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한 것 이상의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한 밴프여행이었다. 자동차 여행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위니펙에서 밴프까지 왕복 3천킬로미터 여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고 보니 걸리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차가 퍼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유일한 보호자인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보살피나 겁이 났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괜한 고생을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행히 여행은 순탄했다.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즐거웠다. 자동차로 한 여행이 주는 묘미도 있었다. 우연찮게 들린 곳에서 엄청난 감동을 받기도 했다. 여행을 마치고 위니펙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동시에 만세를 외쳤다. 아이들과 즐거운 여행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리고 하나씩 정리하며 여행을 돌아봤다.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힘든 날도 있었고, 감동적인 날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항상 즐거울리는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특별한 의미를 던져준 곳도 있었다. 아이를 독점으로 봐야 했던 밴프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여행을 정리하며, 특별한 의미로 기억에 남은 일곱 곳을 꼽아봤다. 내 맘대로 정해본 밴프여행 베스트 7이다.
몇 해 전, 유키쿠라모토의 레이크 루이스 피아노곡을 듣고 난 이후부터, 레이크 루이스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아름다운 레이크 루이스를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밴프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이곳은 나의 1번 목적지이기도 했다. 동경의 대상인 이곳을 빨리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2박 3일만에 도착한 밴프에서의 첫번째 목적지는 당연히 레이크 루이스일 수 밖에 없었다.
맨 처음 레이크 루이스를 만난 순간, 우리 3부자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호텔 창으로 보이는 레이크 루이스 호수는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같았다. 청록색 호수와 파란 하늘 그리고 눈덮인 산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했다.
레이크 루이스에서 탄 카누는 이 호수를 좀 더 가깝게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카누를 타며 바라본 레이크 루이스와 그 주변은 또 다른 멋이 있었다. 게다가 노를 젓는 재미도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장거리 운전을 통한 피로도 잊은 채 열심히 노를 저으며 레이크 루이스를 온몸으로 느꼈다.
단연코, 이번 여행의 최고의 순간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장소였다.
레이크 루이스, 넌 감동이었어!
두 번째로 꼽는 최고의 공간은 Grasslands 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밴프에서 위니펙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사스카츄완 주에 있는 국립공원이었다.
급하게 정한 목적지였다. 밴프의 캠핑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우리는 또다른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부랴부랴 사이트를 뒤졌고, 다행히 가는 길에 실제로 두 시간 이상을 돌아갔지만 찾아낸 곳이 바로 그래스랜즈 국립공원 내 캠핑장이었다.
가는 길은 무서웠다. 생각보다 험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캐나다의 대자연을 마음껏 관찰할 수 있었지만 너무 한적한 길이어서 주유소를 찾는 일조차 어려웠다. 마지막에는 몇 십 킬로미터를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했다. 소심한 A형인 나는, 과연 잘 도착할 수는 있는걸까 운전하는 내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히 이곳을 가자고 했나 후회하며 그렇게 그래스랜즈로 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금세 사라져 버렸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이곳 캠핑장은 마치 천국을 옮겨 놓은 것과 같은 환상적인 곳이었다. 해가 지는 모습 그리고 그속에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석양 조차 환상적이었다. 멀리서 해가 지는 걸 보느라 짐을 푸르는 것을 잊을 정도였으니!!!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밤하늘의 쏟아질듯한 별도 감상할 수 있었다. 아들들은 마치 우주에 있는 것 같다며, 별 장식을 한 돔 구장 안에 있는 것 같다며, 처음 보는 환상적인 우주를 감상하며 감동했다. 서울에서 절대 볼 수 없는 그런 밤하늘이었다. 밴프에서보다 더 많은 별이 쏟아졌다.
그리고 새벽에 잠시 깬 나는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을 마주하기도 했다.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멋진 하늘이었다. 아직도 그날의 몽환적인 아침은 잊을 수 없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얼마 머무르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저녁무렵부터 아침까지 멋진 하늘을 본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Grasslands, 부록이었지만, 본 선물보다 더 강렬했다!
세 번째 인상적인 곳은 아이스필즈웨이에 있는 설상차 체험장이었다. 밴프 국립공원에서 두 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가기 전부터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한 여름에 눈을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기대에 차 있었다.
사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눈을 만난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하고 싶던 눈싸움을 하진 못했다. 이곳은 빙하로 만들어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설상차를 타고 만난 이곳 체험장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빙하를 만지며 신기해 하기도 했고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는 바람에 신발이 다 젖기도 했다. 아이들의 신난 감정은 오롯이 사진에 드러나기도 했다.
사실 이곳 설상차 체험은 참여하는데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체험 시간을 따로 예약하지 않은 바람에,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덕분에 너무 늦게 체험이 끝나 숙소에 서둘러 가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도 나도 한 여름의 빙하 체험은 너무나 신나는 경험이었다.
아이스필드 어드벤쳐, 고생한 만큼 좋은 곳이었다.
밴프에는 곰이 자주 출현한다. 갑작스런 곰의 출현에 대비하기 위해서,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은 꼭 곰 스프레이를 지니고 다닌다. 곰이 왔을 때 곰에게 뿌리고 도망가야 하기 때문이다. 곰이 나타날까봐 무섭기도 했지만, 한 번 곰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야생의 곰을 언제 만나보겠는가?
그렇게 막연히 곰을 만나는 상상을 했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그것도 밴프에서 떠나는 날 상상이 현실로 실현되었다. 바로 지근거리에서 곰 한마리가 나무를 뜯어 먹고 있었고 우연히 우리는 그것을 두눈으로 볼 수 있었다.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다. 곰은 자기 먹는 것에만 집중했고, 우리는 차 안에서 안전하게 볼 수 있었다.
곰을 본 나도, 아이들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생의 곰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다.
곰을 만나면서 우리는 또 다른 교훈을 얻기도 했다. 바로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곰을 만나기 전, 우리는 애써 참여한 가이드 관광에 적잖게 실망한 상태였다. 무료긴 했지만, 영어도 귀에도 잘 안들어왔고 아이들이 흥미로워할만한 주제도 아니었다. 도중에 우리끼리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곰을 만난 것이었다. 실망한 가이드 투어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곰을 영접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좋은 일이라고 너무 좋아할 필요도,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너무 우울해 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곰을 만나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곰을 봤다는 자체도 좋았지만, 그걸 통해 사소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더 좋았다.
곰님, 내게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밴프 캠핑장에서 이틀밤을 보냈다. 하루는 텐트만 빌려주는 캠핑장이었고, 다른 하루는 오두막 캠핑장이었다. 한국에서도 캠핑을 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이곳 캠핑장에서의 경험은 새롭고, 또 즐거운 경험이었다.
캠핑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끓여 먹은 짜장라면은 그 어떤 라면보다 맛있었다.
아이들과 불장난도 했다. 함께 피운 장작불에 캠프파이어도 했다. 다같이 마시멜로를 구워먹으며 여행을 음미하기도 했다.
다음날엔 머물렀던 오두막은 기대 이상이었다. 서울에서 가본 글램핑 장보다 훨씬 더 좋았다.
캠핑장에서 아이들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며 나를 흐뭇하게 만들기도 했다. 불 담당을 했던 큰 아들은 꺼져가는 불씨를 부채질을 통해 살려냈으며, 설거지 담당 둘째는 열심히 식기를 씻고 나르며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샤워도 못하고, 추위에 조금 떨어야 하긴 했지만 잊지 못할 밴프에서의 밤이었다. 호텔에서 머문 것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아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믿음직한 아이들 덕분에 흐뭇한 경험이었다.
캠핑, 할 땐 힘들었지만 그래도 묘한 매력이 있어!
밴프로 돌아오는 길에 브룩스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공룡 화석을 볼 수 있는 다이노소어 공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마련해줬다. 그 선물은 슬라이드가 있는 수영장이었다.
밴프에서 나온 우리는 늦지 않게 브룩스란 알버타 주의 조그만 도시에 도착했다. 곧장 호텔에 체크인 한 우리는, 짐을 푸르자마자 호텔 수영장에 갔다. 아이들은, 예상대로 슬라이드가 있는 수영장을 너무나 좋아했다. 게다가 수영장엔 우리 셋 밖에 없었다. 비록 규모가 작은 수영장이었고, 슬라이드가 하나뿐인 단조로운 수영장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어떤 워터파크보다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에게 마련한 조그만 선물에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여행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아이들은 또 다른 곳에 열광했다. 수영장 옆에 있는 게임장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어찌나 재밌었는지, 둘째는 아침 7시에 "게임하러 가자"라는 말에 번쩍 눈을 뜨기도 했다.
여행은 별거 아닌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호텔 수영장, 작지만 강렬했다
마지막 일곱번째 나만의 베스트는 밴프로 가는 길이다. 밴프로 가는 길, 나는 캐나다의 광활한 대지를 느낄 수 있었다. 파란 하늘과 뭉게 구름 또한 장관이었다. 장거리 운전으로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운전 중에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차 안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연신 Wow를 외쳐댔다. 물론 나중에는 그 wow를 질러대는 횟수와 목소리 크기는 현저히 줄어 들었지만!
운전을 하면서 아내의 빈자리가 아쉽기도 했다. 누구보다 이 광경을 좋아했을 아내였을텐데, 함께 하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아들이 찍어준 한 장의 사진은 마치 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운전하면서 쭉 가다보면 하늘로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구릉 하나 없는 지평선을 달리며, 쭉 뻗은 길이 단조롭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캐나다를 맘껏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외에도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설퍼산, 밴프 온천, 바우강, 다이노소어 공원 또한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공간이었다. 순간 순간이 소중한 그런 여행이었다.
너무나 멋진 캐나다의 자연을 접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리고 별 탈 없이 좋은 곳을 즐겁게 여행할 수 있어 또한 감사했다.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너무나 행복한 여행이었다.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밴프는 컸고, 볼 게 너무 많았다. 아직도 보지 못한 밴프의 멋진 곳이 많다. 덕분에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계획을 어렴풋이 세울 수 있기도 했다. 다음엔 꼭 완전체로 아내와 함께 이 멋진 자연을 즐겨보고 싶다.
고마웠어! 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