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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프 캠핑장에서 특별한 글램핑을 경험하다

선물같았던 oTENTiks에서의 하룻밤

by 최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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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tham2000/146


Two Jack Main 캠핑장에 설치된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밴프의 새벽은 역시나 추웠다. 밤중에 몇 번이나 깼다. 아이들이 한데서 자다가 입이 돌아가지는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말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잤고 입이 돌아가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 여름에 내복도 입고, 겨울 파카도 입어서였는지 그리 추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겨울용 침낭을 말고 잤으니... 몸은 찌뿌둥 했지만 잊지 못할 하룻밤이었다. 그리고 하룻밤이라 다행이었다. 하루만 더 텐트에서 잤더라면 아름다운 추억에 스크래치가 났을지도...

일어나자마자 불을 피우고 식사준비를 했다. 아침 메뉴는 누룽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사온 누룽지에 물을 붓고 푹 끓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캠핑장 아침메뉴로 제격이었다. 추웠던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후루룩 잘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캠핑을 마무리 했다. 후다닥 짐을 챙겨 캠핑장에서 나온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날의 목적지는 아이스필즈 파크웨이였다. 이곳에서 설상차를 타고 빙하체험을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빨리 돌아와 oTENTiks라는 곳에서 하룻밤 더 캠핑을 할 예정이었다. 선물같이 뚝 떨어진 숙소였기에 더욱 기대가 되기도 했다. 여행 중 우연히 이야기를 나눈 현지인은 우리에게 “You are so lucky”라며 oTENTiks에서 자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했다. 그만큼 예약이 어렵다는 뜻인 듯 했다. 그 이야기가 우리를 더욱 설레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스필즈 파크웨이에서 일정이 꼬이고 말았다. 우선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밴프 시내에서 두 시간 반도 넘게 걸렸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설상차 체험을 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티켓만 끊고 별도로 시간을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관광지에서는 시간을 따로 지정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기에 여기서도 그럴 줄 알았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듯 싶었다. 나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했지만 어짜피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국 점심을 먹으며 여유롭게 두 시간을 기다린 후 체험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만족스러운 경험이었고 아이들도 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아이스필즈 파크웨이에서의 일정이 5시 넘어 끝났고 숙소에는 8시 정도 되어서 돌아갈 수 있었다. 10시까지도 환한 밴프였기에 그래도 다행이었지만 선물같이 뚝 떨어진 oTENTiks에서 짧게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oTENTiks에서의 하룻밤을 좀 더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게다가 이날은 밴프에서의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성찬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아이들을 꼬득여 소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결국 시간이 늦어졌지만 밴프 시내로 돌아 들어가 마트에 들렀다. 게다가 마트에 가야 할 또다른 구실도 있었다. 전날 어찌하다보니 라이터를 다 써버려서 이날 캠프파이어를 하려면 라이터도 필요했다. 최대한 빨리 장을 보기로 아이들과 약속했다. 나름의 작전도 짜서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투에 나선 사령관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빠가 소고기를 사고 있을테니, 너희들은 라이터를 찾아서 갖고 오도록 하라"


짧은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나와 아이들의 역할을 분리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마트에서 라이터를 찾는 게 다소 무리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아이들과 나는 흩어졌다. 나는 아이들이 알아서 라이터를 찾게 내버려두고 후다닥 정육코너로 가서 저녁에 먹을 소고기를 찾았다. 적당한 소고기를 찾고 계산대로 가려는데 아이들이 의기양양하게 라이터를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으로 물어서 라이터가 있는 곳을 찾아냈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이즈의 라이터를 골라온 것이었다. 아이들도 뿌듯해 했지만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 또한 벅찬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점점 더 아이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도록 아이들은 하나씩 척척 해내고 있었다. 마트에서 심부름 한 게 뭐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캐나다라는 낯선 곳에서 거리낌없이 아빠의 미션을 해결해오는 아이들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계산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아이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며 자기네들끼리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했다. 시간이 없어 급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고 오라고 했더니 정말 둘이서 척척 해결하고 돌아왔다. 울타리만 잘 쳐주면 캐나다에서도 아이들끼리 잘 다닐 수 있겠다는 믿음이 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후다닥 마트에서 나와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해는 떠 있었고.



기다리던 oTENTiks에 드디어 도착했다. 오두막과 텐트의 중간 정도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본 적이 있었는데 딱 그랬다. 방은 꽤나 안정적이었다. 침대도 있었고 히터도 나왔다. 전날 텐트에 비하면 5성급 호텔 수준의 방이었다. 자다가 입 돌아갈 걱정하느라 깰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좋아했다.

하지만 감동의 순간도 잠시였다. 빨리 저녁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충 불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불을 살리라고 넘겨준 후 나는 밥을 하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전날 해본 가락이 있어서였는지 아이들은 기대대로 불을 잘 살렸다. 나도 밥을 전날보다는 빨리 그리고 제대로 지을 수 있었다. 마트에서 산 소고기까지 구워서 나름의 성찬을 만들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해 최고의 스피드로 준비한다고 했는데 밥을 먹으려 보니 이미 해는 다 져 있었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도 나도 서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너무 어두워서 랜턴을 켜고 밥을 먹을 수 밖에 없었지만 즐거웠다.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하나둘 하늘의 별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전날과 달리 이날은 별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전날 캠핑장에서는 나무가 울창해 하늘을 보기 힘들었는데 이곳 캠핑장 앞은 하늘이 확 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밴프에서의 "아름다운" 밤이었다. 비록 일정이 꼬여서 부리나케 뛰어 다녀야 했지만, 샤워장이 따로 없어 아이들과 화장실 세면대에서 양치하고 고양이 세수한 게 다였지만, 발이 너무 심각해서 물티슈로 쓱쓱 닦은 게 전부였지만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언제 우리가 캐나다 캠핑장에서 캐나다 사람들도 예약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잘 수 있겠나라는 생각을 하니 대단한 경험을 한 것같아 만족감에 휩싸이는 것 같기도 했다.




여행의 소중한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고 싶은 마음에 종종 캐나다 여행 때 찍은 사진을 본다. 사진을 볼 때마다 밴프에서 아이들이 참 꾀죄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그 때의 사진에서 아이들 얼굴엔 생기가 가득하다. 아이들은 항상 환하게 웃고 있다. 덕분에 나 또한 밴프의 사진을 볼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여줬던 늠름한 모습도 떠오르고, 캠핑장에서 불 피우며 도란도란 마시맬로를 구워먹던 것도 생각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도 밴프에서의 기억을 특히 캠핑장에서의 추억을 잘 간직하고 있나 궁금할 때도 있다. 솔직히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아빠로서 나의 욕심이다. 아이들은, 특히 7살인 둘째는 금세 밴프 캠핑장에서의 기억을 잊어 버릴 것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더 재미난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어렸을 때의 경험을 하나씩 지워갈테니 말이다.


문득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기억하든, 하물며 송두리째 까먹든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동안 내가 너무 좋았고, 내가 느끼는 게 많았다면 그걸로 아이들과의 여행이 나에게 충분히 의미있는 게 아닐까 싶다. 누가 나에게 조언했던 것처럼 여행의 추억에 대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나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밴프에서의 이틀간의 캠핑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많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 나에게 잊지 못할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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