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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조금 더 뻔뻔해졌다.

by 최호진

반환점을 돌다


캐나다에 온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갑자기 아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악몽같은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밴프 여행까지 마치고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8월이었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금세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올 것 같았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마음이 급해진 건, 나 때문이었다. 캐나다 여행은 아이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름 "나를 위한" 계획도 있었다. 지난 6개월, 휴직하고 내가 경험했던 것들에 대해서 하나씩 정리해보고 싶었다. 휴직을 하고 나의 인생에 큰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배우고, 얻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매일 블로그에 글로 남긴다고는 했지만 뭔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기분이었다. 하루하루 쫓기는 기분도 들었다. 나를 다시 돌아보는 데 캐나다에서의 두 달이 최적의 시간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캠프에 간 사이에 혼자서 시간을 보내며 정리할 예정이었다.


정리를 통해 한 권의 “책”을 써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휴직의 결과물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그 결과물이 책인지 이유가 확실하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다들 책을 내는 게 좋다고 해서 부화뇌동하는 마음이 있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내 글을 제대로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됐든 캐나다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글을 쓰는 시간을 통해 휴직의 의미를 정리하고, 남은 휴직기간을 잘 계획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자


하지만 상황은 내 맘같지 않았다. 계획한대로 시간이 흘러가지 않았다. 큰 아들이 아팠던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캠프에 있는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내 시간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 아침준비를 하고, 도시락을 싸서 애들 캠프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정리하고, 점심을 먹고나서 한숨을 돌리면 금세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밴프 여행 이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루 두 세시간이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나의 새로운 루틴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1번은 아이들을 캠프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지 않고 스타벅스로 향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집 밖의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다행히 이곳의 스타벅스도 한국의 그곳처럼 혼자서 작업하기 편했다. 나처럼 노트북을 갖고 이런 저런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아이들을 캠프에 데려다 주고 두 세시간 정도 이곳에 앉아서 글을 썼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많은 엄청난 글을 쓴 게 아니었다. 반 이상은 인터넷 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도 많았다. 하지만 두 세시간이 나에게 꽤 소중했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나름 나 혼자만의 자유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효율성을 떠나 그 시간 동안 이것 저것 조금씩 만들어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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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감내해야 할 것들


물론 이를 위해 몇 가지 감내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우선 아침의 정신없음을 감내해야 했다. 두 세시간의 자유를 위해서 아침을 더 분주하게 보냈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후다닥 집안 정리를 하고, 양치를 시키고 설거지를 한 후, 아이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누나네 집에 있었지만 나 편하자고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나갈수는 없었다. 조금 더 서두르더라도 깔끔하게 집 정리를 하고 나갔다. 그렇기에 120% 속도를 내며 분주히 아침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이들을 더 재촉하긴 했지만...


두 번째로 감내한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누나네 욕조는 (아마도 캐나다 대부분의 집이 마찬가지일테지만) 머리만 감을 수는 없는 구조였다. 머리를 감기 위해서는 샤워까지 해야 했다. 아침에 아이들과 준비를 하면서 여유있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더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아침에 머리를 감는 것을 포기하고 조금은 떡진 머리로 전날 밤에 감은 머리를 그대로 들고 나갔다. 성인이 되고나서 머리를 감지 않고 외출을 했던 것은 캐나다에서 처음이었다. 나의 시간을 위해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몇 번은 불편했지만, 금세 저녁에 머리를 감는 게 편안해졌다.


마지막으로 감내한 것은 배고픔이었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이것 저것 하다보면 금세 점심시간 때가 되곤 했다. 처음 몇 번은 배가 많이 고파서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흐름을 끊는 게 많이 아쉬웠다. 자학인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이게 과연 맞을까 싶기도 하지만, 조금 배고픈 것을 참고 하던 일을 쭉 하며 점심을 미뤘다. 그것도 몇 번 하니 자연스러워졌다. 간식거리를 싸들고 나가는 잔꾀가 생기기도 했다. 조금 배고프더라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뭔가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두 세시간의 자유시간동안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생산성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 목표로 세웠던 책쓰기의 성과물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 끄적였던 것들이 지금은 거의 사장된 채 방치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는 꽤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마저 없었다면 캐나다가 아이들을 위한 것만으로 끝났을 지도, 그래서 내게는 남는 게 없는 시간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내해야 한 몇 가지가 있었지만 나를 위해 일부러 만든 몇 시간이 캐나다 여행에 내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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