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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Dec 25. 2019

[휴직일기] 말하기 민망하지만 책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출판사와 계약도 안했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책을 쓰는 건 제게 의무감이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계발 강의를 들으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책쓰기"이다.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은 꼭 거쳐야 하는 관문 같은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 책쓰기 강의가 열풍이다.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몇천만원짜리 강의도 있다고 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는데, 쓰려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진다. 이러다 책읽는 사람보다 책쓰는 사람들이 많아질지도...


어찌됐든, 나도 이런 기류에 휩싸여 책을 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언젠가 책을 쓰면 좋겠다 싶었는데, 올해 초 휴직을 하고 나서 책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휴직을 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알게 됐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책을 썼거나, 쓸 계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묵자흑이라더니 책을 쓰려는 사람들 옆에 있으니 나도 책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책은 제2의 직업을 설계하는데 중요한 수단이라는 강의를 듣고 더욱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휴직 초 나의 목표는 퇴직이었다. 어떻게든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무언가"를 만드는데 책만한 게 없다는건 책쓰는 일에 대한 의무감과 사명감을 불어 넣었다.


근데, 뭘로 책을 써야 하죠?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책을 쓰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쓸 수 없었다. 책을 쓸만한 "꺼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현실이 그랬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나의 경험으로는 책을 낼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14년간 회사에서 이룬 커리어도 없었고, 회사 밖에서 딴짓을 하며 만들어낸 성과도 보이지 않았다.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긴 했지만 7년 넘게 매일 쓴 김민식 피디님을 넘어설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쩌면 그게 불행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찾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로 책을 낼 수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믿고 언젠가 꺼리가 나올거라는 생각으로 계속 쓸 거리를 찾아 헤맸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제가 뭘로 책을 쓰면 좋을까요?"


무릎팍도사에게 묻는 것도 아니고, 참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어떤 것으로 책을 써야 할 지 답을 내야 하는 사람은 나였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남들에게 의견을 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뭔가를 발굴할 것 같았다.


이것저것 해보다


다행히도 (이것도 불행이었는지 모르겠다만) 소재를 찾기 위해 남들에게 물어보지만은 않았다. 나 혼자 글을 쓰며 이런 저런 시도도 해보았다. 블로그와 브런치라는 좋은 판에 나의 글을 쓰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런 저런 시도 끝에 휴직을 하며 경험했던 이야기를 글로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꼴랑 6개월이었지만(이런 마음을 먹은게 6월 정도였다) 다양한 도전을 했었고 그 속에서 얻은 게 많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휴직을 도와주는 것을 제2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Gap Year 전문가라는 나만의 타이틀을 만들어 꼭 휴직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전환기에 마주한 사람들에게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싶었다.


머리를 싸매고 기획서 얼개를 짜고 목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캐나다로 아이들과 떠났다. 캐나다에 가서 열심히 써볼 생각이었다. 당당하게 초고를 들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바빴다. 아이가 맹장이 터져 병원에 입원한 일도 일이었지만,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꽤나 벅찬 일이었다. 게기다 아이들 음식도 챙겨야 했으니. 사부작사부작 글을 썼지만 초고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었다. 게다가 고작 6개월 경험한 게 다였다. 뭘 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내 마음 속에 훅 들어온 이야기


캐나다에서의 일정이 거의 끝날 때 쯤이었다. 갑자기 아이들과의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순간 순간을 뭔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블로그가 아닌 책이라는 작품으로 손에 쥐어보고 싶었다. 이런 저런 사고도 겪으면서 나도 아이들도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책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책으로 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게 내 결론이었었다. 누나네 집에 머물렀기에 완전히 혼자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걸 책으로 쓴다고 제2의 직업이 열릴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이 소중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어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마음 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와 책을 쓰겠다는 열망은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날 밤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몸이 피곤해 잠깐 잠이 들었던 나는 밤 10시가 되어도 자지 않고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버럭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여행 중에는 괜찮았는데 왜그랬는지 그날 쓸데 없이 그렇게 화를 냈었다. 아들은 당황했고, 분노를 삭히지 못한 채 씩씩거리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러려고 여행을 다녀왔나 싶었다. 소중한 기억이 물거품처럼 날아갈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고 소중한 기억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우선 나를 위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하나씩 써 내려갔다.


40일 동안 집중해서 썼다. 별다른 기획 없이 간략한 개요만 짜서 하루에 한꼭지씩 쓰자는 마음으로 꼭지를 썼다. 그렇게 40일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기획서를 썼고 목차를 정비했다. 나름 즐거운 경험이었다. 매일 하나씩 쓴다는게 (거른 날도 있었지만) 힘이 들기도 했지만 얻는 것도 많았다. 아이들과의 경험이 정리되고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보였다. 혼자 흥분하기도 했다. 조만간 책으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으니...


현실은 냉정했다.


기획서와 수정을 거친 몇 개의 꼭지를 워드파일로 만들어서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나름의 투고였다. 처음엔 정성스럽게 출판사마다 이메일을 고쳐가며 보냈다. 왜 그 출판사와 맞는지 나름의 이유를 쓰기도 했다. 물론 열개가 넘어가면서 이메일 본문은 같아졌지만 말이다. 출판사에 투고를 하는 것도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막무가내로 보낼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쓴 것과 비슷한 책이 나온 출판사에 보내야 했기에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것 저것 확인도 해야 했다.


몇 십개의 투고 요청을 보냈지만 오는 답은 하나같았다.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아 책으로 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마음은 쓰렸지만 그래도 감내해야 했다. 다시 답장을 보내 검토해주셔서 감사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점점 거절의 메일이 쌓일 수록 불안해져갔다. 내가 헛물을 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최근엔 투고메일을 보내도 답도 안온다. 크리스마스에 연말까지 겹쳐 연휴기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답답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왜 책을 내려고 하는지, 그리고 내가 내려는 책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런지도 생각해 보고 있다. 연초에 생각했던 책을 쓰는 마음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 확실히 정리되진 않았다. 꼭 기존의 출판사를 거치는 게 아니더라도 독립출판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조금씩 글도 수정하고 있다. 초고였기에 당연히 수정이 필요했다. 어떤 출판사도 관심이 없기에 책으로 나온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고치는 중이다. 초고를 쓰는 일보다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거절만 받다보니 자신감도 없어지고...


그래서 매주 한편씩 브런치에 발행하는 중이다. 그렇게 해야 계속 보면서 수정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발행하면 독자들이 굳이 책을 사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그냥 발행하고 있다.



https://brunch.co.kr/magazine/canadawithdaddy




연말에 당당하게 계약서를 쓰고, SNS에 자랑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연락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지만 그런 요행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바라는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책을 쓰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초고를 고치고 있다. 그리고 꾸준히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우선 할수 있는 것까지 해 볼 생각이다. 꼭 책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면 뭔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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