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JTBC 마라톤 도전기 1
이럴 줄 알았으면 춘마를 신청할 걸
지난 일주일 동안 내 머릿속을 가득채운 생각이었다. 일요일 춘천 마라톤 대회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후기를 읽으면서 내가 왜 춘천마라톤 대회에 신청하지 않았는지 후회될 따름이었다.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자기만의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이 부러웠다. 기록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도전하고 이뤄낸 것 자체에 박수쳐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춘천 마라톤 대회에 나간 사람들이 부러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함께 하자는 걸 외면하고 혼자서 그 다음주에 있을 JTBC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능이 끝난 친구들 옆에서 혼자 수능을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나와 함께 풀코스(그렇다 나는 풀코스를 준비하고 있었다)를 처음으로 준비했던 분이 있었다. 그분의 기록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 분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기록에 연연 안하려고요. 완주만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며 독려도 해줬는데,,, 그 분이 4시간 30분대에 완주를 하고 말았다. 나름 충격이었다. 나의 충고가 민망해졌다. 누구 앞에서 주름잡은 격이 되었다 흑.
마라톤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들 말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기록에 크게 개의치 않으려 했는데 초반부 오르막이 무시무시하다던 그곳에서 그 기록이라고 하니 배신감이 느껴졌다. 시험 보기 직전에 "나 어제밤에 공부 하나도 못하고 자버렸어"라고 이야기 하고 혼자 밤샌 아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애써 의연한 척 했지만 그 기록보다 잘 나왔음 좋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남과의 비교를 안한다면서 아직 나는 남과의 경쟁에 익숙한 인간이었다. 흑흑
이런 저런 상황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데, 그냥 사람들이랑 함께 할 걸 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이미 상황은 끝난 것인데. JTBC 마라톤 대회를 선택한 것도 나였으니 내 몫으로 남겨둬야지.
화려한 가을 정취를 자랑하는 춘천 마라톤 대회를 포기하고 JTBC 마라톤 대회를 준비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작년 인생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나간 게 JTBC 마라톤 대회였다. 회사 형과 10킬로미터를 뛰고 왔다. 힘들었지만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의 쾌감은 꽤나 짜릿했다. 어쩌다보니 올해도 계속 달리게 됐다. 10킬로미터 대회도 여러 번, 하프 대회도 여러 번 나가게 됐다. 인생의 첫번째 풀코스를 맨 처음 달렸던 그 대회에서 하고 싶었다.
게다가 JTBC 마라톤 대회의 도착지는 잠실 종합운동장이다. 나름 겉멋이 있던 터라 그냥 일반 도로의 피니시 라인이 아닌 잠실 경기장의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게 더 짜릿할 것 같았다. 작년에도 힘이 빠지다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힘이 솟았던 경험도 있었다. 분명 다른 희열일 거라고 기대됐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응원을 받아보고 싶었다. 한 번도 가족이 마라톤 대회에 온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풀코스 도전 때는 아내와 아이들이 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결승점 어딘가에서 나를 응원한다고 생각하면 감동이 더 클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화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춘천 마라톤 대회를 포기하고, JTBC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었다. 걱정은 됐지만 그냥 나가보기러 했다. 어찌됐든 첫번째 도전이니 안되면 내년에 다시 한다고 마음먹고(라고 말했지만 사실 끝까지 기록을 걱정하긴 했었다.)
그렇게 나는 11월 3일, 내 인생의 첫번째 풀코스를 뛰게 되었다. 마라톤을 시작한지 1년만에 겁도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