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6주간의 캠프를 마치며...
“ 아들, 캠프가 왜 그렇게 좋아?”
“ 한국에서는 이렇게 노는 프로그램이 없잖아. 여기서는 하루 종일 제대로 놀 수 있어 좋아"
“ 말도 안 통하고 불편하지 않았어?”
“ 괜찮았어. 또 하다 보니까 다 통하더라고”
6주간의 캠프가 끝날 때쯤 , 큰 아들과 차 안에서 간단하게 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캠프가 끝나는 것을 누구보다 아쉬워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놀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가 씁쓸하긴 했지만 아이가 캐나다에서의 시간을 누구보다 즐긴 것 같아 아빠로서 뿌듯하기도 했다. 둘째 아들도 캠프를 즐긴 건 마찬가지였다. 형처럼 "소감"을 따로 이야기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며 캠프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총 6주간, 캠프에 다녔다. 밴프여행을 전후로 총 5주 동안은 매니토바 주립대학에서 운영하는 Mini U라는 프로그램에, 마지막 한 주는 우리 나라의 동사무소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두 곳 모두 영어를 배우는 곳은 아니었다. 아이의 표현대로 노는 캠프였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끝나는 오후 4시까지, 물론 매 시간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까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며 아이들은 놀았다. 매주 캠프 주제에 맞는 액티비티에 참여했다. 리더라 불리는 대학생들과 함께, 아이들은 축구도 하고, 피구 게임도 하고, 전자 오락도 하고, 수영도 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는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마다 알 수 있었다. 아이들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빠를 보며 신나게 뛰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은 항상 밝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재잘재잘 캠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매일 매일 하루를 복기하기도 했다.
"오늘은 룩이 혼자만 공을 넣으려고 해서 기분이 나빴어. 잇츠 마이 턴 해도 안들은척 하더라고"
"오늘 달리기 했는데, 내가 1등 했다. 애들이 잘 못달리더라고."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데, 이름이 도미닉이야.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 나처럼 종이접기를 좋아해"
"오늘 다이빙하다가 죽을 뻔 했어. 좀만 더 내려가면 바닥에 발이 닿겠거니 싶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거야. 물 좀 먹고 겨우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 하겠다고 다투는 바람에 운전하는 내내 너무 정신이 없었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캠프에 아이들을 보낸 것은 좋은 선택, 아니 신의 한수라고 느껴졌다.
캐나다에서의 두 달을 계획할 때, 처음부터 캠프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 영어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였던 터라, 아이들이 캐나다에서 영어를 배웠으면 하는 생각에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우선 알아봤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간 위니펙에는 아이들을 위한 어학연수 프로그램은 따로 없었다. 토론토나 밴쿠버 같은 대도시에 가야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 듯 했다. 어찌보면 캠프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하지만 차선책이라는 생각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영어를 "공부하기"에는 두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두 달 학원을 다닌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차라리 공부가 아닌 영어를 체험하고 느끼는 시간으로 두 달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캐나다에서의 캠프는 딱 맞는 선택이었다. 현지 아이들이 주로 참여하는 캠프였던 터라 아이들이 영어에 노출되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이 영어를 잘 못해서(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둘째는 알파벳만 겨우 뗀 수준이었다.) 캠프 활동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영어를 잘 못하면 친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던데, 괜히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행히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곳 리더들이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세심하게 배려해줬다. 아이들이 영어를 못해도 프로그램을 따라가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또한 캠프에 참여한 친구들도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직 어려서 유치부 캠프에 참여했던 둘째도 물론이었고 어느 정도 머리가 굵은 초등부에 참여했던 큰 아이도 아이들과 적응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큰 아이는 오히려 아이들 사이에서 종이접기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큰 아이에게 현지 친구들이 몰려와서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매번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색종이를 나눠주며 종이접기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들과 외식을 하러 레스토랑에 갔었다. 그곳은 성인들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PUB 공간과 가족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큰 아이가 손을 들어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Can we go that?”
PUB을 가리키며 아이는 물었다. 직원은 안타깝지만 어린이는 PUB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술을 파는 공간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이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나는 직원을 보내고 아이에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물었다. 아이는 들어오는 길에 PUB에서 야구 중계를 보게 되었고, 자기도 밥을 먹으면서 그것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물어봤다고 대답했다. 조금 틀린 표현이었긴 했지만 큰 아이의 용기가 참 예뻐 보였다.
둘째도 못지 않았다. 둘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곤 했다.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에게 “Where are you from?”이라고 자주 물어봤다. 어떤 분은 아이의 질문이 귀여웠는지, "I am from my Home"이라고 농담을 하며 아이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대답을 못 알아 듣는다는 게 함정이긴 했지만 일곱 살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큰 아들도, 둘째 아들도 그렇다고 유창하게 영어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물었던 것처럼 띄엄띄엄 자기들이 아는 단어를 문법에도 맞지 않게 이야기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다가가 먼저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캐나다에서 큰 소득을 얻은 것이라 생각했다. 영어 실력이 월등히 늘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다.
우리 나라로 돌아와, 아내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내는 여행을 할 때 영어로 말하는 게 참 두렵다고 했다.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외국인 앞에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병원에서 아들을 보살피고, 병원비를 깎았던 행동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고 했다. 자기는 못했을 거라면서 칭찬해 주었다. 아내의 칭찬에 집착이 심한 나는, 아내의 칭찬을 들으니 날아갈 듯 기뻤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나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두려움에 휩싸이곤 하는 나였는데, 의외의 발견이었다. 그렇다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 것도 아니었고, 외국에 오래 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좋아했고, 영어로 말하는 것을 즐겼기에 영어가 무섭지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참 좋아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재미 있었다. 중학교 때는 영어로 말하는 게 좋아서 선교회에서 온 외국인과도 종종 대화를 나누곤 했다. 영어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물론 취직을 위해 토익 공부를 할 때는 잠시 공부라고 생각해 보긴 했지만 그 외에는 그렇게 “공부”로서 영어를 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나처럼 영어를 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아주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영어 자체를 즐기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나의 영어에 대한 이런 생각이 맞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게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번 캠프가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없애고 영어를 즐길 수 있게 만든 계기였던 것 같아 좋았다. 어쩔 수 없어 선택한 캠프였지만 돌이켜보면 이만큼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도 없었던 것 같았다. 가지 않겠다고 투정도 안부리고 씩씩하게 캠프에 다닌,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제대로 즐긴 아이들이 멋졌다. 과연 또 이곳 캠프에 올 수 있을까 싶지만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과 한 번 더 와보고 싶다.
* 참고. 캠프 비용
- 위니펙에서 우리가 참여한 Mini U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통해 접수할 수 있었으며, 현지인과 외국인가격이 동일했습니다.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가격차이는 있었지만 보통 1주 요금은 1인당 180 CAD(캐나다 달러) 에서 300 CAD 정도였으며 총 5주간 등록한 두 명의 비용이 2,100CAD 정도였고요. 1인당 원화로 100만원 정도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캠프였던 터라, 3월에 일찍 등록해야 했습니다. 금세 마감이 되더라고요.
참고 사이트.
http://www.umanitoba.ca/faculties/kinrec/bsal/miniu//
- 동사무소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참여한 캠프는 1주동안, 1인당 180 CAD의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단 형제 할인을 받아서 둘째는 150CAD로 등록할 수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