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니스 캐플런의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을 읽어 보았다. 작가의 감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감사하는 습관을 통한 그녀의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감사하는 습관을 만들면서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돈과 물질에 대한 생각도 바꿀 수 있었다. 굳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지금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법을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터득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됐다.
한 해 동안 감사하며 살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내가 변하였다. 그중에 제일 큰 변화는 어떤 이유로든 즐거움을 누리는 능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中>
감사를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한 작가의 이야기 덕분에, 나의 삶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었다. 불평, 불만을 갖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멈추었던 감사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감사하는 습관을 만들고, 내 삶의 변화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은 비단 나의 삶의 태도에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 책에서 우연히 만난 한 단어를 통해 밴프 여행에서의 경험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었다. 이 단어는 바로 "핑크모먼트(pink moment)"였다. 핑크모먼트라는 단어를 본 순간 나는 밴프에서 위니펙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하늘을 떠올렸다.
조사해보니, 핑크모먼트는 고유명사에 가까운 단어였다. 이 말은 캘리포니아 오하이(Ojai)라는 지역에서, 해가 질 무렵 하늘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환상적인 순간을 의미했다. 내가 맞이한 순간은 캐나다였고, 해가 질 무렵이 아닌 뜰 무렵이었다. 하지만 내가 봤던 하늘도 분명 핑크빛이었기에 내맘대로 그때의 경험을 핑크모먼트라고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핑크모먼트를 정의할 때 설명으로 나오는 분홍빛 하늘이 주는 마음의 정화작용을, 캐나다 하늘을 보며 나도 느낄 수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밴프 캠핑장에서의 이틀 밤을 좋아했다. 한국에서 캠핑을 경험하지 못해 더 특별하게 느끼는 듯 했다. 특히 oTENTiks라 불리는 오두막을 즐겼다. 시설도 훌륭했기에, 캠핑의 다이나믹함과 잠자리의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그곳을 좋아했다. 하지만 오두막에서의 하룻밤이 너무 짧았다. 빙하 체험을 하느라 저녁 늦게 캠핑장에 도착했고, 다음날에도 투어 일정 때문에 일찍 나와야 했기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속에서 우리만의 재미를 느꼈지만, 아쉬움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밴프에서 위니펙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룻밤을 더 캠핑장 오두막에서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숙소를 아직 예약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밴프를 떠나는 날 부랴부랴 oTENTiks나, 그 비슷한 것을 찾아 보았다. 우연히 그래스랜즈(Grasslands)라는 국립공원 에 자리가 하나 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치도 딱이었다. 밴프가 있는 앨버타 주와, 위니펙이 있는 매니토바주의 가운데 있는 사스카추완 주에 있었다. 물론 조금 돌아가야 하는 경로이긴 했지만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물이 나오지 않아 급수대의 수도시설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제한조건 때문에 자리가 남은 것 같았지만, 하룻밤만 머물고 올 우리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이슈였다. 이미 캠핑장에서 더러움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였다. oTENTiks의 아쉬움을 달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예약을 진행했다. 물론 캐나다가 그렇게 큰 나라라는 것을 자동차를 타고 가며 느끼며 약간 후회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그래스랜즈 캠핑장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좁은 길을 따라 쭉 가야했다.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데, 주유소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걱정하며 운전했다. 50km를 돌아서 주유소를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떡하니 주유소가 나오는 바람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좁은 길의 끝에는 비포장 자갈길이 놓여 있었다. 30km도 넘는 길을 덜컹거리며 가야 했다. 아이들이 힘들어할까 걱정했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차였다. 차가 가는 길에 멈추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지나가는 차도 없었고 주변에 마을도 안 보였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방법이 없었기에, 차가 안전하게 우리를 목적지에 바래다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긴장한 채 한시간 정도 차를 몰고 갔다. 거리는 짧았지만 속도를 낼 수 없어 더 더디갔다. 그렇게 한참을 긴장한 채 달렸고, 별 탈 없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순간 맥이 다 풀려 버렸다. 힘든 들었지만, 아무 사고가 없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후다닥 오두막에 짐을 풀고 저녁을 준비했다. 밥을 먹으려고 주변을 둘러보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언덕위 평평한 곳에 있는 캠핑장이 천국과 같은 느낌을 자아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음식을 먹는 모습이,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풍경과 어우러져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동안 두려움에 떨면서 이곳까지 차를 몰고 온 것에 대해 큰 보상을 받는 듯 했다.
밤은 더 특별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서 하늘은 우리에게 새로운 쇼를 보여주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바로 쇼의 중심에 있었다. 밴프에서 본 하늘보다 훨씬 더 많은 별이 우리 위에 있었다. 주변에 나무도 산도 없었기에 시야를 가릴 것도 없었다. 하늘이 모두 우리 차지였다. 그런 광경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아빠, 검정색 도화지 위에 모래를 뿌려 놓은 것 같아. 쏟아지는 별을 보니 너무 신기하다.”
“돔에 있는 것 같아. 돔 위에 누가 별을 심어 놨나봐”
아이들 말마따나 검정색 도화지에 있는 모래 같기도 했고, 돔구장에서 마련한 특별 우주쇼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멋진 자연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다음날 새벽이었다. 소변이 마려웠디. 귀찮았지만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잠이 덜 깬채 눈을 비비고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하늘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잠이 깼다. 너무나 멋진 하늘이 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늘 전체가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해는 아직 보이지 않았는데 해의 기운이 하늘에 퍼져 있는 듯 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하늘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감사하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멋진 자연을 보여주어서 감사했고, 캐나다에 올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했다. 감사할 대상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모든 게 다 감사했다. 그 순간이 바로 나에게 핑크모먼트였다. 여행 중에 받은, 평생 잊지 못할 엄청난 선물이었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다. “뜻밖의 발견, 의도하지 않은 발견, 운 좋게 발견한 것”을 뜻하는 이 말은 영국의 작가 호레이스 월풀이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그가 쓴 “세렌딥의 세 왕자” (The Three Prince of Serendip)라는 이야기에서 세렌디피티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스리랑카의 옛 이름인 세렌딥의 왕자들이 왕국을 떠나 바깥 세상을 여행하며 뜻밖의 발견을 했다는 데서 착안한 말이 세렌디피티다.
세렌딥의 왕자들처럼 여행은 나에게 세렌디피티의 장이었다.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도 의외였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뜻밖의 발견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의외의 발견이 주는 기쁨은 훨씬 더 극적이었다. 기대가 없었기에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나도 모르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이 당장 내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나 또한 즐거움을 누리는 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잊지 못할거야. 핑크모먼트! 우연히 만나서 더 반가웠어.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