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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Dec 20. 2019

점진적 과부하를 추구하다

발표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얼마전 나코리님이 운영하는, <사람책>이라는 공간에서 "멀티페르소나"를 주제로 발표가 있었다. 휴직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의 다양한 "가면"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자리였는데, 운좋게 나코리님께 선택을 받아 나도 그 자리에 낄 수 있었다. 


발표를 하겠다고 덥썩 물었지만, 역시나 발표는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이십여 분의 발표는 몇 주동안 나를 괴롭혔다. 무엇을 이야기 할까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듣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발표자료를 만드는지 이런 저런 구상을 하느라 시간을 써야 했다. 머리를 싸매며 고생한 며칠동안, 내가 왜 발표를 하겠다고 이야기 했는지 후회하기도 했다. 실제 발표자료를 만드는 시간보다, 발표를 준비하며 괴로워했던 시간이 더 길었던 듯. 


하지만 근심하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 발표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끝이 났다.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 좋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단 것도 꽤나 큰 기쁨이었다. 이날 발표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생각했던 것을 정교화할 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글쓰기를 통해 이런 저런 생각을 잘 정리했었다고 생각했는데, 발표로 정리하는 것은 또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이 날 발표 주제는 "달리기"였다. 달리기를 통해 올해 새롭게 만난 나의 자아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지난 시간동안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남과의 비교를 통해 내세웠던 자존심을 버리고 진짜 나를 사랑했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달리기가 내게 가르쳐줬던 것들을 이십여분동안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발표할 수 있었다. 


나의 자랑을 늘어놓기 보다는, 내가 달리기를 하며 겪었던 것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런 저런 자기 검열도 있었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그랬기에 더욱 공감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한편 이날 발표를 하며 최근 내가 꽂혔던 이야기에 대해서도 정리할 수 있었다. 아직은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 해 본 적은 없기에, 한 번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이날 이야기 했던 것 중 일부를 좀 더 정리해보려 한다. 


앞으로 나는 이렇게 살고싶다.


얼마 전 블로그 이웃이자 달리기 동지인 한 분이 나의 "달리기" 글에 댓글을 달아 주셨다. 그 때 지인이 달아준 한 문구가 한동안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점진적 과부하"


과부하라는 부정적인 느낌의 이야기가, 점진적이라는 수식어의 도움을 받으니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기 위해 과부하 자체는 나를 힘들게 할 수는 있겠지만, 점진적으로 과부하를 준다면 충분히 힘듦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마라톤을 할 때 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풀코스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점진적 과부하가 내 몸에 주는 영향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올해 초만 해도 나는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만 치부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5키로, 10키로 점점 한계를 넘어서면서 어느새 풀코스를 준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 달리고 나니, 내 한계를 스스로 깨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풀코스를 준비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맨 처음부터 풀코스를 염두에 뒀더라면 나는 쉽게 포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하다가 금세 고꾸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점점 나의 한계를 도장깨기식으로 깼던 것이 더 큰 목표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단 달리기 뿐만이 아니다. 인생의 여러 목표도 점진적 과부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주 느끼는 요즘이다. 글쓰기가 나에게 이를 잘 가르쳐준다. 지난 4년동안 꾸준히 글을 쓰며 나는 점점 더 글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매일 글쓰기를 하며 확장했던 지난 1년 4개월의 시간도 점진적으로 나의 글쓰기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많은 것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요즘이기도 하다. 점점 글과 관련한 나의 한계를 깨보며 이런 저런 실험을 하는 것이 즐겁기도 한 요즘이다.


한 번에 뭔가를 이루려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느낄 수도 있었다. 뭐든 일이 되려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빨리 쌓은 성은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법이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은 내게 “기다려야 한다”는 가르침도 주었다. 급하게 간다고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려면 잘 알아보고 제대로 가야한다. 


SNS 등에 씌어진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를 보더라도 마음을 가라앉힐 여유를 갖게 되기도 했다. 그들의 성공의 이면에는 힘든 축적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조급한 마음을 억누를 수도 있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을 되새기며 나만의 방식으로 점진적 과부하를 주고 있는 중이다. 


결국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항상 언급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그의 책을 통해 이런 점진적 과부하를 강조한다.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 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매일 매일 노력해왔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그의 삶도 점진적 과부하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점진적 과부하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이 함께 있었다. "매일 매일" 노력하고 조금씩 나의 목표를 확장해 나가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너무 뻔한 이야기고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올해 초 나는 나의 비전에도 점진적 과부하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의 나와 경쟁하여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그 매력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점진적 과부하라는 말을 본 순간, 내 비전을 위해 이 말을 일종의 “행동강령”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의 나와 경쟁하며 꾸준히 나의 몸과 마음에 과부하를 걸어주는 것이 나를 단련하고 나의 조바심을 억누르는 길이 아닐까 싶다. 


오늘 하루도, 점진적 과부하로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 지금 당장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무엇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점진적 과부하를 통해 나를 단련하는 시간이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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