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만에 위니펙에서 밴프로 가다.
작년 겨울 휴일 날 어느 오후의 일이다. 추위 때문에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은 날이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집안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게으르게 휴일을 보내는 게 나쁘지 않았지만, 조금 지루했다. 유튜브를 열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이 때 아내가 선곡한 곳은 유키 구라모토의 <레이크 루이스>였다.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곡을 여러 곡 들었지만 이 곡은 처음이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인상적이었다. 죽어있던 감성이 새순 올라오듯 깨어나는 것 같아 좋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음악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이 곡에 대해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봤다. 이 곡은 만들어진 지 30년도 더 된 유키 구라모토의 대표작이었다. 어쩌다 이제서야 나에게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꽤나 유명한 곡이었다. 작곡가인 유키 구라모토는 레이크 루이스에 세 번이나 방문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한 후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레이크 루이스라는 곳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진 속 풍경은 피아노 선율만큼이나 서정적이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경치였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 곳을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아이들과 캐나다 일정을 짤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레이크 루이스였다. 어떻게 해서든 이 곳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캐나다로 가기 전부터 계획을 세워뒀다. 3주간의 아이들 캠프 일정을 마치고, 4주차에 아이들과 함께 레이크루이스가 있는 밴프에 가는 것으로 스케쥴을 짰다. 숙박도 알아보고 이런 저런 여행 준비물도 챙겼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을 가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아들의 맹장 수술 때문이었다. 밴프로의 여행 출발일은 아들이 맹장 수술을 한 지 일주일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괜히 여행을 갔다가 탈이라도 나면 "정말" 큰 일이었기에 여행을 가는게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정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초성수기였던 터라 방이 거의 없었다. 새롭게 예약을 하려면 경비가 꽤나 들 것 같았다. 아이들 캠프 일정도 문제였다. 조정을 해보려고 했지만 워낙 인기 있는 캠프라 자리가 남는 게 없었다.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아이는 퇴원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정상"의 몸으로 돌아왔다. 아이 또한 밴프로의 여행을 원했다. 아이의 모습을 보니 갈까 말까하는 마음이 가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아이가 병원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좋은 일이 생길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냥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출발 전 좋은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몸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아이를 살펴본 의사는 아이가 거의 회복했다며 밴프로 여행을 가는데 걸릴 게 없다고 했다. 의사는 좋은 여행을 다녀오라고 환하게 인사도 해 주었다. 100%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행을 가도 된다는 명분을 얻은 것 같았다.
여행은 총 7박 8일의 일정이었다. 나는 밴프까지 자동차로 운전을 해서 다녀올 생각이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나의 여행 계획을 극구 만류했다. 아이들도, 나도 고생할 게 뻔하다고 했다. 이미 자동차로 밴프를 다녀온 조카는 다시는 그런 여행을 하지 않겠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아무리 뻥 뚫린 캐나다 도로라 해도 장거리 운전은 쉽지 않다. 가는 데에 열 네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그 먼곳까지 혼자서 운전해 가는 건 무리였다. 아이들도 문제였다. 한 아이는 맹장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 아이는 겨우 일곱살이었다. 좁은 차 안에서 아이들이 버텨줄 지도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자동차”로 밴프에 가고 싶었다. 돈을 아끼고 싶은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자동차로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몸이 조금 고생스럽겠지만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발견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도 있었다. 캐나다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두려움에 떨던 나였는데, 어느새 무리한 도전까지 생각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 있던 걸까? 무모했지만 그래도 자동차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아이들을 위한 이런 저런 준비를 했다. 혹여나 자동차로 가는 길에 문제가 생길까봐 최대한 여유있는 일정을 짰다. 쉬엄쉬엄 밴프까지 가기로 했다. 중간에 몇 군데 도시에 들러, 쉬엄쉬엄 가면 아이들도 덜 지루하고, 나도 덜 힘들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준비물도 챙겼다. 아이들이 차에서 지루해 하지 않도록 게임기도 챙기고 책도 챙겼다. 간식거리도 잔뜩 챙겼다. 배고픈 아이들은 성난 야수와도 같으니 배가 고프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런 저런 대비가 필요했다.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는 동안에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은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무너지고 말았다.
여행일이 가까워지니 불안해졌다. 용기 가득한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두려움이 많은 아이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나보다. 호기롭게 아이 둘을 데리고, 나 혼자 자동차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이런 저런 걱정이 나를 사로 잡았다.
"자동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퍼지면 어떻게 하지?
맹장 수술을 한 아들이 갑자기 다시 아프다고 하면 어디에 연락해야 하나?
내가 아프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찾아오는 "막연한" , “실체없는” 두려움이었다. 휴직을 시작할 때도 이런 저런 생각으로 두려웠다. 캐나다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두려움에 떨었다. 아이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 순간에도 두려운 나머지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두려운 일을 잘 극복하고 나면 이런 감정에 무뎌질 줄 알았건만 여전히 새로운 도전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후회도 들었다. 왜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하겠다고 했을까? 두렵다고 생각하니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 기관차처럼 두려운 감정은 가속을 밟아가며 멈출 줄 몰랐다.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아이가 입원했을 때 도움을 줬던 라이언에게 다시 한 번 도와달라며 염치없게 부탁했다. 그와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비용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부담하겠다고 말하며 같이 여행을 하면서 나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의외로 라이언은 같이 가겠다고 했다. 어릴 적 밴프에 가 본 게 전부였던 라이언은 우리와 함께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대학생인 라이언은 방학 중이라 특별한 일정도 없었기에 일주일 여행을 "갑자기" 다녀와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뻔뻔한 나의 부탁을 받아준 라이언이 고마웠다.
하지만 출발하기 이틀 전, 라이언은 같이 여행하는 게 부담스럽다며 미안하다며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 그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애시당초 무리한 부탁이었다. 고작 몇 번 만난 사이었다. 같이 7박 8일을 함께 한다는 게 나도, 라이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늦게라도 나의 제안을 거절한 그가, 오히려 고마웠다. 두렵다는 이유로 그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렵다는 감정이 조금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에게 처음으로 같이가자고 제안할 때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그와 함께 간다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잠시 잊었던 것이 그나마 두려운 감정을 잠재우게 만든 듯 했다. 역시나 나의 두려움은 막연하고, 실체가 없는 게 맞았다.
잠깐의 해프닝이 있었고, 결국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과 셋이서만 밴프로 여행을 떠났다. 별 문제 없기만을 바라며 자동차로 여행을 시작했다.
잘 다녀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