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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7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소중한 기억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by 최호진
드디어 도착이다


2019년 9월 13일 추석날 오후 4시, 나와 아들 둘은 70일간의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엄마 없이, 아내 없이 나와 두 아들, 이렇게 셋이 함께 한 여정이 드디어 마무리 되었다. 엄마를 그간 찾지 않아던 둘째는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부터 이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동안 많이 참았나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찾고 드디어 아이들의 엄마를, 나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나도 아내가 많이 보고 싶었다. 아내에게 덥썩 달려가 와락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내는 둘째 아들의 몫이었다.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은 아들은 어리광을 피우다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뭔가 짠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배신감도 들었다. 그동안 내가 해준 게 얼만데…


긴장이 풀어졌다. 모든 것이 다 잘 끝났다는 생각이 드니 두 어깨를 짓눌렀던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무모하게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막상 떠나려니 두려웠었다. 출발하는 날에는 별 탈없이 여정을 마무리하기만을 바랐다. 많은 것을 얻지 않아도, 좋은 경험으로라도 남았으면 했다. 중간에 큰 일을 겪는 바람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하기도 했다. 맹장이 터져 병원에 입원한 큰 아들을 보면서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했다. 그 이후로는 항상 긴장을 하며 지냈다. 아이들이 행여나 어디 아플까 싶어 노심초사해 했다. 마지막에는 빨리 여행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건강하게 여행을 마무리 하고 나니 마음이 풀어졌다. 끝났다는 생각에 이제는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 싶었다.


긴장을 하며 지내긴 했지만 아이들과의 70일간의 여정은 꽤나 즐거웠다. 아이들은 한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씩씩했고 캐나다에서의 일상을 즐겼다. 아이들은 여행을 하며 한 뼘 자라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 또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그동안 보조자로서만 육아에 참여했던 나의 태도를 반성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오롯이 책임지면서 진짜 아빠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애틋해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더 특별해졌다. 잊지 못할 우리만의 추억은 우리 사이를 더욱 단단하게 이어주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서울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좀 더 멋진 아빠가 되기 위해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제는 요리도 잘 할 수 있고, 아이들 교육에도 더 신경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서울로 돌아오니 아이들과의 관계가 여행 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나는 여전히 화를 내는 아빠였다. 가장 큰 문제는 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저녁이었다. 나는 저녁 8시부터 해롱해롱거렸다. 아이들에게는 10시에 자라고 당부를 하고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 한참 자다가 아이들이 투닥거리는 소리에 깼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놀고 있었다. 잠이 덜 깨서 예민했는지 나는 아이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빠의 호통에 놀란 아이들은 놀던 것을 정리도 못한 채 후다닥 침대로 가야 했다. 아빠가 갑자기 화를 내가 아이들은 억울해 했다. 아내에게 들어보니 큰 아이는 억울함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는 잠이 깨버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놀란 나머지 한참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70일간 애를 쓰며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틀 연속으로 아이들을 혼내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아이들과 여행중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엄하게 이야기 했고, 나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아들을 발로 뻥 차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깼다.


이틀 연속으로 악몽을 꾸고 나서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새벽 2시 노트북을 켜고 무작정 글을 썼다. 아이들과의 70일간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말도 안되는 문장을 마구 뱉어 냈다. 그렇게 배출을 하고 나니 아이들과의 여정이 하나 둘 새롭게 느껴졌다. 이번 70일간의 여정은 단순히 즐거웠던 경험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만드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덕분에 한뼘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여행의 감동이 사그라들기 전에 잘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라도 정리가 필요했다.


아이들에게도 기록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물론 아빠의 관점으로 재정리된 글이긴 하지만 글로써 정리한 기록을 통해서 아이들도 여행을 오래도록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 더 컸을 때 이 기록을 통해 아빠와의 여정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다시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이 글을 읽고, 아이들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했으면 한다. 물론 세세한 디테일을 담지는 못하겠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이 글을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이들과의 여행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도 이번 정리를 통해서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난 70일간의 아이들과의 여정을 정리해보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한 다시 없을 이 경험을 조금 더 특별한 것으로 오래도록 간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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