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강한 회복력 덕분에 저 또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맹장염에 대해 알아봤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맹장염은 정확히 말하면 "충수염"이었다. 맹장은 소장에서 대장으로 이어지는 부위에 주머니처럼 부풀어 있는 대장 부위를 말하며, 충수는 맹장 끝에 꼬리처럼 달려 있는 것을 말한다. 꼬리처럼 달려 있는 충수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 충수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이것을 맹장염이라고 불렀다.
충수의 영어 단어가 Appendix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부록'이라는 단어로 외웠던 기억이 났다. 부록이라는 말이 충수라는 단어로 쓰인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곰곰이 따져보니 참 적절한 단어였다. 충수 또한 우리 몸의 부록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책이나 상품을 구매할 때 부록이 없다고 그 본래의 기능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궁금해 하는 아들에게 맹장염(정확히 말하면 충수염)에 대해 설명해 주 었다. 아들은 설명을 다 듣고 상당히 불쾌해했다.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맹장이(정확히 말하면 충수가), 왜 몸에 붙어 있어서 자기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며 불멘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럴만도 했다. 한참 캠프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시간에 혼자서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하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것도 캐나다에서 엄마도 없이 말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충분히 공감해주고 진심을 다해 위로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몸 컨디션이 점점 올라오면서 아이의 억울함과 짜증도 많이 사그라드는 듯 했다. 다행이었다. 아이의 억울함과 짜증을 들어주다 내가 폭발하면 큰 일이었을텐데 그런 일은 얼어나지 않았으니. 그 상황에 폭발하는 게 이상한 아빠인가? 어찌됐든 그렇게 우리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와 병동 주변을 걸으며 잠깐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들, 맹장이 터져서 많이 속상하지?"
"응 아빠. 왜 이렇게 난 운이 없는지 모르겠어. 여기까지 와서 맹장이 터질 게 뭐야?"
"아들,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디야. 곧 있으면 다 낫고, 즐겁게 놀 수 있을거야."
"맞아.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겠지? 더 좋은 일이 꼭 생길거야"
아들의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열한 살 아이가 다 큰 어른처럼 느껴졌다. 큰 일을 겪은 아이가 어느새 크게 자란 느낌이었다.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낸 아이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 아빠로서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도 마음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다. 아이가 아픈 게 내 탓 같아 죄책감도 들었고, 병원에 있어야 하는 사실이 나 또한 억울하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일정동안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하기도 했다. 일정이고 뭐고 모든 것을 다 접고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말처럼 좋은일이 "꼭" 생길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는 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캐나다에 오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책임감에서도 어느정도 해방되는 듯 했다. 캐나다에서 아이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부담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좋은 일이 생길거라고 믿으니,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다. 지금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김주환 교수는 그의 책 <회복 탄력성>을 통해 회복탄력성은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회복탄력성 참조) 김 교수는 일상에서의 행복도 회복 탄력성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 회복탄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꼽았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어떤 중요한 일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긍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중요한 시험이 다가왔을 때, 많은 사람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 때, 업무상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스스로 신바람이 나고, 말할 수 없이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 이런 사람이 뛰어난 업무 성취 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p.121)
아이와 병원에서 대화를 나누다 문득 "회복탄력성"이 생각났다. 아내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회복탄력성에 아내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지난 몇 년동안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가졌던 마음가짐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클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캐나다에서의 맹장염이(정확히 말하면 충수염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믿음도 들었다. 아이가 아프면서도 가졌던 긍정적인 생각을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어서도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으로 강한 회복 탄력성을 갖고, 일상에서 더 자주 행복한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아빠로서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기도 했고.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해서 예전처럼 잘 먹고, 잘 노는 아이로 돌아오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가 보여준 모습은 나에게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런 가르침은 아픈 큰 아들만 준 것은 아니었다. 아빠도 형도 없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고모네에서 잘 버텨준 일곱살 둘째 아들도 대견하고 고마웠다. 구김살없이 고모네 가족들과 며칠동안 잘 어울린 아이도 많이 자란 느낌이었다.
이번 경험은 나로 하여금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갑자기 찾아온 동생 때문에 고생했던 누나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사이 둘째를 맡기고 누나에게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누나는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며 우리 삼부자를 잘 챙겨줬다. 누나가 없었다면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블로그를 통해 만난 "라이언"도 고마웠다. 그는 병원에 와서 응원도 해주고 둘째 아들 픽업도 도와줬다.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들의 도움도 받았다. 우리 상황을 알고 빨리 퇴원도 시켜주고, 병원비도 깎아줬다. 그들의 마음도 느꼈다. 모두들 멀리서 온 우리 부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빠른 쾌유를 빌어줬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더니 아이들도, 나도 큰 일을 겪고 나서 더 단단해졌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악몽같은 경험이었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잘 버텨준 아이들과 많은 도움을 준 모두에게 감사했다. 나 스스로에게도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