커다란 보름달이 우리를 비추었다. 방콕은 산이 없어서 달이 조금만 높이 뜨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크고 둥근 주황색 달을 보며 아이는 ‘달에 가면 치즈가 많을 것 같다’며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아빠와 나란히 베란다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둘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남은 식사를 해치우고 아이에게 미리 책가방을 챙길 것을 주문한다.


이렇게 소소한 하루가 저문다.


태국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만나는 사람 모두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매일이 불안으로 가득하고 일상을 하나하나 영위해 나갈 때마다 우여곡절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약간 안정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지금의 평화는 지난 시간 동안 좌충우돌하며 쌓은 나의 생활지도가 어느 정도 완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야말로 나의 과업들을 해결하기 위한 로드맵이 잘 구성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너무(?) 평화롭다.

뭔가 알맹이가 없는 나를 보는 것 같다. 외려 평화로움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다시 내가 주도하는 불안을 느낄 때가 됐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불안을 떨쳐내려 조깅, 명상, 요가 등등 많은 것을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런데 불안을 없애려 할수록 이상하게 불안은 더욱 나를 옭죄 왔다.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등에서 식은땀이 흥건히 흘렀고 곧 잘 배가 아파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게 됐는데 그때마다 쥐어짠 심장이 펄떡이듯 날 뛰어 손이 덜덜 떨렸다.


결국 이런 아픈 상황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선택을 하면서 개선됐다. 그야말로 내 몸을 흔드는 불안을 성장하고 개척을 위한 에너지로 써버린 것이다. 그랬더니 어느덧 불안을 인지하고, 불안의 원인을 찾아내고, 불안을 해소하면서 내면은 성장하고 외연은 확장하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변화 없는 일상이 지속되면 다시 템포가 느려지면서 기운이 축축 가라앉게 되는 법.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다시 모험을 시작할 때가 됐음을 몸이 먼저 알려주는 듯하다.

방콕에서 다시 시작할 나의 모험.


이제는 다시 모험을 도모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