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를 설레게도 하지만 두렵게도 만들었다.
캐나다 위니펙에 왔다. 약 10주간의 일정을 계획하고 아이들만 데리고 왔다. 아내는 서울에서 돈을 벌고, 휴직중인 내가 오롯이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다. 나름 기댈 언덕이 있긴 했다 친 누나가 6년 전 이곳에 이민와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도 아이들도 생각보다 쉽게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있었다.
와중에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큰 아들의 맹장이 터져버려 수술을 해야 했다. 정말 그때는 빨리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아들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어, 지난날을 반성하고 아들에게 미안해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들은 낯선 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열심히 걸은 덕분에 아들은 생각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수술 후 3일만에 퇴원했고, 그 후 1주일 뒤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은 경과가 좋다며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의사로부터 안심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 다음날 우리는 밴프로 여행을 떠났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아들의 몸상태가 여행을 하는 데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우리의 여행을 독려해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수술한 지 2주된 아이를 데리고 밴프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총 7박 8일 간의 일정이었다. 밴프까지 왕복 3,000여 km를 아들 둘을 데리고 자동차로 다녀왔다.
자동차로 밴프에 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은 나를 말렸다. 아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고생할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뻥 뚫린 캐나다 도로라도 장거리 운전은 쉽지 않다. 편도 14시간이 넘는 시간을 나 혼자 운전해야 했다. 5시간만 운전해도 힘든 나였기에 운전 자체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보다 더 걱정인 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10시간 넘게 차에 있어야 했다. 꽤나 지루할 것이었다. 이미 밴프로 자동차 여행을 다녀온 사촌들도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는 그런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편한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로 여행해보고 싶었다. 일정만 잘 짜면 힘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오가며 의외의 장소에서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뭔가 밋밋한 비행기 여행보다 자동차 여행이 좀 더 멋져보이기도 했다. 그런 근거 없는 기대감이 자꾸 나로 하여금 편한 비행기가 아닌, 조금 고생하는 자동차 여행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캐나다에 오기 직전 읽었던 김민식 PD님의 신간 <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의 영향도 있었다. 김민식 PD께서 딸들과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이번 여행에서 뭔가 아이들의 특별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다. 아이들도 나도 힘들 수 있겠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부모의 이기심일 수도 있었겠지만...
호기롭게 자동차 여행에 도전했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무서웠다. 그냥 막연히 두려웠다.
자동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퍼지면 어떻게 하지? 맹장 수술을 한 아들이 갑자기 다시 아프다고 하면 어디에 연락해야 하나? 텐트에서 잘 때 너무 추우면 어디로 가야 하나? 내가 아프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막연한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따라오는 것이기도 했다. 휴직을 시작할 때도 이런 저런 생각으로 두려웠었다. 지리산 포도단식원에 갈 때도 그랬고, 이곳 캐나다에 올 때도 그랬다. 항상 뭘 하려고만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 게다가 나의 조력자인 아내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두려움은 두 배, 세 배로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혼자서 아이 둘을 케어하며 여행을 간다는 게 너무 두려워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이곳 캐나다에서 알게된 분이 있었다. 그는 우리말을 잘 하는 캐나다 사람이었다. 대학생인 그는 방학중이라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어릴 적 밴프에 가본 이후 한 번도 가본 적 없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정도 만난 그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도 했었다.
그 정도로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게 겁이 났다.
처음에는 함께 가겠다고 했던 그는 출발하기 며칠 전 같이 가는 게 부담스럽다며 사양했다. 갑자기 못가겠다고 하는 그가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무리한 부탁이었다. 몇 번 만난 사이인데 여행을 함께 한다는게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그의 부탁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괜히 함께 했더라면 모두가 여행 중 불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그런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이 둘을 데리고 밴프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걱정은 차와 아이들이었다. 오랜 운전으로 인해 차가 퍼져버리면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이들까지 장거리 이동으로 지쳐버리면 그것 또한 답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나의 짜증지수도 올라간다. 괴팍한 괴물로 변하지 않으려면 아이들이 즐거워야 했다. 최대한 아이들과 차를 배려한 일정을 짰다.
그래서 가는 데 2박 3일, 오는 데 2박 3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1일차 : 위니펙 - 리자니아 이동 (5시간)
2일차 : 리자이나 - 캘거리 이동 (7시간)
3일차 : 캘거리 - 밴프 이동 (2시간)
4일차 ~ 5일차 : 밴프 일정
6일차 : 밴프 - 브룩스 이동 (3시간)
7일차 : 브룩스 - 그래스랜드 국립공원 이동 (5시간)
8일차 : 그래스랜드 국립공원 - 위니펙 이동 (7시간)
위니펙에서 밴프까지 가는 데 하루만에 간다는 집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최대한 여유를 부렸다. 정작 밴프에서는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말이다.
오가는 길에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이런 저런 준비물도 챙겨갔다. 우선 차에서 먹을 간식들을 챙겼다. 배고픔은 멀쩡한 아이들도 짜증나게 만든다. 배고프지 않게 수시로 입에 뭘 넣어주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먹으면서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게 할 생각이었다. 게임기도 챙겼다. 게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게임으로 한 두시간은 넉넉히 버틸 수 있다. 그리고 큰아들이 좋아하는 종이접기를 위한 색종이, 둘째 아들이 최근 관심있게 봤던 만화책도 챙겼다. 이것저것 차속에 한가득 싣고 여행을 시작했다.
중간에 머무는 도시에서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캘거리와 브룩스 호텔을 예약할 땐 일부러 수영장이 있는 호텔로 예약하기도 했다. 수영장이라고 해봤자 작은 풀장이었지만 물만 있다면 어디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었기에 수영장의 상태가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다행히 호텔들도 비싸지 않았고.
첫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니만큼 아이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일정을 짰다. 그리고 그게 나를 위한 길이기도 했다. 하루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운전에 할애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과 7박 8일의 여행은 너무나 즐거웠다. 아이들과 밴프에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었다. 조금은 지루해 하긴 했지만, 긴 자동차 여행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잘 즐겨줬고, 때론 잘 참아줬다. 아빠가 기분이 안좋은 것 같으면 알아서 잠자코 있어주기도 했다.
차도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 정비를 한 번 받고, 엔진오일도 갈아준 덕분인지 오래된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는 7박 8일 동안 3000km가 넘는 장거리 여행을 자동차로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며칠 뒤 지인의 블로그를 통해 인상 깊은 문구를 접했다.
"걱정하는 일은 대개 일어나지 않느다"
<프로이트의 의자>라는 책에서 나온 문구라고 한다. 지인은 이 책을 읽으며 쓸데 없는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과 몸 건강에 이롭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무엇을 하든 두려운 감정부터 먼저 휩싸이는 나에게 의미있는 문장으로 다가왔다.
이번 밴프 여행을 통해 나는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쓸데 없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번 여행이든, 또 다른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든 다시 두려움에 휩싸일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나 안전지대 밖을 벗어나는 일은 큰 부담이고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어진 길을 벗어나본 경험이 별로 없는 소심한 A형인 나에게는 안가본 길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다. 안전지대 밖은 낭떠러지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다행히 조금씩 내성이 생기고 있다. 여전히 두렵고 무섭지만, 두려운 일들을 한 번씩 경험하다보니 두려움이 왜 생기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렵다고 생각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두려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또한 할게 되었다.
이번 밴프여행이 그랬다. 이번 여행은 나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다음번에 얼마나 이를 잘 극복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그런 의미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