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말고 인생을 길게 보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나는 질투심이 많은 어른이다. 남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나와 상관이 있든 없든 심사가 뒤틀리곤 했다. 회사에서 더욱 그랬다. 사람들이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면 나도 모르게 배가 아팠다. 어려서부터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불우한" 가정 환경도 한 몫했다.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학교 생활도 영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가 나에게 집중할 때 행복했다. 반대로 남들이 잘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 불쾌한 감정과 마주하곤 했다. 특히 사회에 나와서 이런 질투심을 더 자주 느꼈다. 자꾸 나도 모르게 내가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 가정과 학교에서와 달리 사회는 나를 항상 집중해주지 않았다. 당연한건데, 돌이켜보니 회사 생활도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힘들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을 읽으면서 이런 질투의 감정이 "에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을 에고라고 정의했다. 내가 항상 남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에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질투심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에고가 남들이 잘나가는 꼴을 못보게 만들고 질투하게 만드는 듯 했다.
작가는, 에고란 수시로 올라오는 것이라며, 마룻바닥을 닦듯이 매일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연히 알게 된 지인께서는 이런 에고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에고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에고가 활개를 피지 못하고 꺾이고 만다고 했다. 마치 어린 아이가 큰 소리로 울다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제 풀에 껶여 울음을 그치는 것과도 같은 이치였다. 그러면서 그는 "심호흡"을 강조했다.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에고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나의 에고를 인정할 때 에고가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심호흡을 하면서 에고가 잠잠해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에고가) 왔구나!"라는 느낌이 들 때 크게 심호흡을 하면 감정이 정말 많이 가라앉았다.
에고에 대해 생각하면서 "일희일비"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하나의 사건을 겪고 좋아서 흥분하고, 반대로 슬퍼서 낙담하는 것이 나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것 또한 에고의 영향이었기 때문이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하기 보다는 꿋꿋이 내 갈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밴프 여행의 마지막날, 뜻하지 않은 선물과도 같은 경험을 하고 더욱 절실하게 나의 마음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밴프에서 oTENTiks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의 일이었다. 이 날 우리는 밴프 국립공원에서 진행하는 무료 가이드 투어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공짜라는 사실을 알고 홈페이지에서 신청한 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아침을 분주히 보냈다. 빠르게 짐을 챙겨서 숙소에서 나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을 챙겨 먹고, 정리하고 숙소를 나오느라 진이 빠져 있을 때였다. 느긋한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났다. 아빠는 이리 분주한데 아들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 울컥했다. 분명 전날 밤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아침나절에는 다시 요란한 감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것 또한 에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심호흡”의 처방이 먹혔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아침나절부터 한따까리 하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화도 내지 않고, 시간에 맞춰 가이드 투어 장소에 도착했다. 뱅크헤드라는 곳이었다. 이날 투어는 석탄 산업이 활발하던 당시, 큰 도시였던 뱅크헤드의 자취를 따라 가보는 투어였다. 가이드의 설명 덕분에 우리는 뱅크해드라는 곳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광부로 분장한 사람이 나와 그 때 상황을 재연하기도 했다. 공짜 투어였지만 나름 많은 것을 알기도 했고 재미난 장면도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영어로 진행된 투어여서 그런지 10분 정도 지나니 듣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에게 통역해 알려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지친 듯 했다. 결국 우린 빠른 "손절매"를 택했다. 가이드 투어에서 이탈해 우리끼리 돌아다녔다. 산책을 하며 뱅크헤드라는 곳을 그냥 즐겼다. 나름 힘들게 온 투어였는데 아쉬웠다. 차라리 그 시간에 여유있게 oTENTiks에서 놀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렇게 근처를 한바퀴 돌고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아이들도 나도 약간 지쳐있었다. 여행의 피로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날 투어에 대한 실망감도 한 몫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앞 차가 멈춰 있는게 보였고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워야 했다. 차를 세우며 오늘 일진이 참 좋지 않다고 탄식했다.
그런데 곧 앞차 조수석의 창문이 열렸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게 보였다. 순간 도로 옆에 무언가 볼거리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도대체 뭐길래 열심히 사진을 찍는지 궁금했고, 나도 모르게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진 촬영이 다 끝났는지 앞 차가 갔고 우리는 천천히 차를 몰아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도로 옆 산비탈에서 한 마리 동물을 볼 수 있었다.
“설마 곰 아니야?”
동물의 실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둘째가 한마디 툭 던졌다. 말도 안된다며 우리는 자세히 동물을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둘째가 던진 그 말이 맞았다. 정말 곰이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곰이 확실했다. 곰은 열심히 나무 열매를 먹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먹던지 차들이 멈춰서 사진을 찍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아들에게 휴대전화를 던져 사진을 찍으라고 했고 나와 아이들은 열심히 촬영을 하며 자연의 곰을 만날 수 있었다.
곰을 다 보고 다시 차를 움직였다. 곰은 우리 시야에서 벗어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곰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차안에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동물원의 곰이 아닌 자연에서의 그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선물처럼 우리 눈 앞에 나타나니 신기했고 또 감사했다. 밴프 여행을 하면서 그 어떤 순간보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 곰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우리가 그렇게 촬영하다가 큰 일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곰을 보고 나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가 곰을 보게 된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곰을 보기 전까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서 아침부터 분주했고, 나는 아이들 때문에 약간 언짢은 상태였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바쁘게 온 가이드 투어였는데 꽤 실망스러웠다. 언어의 한계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가이드 투어를 중간에서 이탈한 채 다음 장소로 향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곰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이드 투어를 신청한 덕에 곰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정리되니 새삼 가이드 투어가 고맙게 느껴졌다.
뭐든 길게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견 좋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던 것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날 경험했다. 곰을 마주하고 감동을 느끼며, 물론 곰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우리 삼부자를 보면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을 겪었을 때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나의 에고가 활개를 칠 때 "그래도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나의 우울함과 감정의 동요를 그냥 내버려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속에 "좋은 일이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적어도 이날 만난 곰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밴프에서 곰을 보는 게 큰 일은 아닐 수도 있다. 밴프에서 온 사람들은 한번쯤 보는 게 곰이라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우연히 만난 곰이 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그리고 덕분에 내 에고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 더욱 더 고마웠다.
다시 또 만나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