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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Dec 27. 2019

서른아홉, 10가지 도전과 마주하다

2019년, 익숙한 것과 결별하다.

2019년 나는 자주 행복했다.


2019년, 한국나이로 나는 서른아홉이 되었다. 마흔을 일년 앞둔 나는 어쩌다보니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휴직을 하고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으로 타이틀과 직함을 버리고 자연인 최호진으로서 살았다. 휴직이었기에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주는 안정감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자연인 최호진으로서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감정이 우울함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나를 위해 무엇에 최선을 다해야 할 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2019년의 나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흔들리며 피는 꽃"이 바로 나의 모습 아니었을까 싶다. 그속에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점진적 과부하를 주며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비바람으로 힘들 때도 많았지만 주저앉지만 않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되새기며 조금씩 전진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얻었다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래도 2019년 그렇게 조금씩 전진하며 지낸 덕분에 나는 더 자주 행복하고, 더 자주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2019년을 더 잘 정리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잘 정리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사실 진짜 고민은 많이 했다) 글로 다시 돌아왔다. 몇 편의 글로 한 해를 정리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래서 한 해를 정리하는 몇 개의 글을 써 볼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첫번째로 2019년 나를 흔든 10가지 사건을 정리해보았다.


1. 휴직


 2019년을 시작하며 회사에 휴직계를 던졌다. 난생처음으로 경험한 "경로이탈"이었다. 지난 38년동안 사회가 정해놓은 길로 안정적으로 살아왔던 나였다. 대학도, 취업도, 재수없이 한 번에 해결했다. 회사도 똑같은 회사를 14년 내내 다녔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더 무서웠다. 회사에서 찍히는 것은 아닌지, 더이상 승진은 물건너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샘솟았다. 일년동안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것도 문제였다. 맞벌이라 아내가 돈을 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계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타격이 있었으니.

 용기를 북돋아 준 시람은 아내였다. 삶의 변화를 갈망했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내는 나의 휴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덕분에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휴직할 수 있었다. 휴직 기간 내내 나의 도전을 도왔던 것도 아내였다. 그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더라면 휴직도 그리고 그 이후의 일련의 도전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2.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다.


 연초 지인들과 제주에 가서 한라산을 등반하고,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만들어 본 버킷리스트 100개였다.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든다는 것은 꽤나 힘들었지만 나에게 의미가 깊은 작업이었다. 작년에 처음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고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회사는 나에게 성장 동기를 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19년의 버킷리스트 100개는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꾸준히 글을 쓰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도전에 나를 맡기는 것을 내가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100개의 버킷리스트에 칸을 채우며 알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의 경험은 워크샵으로도 연결됐다. 제주에서 함께 버킷리스트를 만든 사람들과 소소한 워크샵을 진행했다. 우리가 느낀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나눔의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진행해 본 워크샵이라 나름의 우여곡절도 있었고 반성할 부분도 많았지만 새해의 시작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3. 자기혁명캠프


2019년 1월말부터 설날을 포함해 약 6주간 나는 약간 미쳐있었다.,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의 저자이신 "청울림"님께서 진행하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인 "자기혁명캠프"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맨 처음 자기혁명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유없는 반감이 있었다. 부동산 전문 투자자인 "청울림"님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아침 5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 그가 추천해준 책을 읽고 프로그램의 "미션"들을 하나씩 수행하면서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벗고 오롯이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씩 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할 수도 있었다. 엄청난 에너지를 쏟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휴직을 시작하며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었다는 게 감사했다. 그 에너지가 2019년 한 해동안 나를 지배했던 것도 사실이고.


 더 큰 선물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얻었다는 것이다. 자기혁명캠프에 참여했던 동기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도전에 힘을 주기도 하고 힘을 받기도 하며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함께 1년을 버텨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꾸준히 자기혁명을 할 수 있었다.


4. 9박10일 단식


"자기혁명캠프" 프로그램을 들으며 구본형 선생님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었다. 분명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느낌이 달랐다. 나도 모르게 책을 보다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처럼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블로그에 표현했다 .블로그 열독자인 아내는 어느날 나에게 쪽지 한장을 건네줬다. 그 쪽지엔 구본형 선생님께서 머물렀던 포도단식원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에 홀린듯 그곳에 가서 9박 10일동안 포도단식을 하고 왔다.


 일주일 넘게 포도만 먹으며 지낸 나는 많은 것을 비워냈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지리산의 맑은 공기는 나의 우둔한 뇌를 트이게 만들기도 했다. 새벽에 난생처음 별똥별을 보며 우주의 기운을 잠시나마 느껴보기도 했고.


 구본형 선생님처럼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단식원에서 품지는 못했지만, 단식원에서의 열흘은 올해 나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 다시 몸과 마음이 흐트러졌다 싶을 때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5. 70일간의 캐나다 여행

 

 아이들과 70일 동안 캐나다에 머물렀던 것도 나에게 큰 사건이었다. 사실 캐나다에 갈 때 약간의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출발하기 전, 조금만 하면 뭔가 만들어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휴직하고 좌충우돌했던 6개월동안 만든 결과물이 곧 나올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머무는 게 조금 아쉬웠다. 캐나다에서는 뭘 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니.


 게다가 캐나다에서의 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물론 누나네 집에 머무는 일정이라 완전 맨땅에 헤딩은 아니었지만 낯선 곳에서 아이들 먹을 것 챙겨가며 (우리 아이들 먹을 건 꼭 내가 챙겼다) 보살피는 게 꽤나 어려웠다. 큰 아들 맹장 터진 게 결정적이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아이들을 고생시키나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아들이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라고 말한 것이 나의 모든 생각을 바꿔놓았다. 아이들의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힘들어 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일이 생기기 위해 지금 즐겁게 지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조금 벗어나 아이들과의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덕분에 여행을 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힘이 든 건 사실이지만, 내게는 엄청난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든든했고, 아이들 덕분에 내가 좀 더 자랄 수 있었다. 진정 여행의 즐거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6. 마라톤 풀코스

 

 11월 3일, 난생처음으로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고, 4시간 5분이라는(물론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준수한 성적으로 골인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냥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몸을 추스리니 4시간동안 달렸을 때의 감정이 하나씩 떠올랐고 그때부터 벅찬 감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감정을 정리하다보니 마라톤과 인생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라톤이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아 감사했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페이스 조절이다. 자기에게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해서 꾸준히 달리는 게 중요하다. 힘이 남는다고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힘이 없어도 멈추거나 걸어서는 안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꾸준히 자기만의 속도로 뛰어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뛸 때도 주의를 해야 한다. 오르막에서는 바로 앞만 보는 게 중요하다. 멀리 보면  힘이 들어 쉽게 포기하기 마련이다. 한발짝 한발짝에 집중하면 오르막도 금세 지나갈 수 있다. 내리막은 반대다. 내려가는 길 자체를 즐기다가는 자칫 부상이 올 수 있다. 멀리 보며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달리기를 하며 인생도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페이스로 지금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들 때는 견뎌내는 게 중요했고, 잘나간다 싶을 때 조심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라톤을 하나보다 싶었다.


7. 온라인 모임을 운영하다

 

 2019년 나는 <한달습관>이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난생 처음으로 리드해보는 프로젝트였다. 이런 저런 모임을 알게 되면서 내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했고, 영어책읽기, 만보이상 걷기, 감사일기 쓰기 등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참여자이자 운영자로서 모임에 참여했고 덕분에 내 습관도 잘 세울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느슨한 연대"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서 끈끈해진 멤버들도 많았다. 그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급기야 오프라인으로 만나 함께 뛰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새로운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연말에 운영하기 시작한 글쓰기 모임은 내게 또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글쓰기 모임은 함께 글을 쓰고 피드백을 주는 모임이었다. 마감일에 각자 글을 쓰고 카톡방에 공유하면 내가 읽어보고 하나씩 피드백을 달아주는 방식으로 모임은 진행됐다. 피드백은 긍정적인 것만 하지 않았다. 개선해야 할 점을 찾아서 하나씩 지적했다. 나름 힘든 일이었지만 받아보는 사람들도 좋아했다. 그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자기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잘 몰랐던 분들에게는 나름 신선한 자극이 된 듯 했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나였다. 누군가와 글쓰기로 소통하는 게 나에게 큰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레 언젠가 글쓰기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도 갖게 되었으니...



8. 나의 이야기로 발표하다

 

 휴직을 하고 난생처음 사람들 앞에 서서 "내 이야기"를 나눴다. 꾸준함, 버킷리스트, 새로찾은 자존감 등에 대해서 발표했다. 발표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내가 진짜 발표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순간 너무 짜릿했고 행복했다.

 물론 발표를 준비하면서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었다. 준비하는 기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게 귀찮기도 했다. 괜히 나선 것은 아닌지 후회도 됐고.

 하지만 준비를 끝내고 막상 발표를 하면 그동안의 힘듦이 눈녹듯 사라지곤 했다.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하나씩 사진을 찍을 때면, 내가 슈퍼스타가 된 듯한 환상을 느끼며 그 자리에 빠져들기도 했다.

 발표를 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경험한 것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글을 쓰며 정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좀더 생생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마주하며 이야기하는 것이니 그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글도 그렇게 써야 하긴 하지만..) 게다가 발표는 그동안의 글들을 묶어주는 효과도 있었다. 글을 보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만들기도 했다.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강의는 누군가 나를 불러주지 않았기에 내가 직접 판을 짜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그나마 자신이 있는 "글쓰기"가 주제였다. 나름 보통사람의 평범한 글쓰기라는 컨셉의 강의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강의는 아니었다. 글쓰기 강의는 많았고 굳이 나를 찾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사실에 서글프기도 했다. 내가 헛된 꿈을 꾼 것같은 느낌은 자괴감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강의를 하는 동안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서 몇 명의 사람이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명 그들은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고 있었다. 몇 명이 오든 나의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단 한분이라도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9. 매일 글을 썼고, 그리고 책을 썼다.

 

 2018년 9월부터 매일 블로그에 한 편 이상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들은 블로그 강의에서 30일동안 해보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30일을 하고 견뎌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30일씩 연장하다 어느덧 놓치지 않고 싶은 나의 루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난 2019년 매일같이 글을 썼다. 물론 365일을 다 쓰진 못했다. 아이가 맹장 수술을 해서 입원했을 때, 밴프 캠핑장에서 인터넷이 안될 때에는 포스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예외적인 상황을 빼고 매일같이 글을 썼다. 그리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했다. 그냥 그게 좋았다. 당장 떡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꾸역꾸역하는 게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믿음도 있었고.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책쓰기로 연결됐다. 막연히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2019년을 맞이했다. 이것저것 끄적인 것도 많았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한동안 책으로 정리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캐나다 일기를 블로그에 적다가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책으로 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좋았고, 내가 그 속에서 느낀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미친듯이 40일만에 초고를 완성했고 지금은 수시로 고치며 원고 작업을 하는 중이다. 투고도 하고 있다. 물론 그 어떤 출판사에서도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쓰고 고치며 기다려볼 생각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10. 익숙한 것과의 결별 :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 폐차, 그리고 두려움...


 특정한 사건은 아니지만, 2019년 나는 몇 개의 익숙함과 결별했다. 회사라는 익숙함을 걷어 차고, 1년 6개월동안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새롭게 살게 됐다. 그동안 여유로웠던 태도와도 결별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새벽 기상을 하며 아침잠과도 결별했고, 항상 나의 두 다리를 편하게 만들었던 택시와도 결별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얼마간의 불편함을 주었지만 금방 익숙한 무언가가 되기도 했다.


 한달동안 고기와도 결별해 봤다. 포도단식원에 다녀오고 나서 한달동안 완벽한 비건으로 살아봤다.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생선, 계란, 밀가루, 우유를 끊고 살아봤다. 내 몸이 가벼워지며 좀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 좋았다. 하지만 이런 도전은 한 달을 넘고 포기해야 했다. 음식이 제한되다 보니 사람들과의 만남도 제약이 컸다. 사람들과 만나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가장 큰 결별은 "막연한 두려움"과의 결별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전을 할 때마다 나는 그냥 두렵고 무서웠다. 휴직을 시작할 때도, 단식원에 들어갈 때도 그리고 캐나다에 갈 때도 항상 나는 떨고 있었다. 하지만 도전을 하고 두려움을 마주하면서 어느 정도의 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면서 조금씩 의연함을 배워가는 중이다. 언제나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겠지만 적어도 그런 감정 때문에 도전을 꺼리지는 않을 듯 싶다.




얼마 전 지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 세상에는 다양한 골목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로인생이었던 나에게 그의 골목길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모두가 큰 길로 나서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골목길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2019년의 도전이 나에게는 골목길 체험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골목길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도 했고. 물론 그렇다고 휴직을 끝내고 퇴사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장 골목길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9년 골목길의 소중한 가치를 안 것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흔이 기다려진다. 며칠만 지나면 마흔이 되는데, 마흔이라는 숫자와 상관없이 또다른 무언가를 도전하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설렐 따름이다. 2020년에도 많은 도전을 통해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나로 만들어 보고 싶다.


고마웠어,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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