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다. 오래 가자
지난 일요일 오후에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 놀고 있는 동안, 오랜만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아내는 그날 읽었다며 오은영 선생님의 <화해>라는 책을 소개해 주었어요. 아내는 이 책이 참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회사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는데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제게 추천하더라고요. 아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또한 언젠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아직은 안 읽었습니다.
아내는 책의 많은 내용 중 쉼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한 하루도 잘 산 거라고 이야기 해주는 부분에서 공감했다고 해요. 작가로부터 위로도 받은 기분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자신에 대해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진 듯 했어요.
최근 저의 고민과 맞닿아 있어 저 또한 아내가 이야기한 내용에 공감이 많이 갔어요.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당한 쉼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쉼 또한 치열하게 사는 삶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 그건 타협과는 조금 다른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적당히 안주하려 하기 보다는 또 다른 도약을 위해 잠시 여유를 두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얼마전 우연히 참가한 마라톤 연습에서 감독님이 하신 말씀도 생각났어요.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고 달리려면 조금 지쳤을 때 잠시 쉬어야 한다고 감독님은 말씀하셨어요. 완전 지쳤을 때 쉬면 다시 뛰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인생도 마라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치열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그 사이 사이에 쉼이 없다면 금세 burn out이 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며칠동안 고민했어요. 어떻게 번아웃이 오지 않고 꾸준히 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꾸준함 속에 어떻게 하면 쉼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죠. 그리고 몇 가지를 정리해 봤네요.
1. 매일한다는 이야기의 덫에서 벗어나라
치열하게 사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루틴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삶을 보석같이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구본형 선생님께서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셨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매일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글을 썼죠. 대부분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다들 그런 것 같았어요.
박진영씨도 마찬가지라고 해요. 오늘 단체 대화방에서 박진영 씨에 대한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는데요. 매일같이 무려 17년동안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고 살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흥미롭다 못해 경이롭다고 느꼈어요. 17년을 쉬지 않고 루틴을 지켰으니 오늘의 JYP가 있던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17년 동안 매일 그렇게 했다는 사실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매일 꾸준히 하는데에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거를 수 밖에 없는 환경이 17년 동안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을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한 두 번 정도는 걸렀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은 제 아들이 맹장 수술을 겪고 나서 더 강해졌죠. 저 또한 매일의 루틴을 꼭 지키려는 사람이었어요.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만큼은 꼭 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캐나다라는 낯선 곳에서 맹장 수술을 받게 되니 그게 불가능해지더라고요. 물론 쓰려면 쓸 수도 있었겠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그런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더라고요.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어요.
단언컨대 그런 불가피한 상황이 박진영씨에게도 있었을 거에요.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17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했다면 박진영 씨는 우주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일 거라 생각해요. 정말 대단한거죠. 저희가 범접할 수 없는.
박진영 씨의 대단함을 논하려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매일 한다는 것에 대한 허구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거예요. 매일 한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거의" 매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몇 번의 예외를 정하고 그것을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매일아침 써봤니의 김민식 피디님도 주말에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으세요. 그리고 하루 10km씩 달린다는 하루키도 주 6일을 기준으로 그렇게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에 하루 정도 쉰다는 것에 대해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매일 하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거의"매일이지 "진짜" 매일은 아니랍니다.
2. 초반에 틀을 잡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초반에는 조금 빡세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자기만의 루틴에 확신이 들때까지는 가급적 매일 하는 게 중요하죠.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거든요. 확신이 들고 나서 조금씩 여유를 부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저는 바로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그 내용이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도 나오죠.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가 습관을 만드는 데 중요하다고 제임스 클리어는 말하고 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볼께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게 중요한데요. 그러려면 21일이 됐든, 66일이 됐든 자기 스스로 확신이 들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나 스스로가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죠.
<자기혁명캠프>라는 청울림 님의 자기계발 수업을 들었을 때 청울림님은 초기 새벽기상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 주말도 빠지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죠. 저는 그것이 초기에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데 있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초기에 만들어 놔야 그 다음부터 하루 정도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장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습관을 만드는 데 두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 습관을 만드는 단계와 그것을 유지시키는 단계가 바로 그것이에요. 처음 습관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빡세게"하는 게 1단계이고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한 순간부터는 "여유"를 장착해도 되는 단계가 2단계이지요. 매일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사람이 하루 이틀 늦게 일어났다고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초반에 꾸준히 한 후 자기에 대한 확신을 가져가는 것, 그것이 여유를 갖기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3. 꼭 해야 할 것은 한,두가지로 제한을 두자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에요. 흔히들 자기계발 책을 보면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아라, 일분 일초를 소중히 다뤄라라고 말하곤 해요. 저는 이 말이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의 여정에서 지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루 24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기 보다는, 하루에 꼭 해야 할 것을 한 두가지 정도로 정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한 두가지 꼭 해야하는 것은 꼭 하되 그 외의 시간에는 조금 여유롭게 지내는 것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여유가 있다면 한 두가지 끝내고 추가로 더 할 수도 있고요. 여유가 없다면 그걸로 만족하는거죠. 자신만의 룰을 지키되 유연성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상황에 따라 일요일 또는 주말에 쉰다라는 자기만의 추가 원칙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할 때만이 꾸준히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또한 매일 꼭 해야 할 한 가지가 있어요. 바로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인데요. 그것은 가급적 매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속에서 글을 쓰는 저만의 원칙도 함께 만들어 가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 한다. 나 혼자만의 일기장 같은 글을 쓰지 않는다 뭐 이런 원칙이 있어요. 그리고 가급적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블로그 글을 쓰는 것 외에는 다른 것들은 안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해요.
블로그 글쓰기도 중요한 건 내용이라는 생각에 요즘은 너무 열심히 쓰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제 생각이지 저의 미사여구나, 정확한 문장은 아니니까요. 물론 그런거까지 다 완벽하게 쓰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지금도 군데 군데 비문이 많이 보이긴 하는데요. 그냥 스트레스 받지 않고 넘기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루 24시간을 모조리 다 잘살려고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마라톤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해요. 마라톤이 신기한게 빨리가려고 할 수록 더 기록이 안 나와요.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중후반에 쉬이 지쳐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달리기를 하면서 나의 에너지를 최대한 분산해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달리기를 하다보니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버 페이스가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힘이 남는다고 무리하게 뛰어 들었다가 중간에 지쳐버리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중요한 것이 바로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마라톤도 인생도 마찬가지인거죠. 그리고 그 오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페이스를 잘 알고, 여유를 가지며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치열하게 사는 것 좋죠. 하지만 그 와중에 여유를 장착하는 게 저는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괜찮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것 그것은 치열하게 사는 하루 하루 속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아닐까 싶어요.
우리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더라도, 너무 치열하진 말아요. 힘 빠지면 오래 못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