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커피마시는 커피 무식자의 이야기
커피에 대한 글을 써 보라고 부탁을 받았다. 돈벌이가 되는 그런 부탁은 아니었다. 커피 사업을 하는 지인이 지나가며 한 이야기였다.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흔쾌히 대답했지만 커피관련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커피를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이었다. 몇 달을 끌다 해를 넘겼고,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올해 초 커피 관련한 글을 쓰겠다는 것을 한 해의 계획으로 집어 넣기까지 했다.
굳이 커피관련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인의 부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인의 부탁이 시발점이 된 건 맞지만 그의 부탁을 거절한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커피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커피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었고 그것을 글로 푸는 것처럼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몸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하루 두 잔 이상 먹으며, 커피가 없으면 생각도 못하고 글도 못쓰는 나에게 중요한 것인데 이것에 대해서 모르는 게 내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커피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첫 시작을 커피의 무엇에 대해서 써보면 좋을까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는 게 없으니 쓸 게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카페에서 소재를 얻을 수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킬 때였다.
예가체프와 케냐AA 중 어떤 걸로 해드릴까요?"
뭐가 좋은지 그 차이는 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있어 보이는 예가체프로 골랐다. 신맛이 더 난다는 점원의 말때문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신맛을 즐겨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먹어봐도 큰 차이를 알지 못했다. 평상시 내가 먹었던 커피와 이날의 예가커피는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커피 무지랭이 나에게는 그냥 아메리카노, 쓴 맛일 뿐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예가체프가 뭔지, 또 케냐AA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을 알면 맛의 차이를 조금 더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예가체프(Yirgacheffe)는?
우선 예가체프는 에티오피아의 지역 이름이라고 한다. 에티오피아 남부의 고산지의 조그만 지역이 예가체프라는 곳인데 이곳에서 나오는 커피를 예가체프라 한다.
우선 예가체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에티오피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가체프의 나라,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나라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기원지와도 같은 곳이다.
11세기 경 칼디라는 염소지기가 염소들과 음식을 찾으러 산책을 갔다가, 염소가 빨간 열매를 먹고 활기차게 뛰는 것을 보게 됐다. 그 열매를 먹은 염소는 밤에도 계속 활발했고, 불면증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이를 유심히 관찰한 칼디는 열매를 직접 먹어본 후 몸의 변화를 느끼고 이를 수도원에 소개하면서 커피가 퍼지게 된다. 물론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 중동에서 시작됐다는 설도, 예멘의 모카가 기원지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한 건 에티오피아라는 나라가 커피의 역사에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위키피디아 참조)
커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에티오피아는 적도를 끼고 있지만 높은 고도와 서늘한 기후, 그리고 독특한 토양 등 커피 생산에 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양질의 커피가 나오는데, 그 중 예가체프에서 나오는 커피가 맛이 좋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과일의 향미가 잘 느껴진다는 예가체프는 적절한 산미(신맛)과 깔끔한 맛이 혼합되어 있다고 한다(애석하게도 난 산미 정도밖에 아직은 못느끼고 있다) 고구마 향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한편 예가체프는 가공할 때 Natural 공법과 Wet 공법 두 방법을 모두 활용하곤 하는데, 이 두 방법 중 어떤 것이 예가체프의 맛을 최적화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가공방식 모두 좋은 맛을 내고 있다고 한다. Natural 공법은 수확한 커피를 자연건조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과일의 맛을 자연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Wet 공법은 Washed 공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커피 열매를 따고 난 후 물에 담가 씻은 후에 48시간에서 72시간 동안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균일한 커피 맛을 낸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예가체프의 경우 뒤에 G1, G2, G3, G4 등이 붙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품질을 의미하는 Grade로 분류한 것으로 숫자가 작을수록 품질이 좋은 것이다. 품질에 따라 맛도 다를 수 밖에 없는데, G1의 경우 예가체프 특유의 맛과 향이 풍부한 반면 G4는 맛과 향은 적지만 깔끔하다고 한다.
예가체프에 대해 조사하다보니 재미난 것도 알 수 있었다. 보통은 커피를 생각하면 커피 농장이라 불리는 대규모 경작을 생각하는데 에티오피아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토지가 정부소유라 농만들은 경작권만 갖고 있는데 몇 그루의 커피 나무를 키우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연에서 나오는 커피라 그 맛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커피나무를 키우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커피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은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커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정작 커피를 마시지 못해요. 커피 빈(Bean)을 만들 때 생기는 커피 껍질(파치먼트-내과피)을 끓여서 커피 대신 먹기도 하는데 시장에서 커피 가격의 1/10 정도로 살 수 있어요. 물론 수확이 한창일 때는 거저 얻어다 먹기도 하지요. 카페인양이 엄청나다고 해요. 사실 그것도 돈을 주고 사야 하니까 산이나 들에서 구하기 쉬운 생강과 계피를 넣어 끓인 차 '차이'를 마십니다. 차이에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을 두세 수저 넣어 먹으면, 그게 저녁식사죠." <기사 중 일부 발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58703
케냐AA
예가체프에 대해서는 이 정도까지만 알아보고, 그 다음으로 케냐 AA에 대해서 알아보자.
케냐AA는 원두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케냐에서 나오는 원두다. 케냐는 에티오피아 바로 아래 있는 나라지만 커피 경작은 한참 늦게 시작했다. 1903년 천주교 선교사들에 의해 재배된 커피가 최초의 커피라고 한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만큼이나 좋은 자연 환경을 갖고 있는 케냐는 국가의 적극적인 커피산업 육성 정책으로 인해 최고급 커피만을 생산하는 주요 커피 생산국이 된다.
케냐의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예가체프처럼 특정 지역의 커피를 따로 이름짓지 않고, 나라 전체에서 생산되는 커피 모두를 케냐 커피라 부른다. 이는 지역별로 커피의 특징을 구분짓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국가에서 강력히 커피 산업을 관리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 커피는 생두의 크기에 따라 등급을 분류하기도 하는데, 생두의 크기를 측정할 때 주로 스크린 사이즈로 나타내곤 한다. 스크린 사이즈를 측정하는 방법은 구멍 뚫린 철판에 (스크리너:screener)에 생두를 통과시켜 측정한다고 하는데, 스크린 사이즈가 18은 AA, 17은 A, 15~16은 AB로 구분되며 스크린 1은 0.4mm라고 한다.일반적으로 AA 사이즈 생두에서 나오는 커피의 맛이 좋다고 해서 유통이 많이 되고 있다고 한다. 케냐AA는 생두의 스크린사이즈가 18인 AA 사이즈의 케냐산 커피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케냐 AA는 가공할 때 Wet공법(washed)을 주로 활용하고 있어 균질한 맛을 내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Natural 공법을 활용하는 예가체프와는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케냐 AA는 오묘한 과일향이 나 상큼한 신맛을 갖고 있으며, 독특하고 쌉쌉한 맛이 좋다고 한다. 예가체프와 케냐AA 모두 신맛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데 케냐 AA가 과일향에 가까운 신맛이라면 예가체프는 좀 더 부드러운 신맛이라고 하는데, 신맛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감정인데다 과일향의 신맛과 부드러운 신맛에 대한 구분이 어려운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긴 했다. (이건 조금 더 맛을 음미해보고 추후에 다시 정리하는 것으로)
우선 커피의 원두에 대해서 정리를 해봤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의 커피는 생산 방식과 가공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었다. 맛도 그래서 조금 달랐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방식도 그래서 커피를 취급하는 방식도 조금 다른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맛을 설명하는 것은 아직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맛이라는 것이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이기에 글로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 했고, 또 찾아보니 맛을 결정하는 것은 원산지 외에도(물론 원산지가 제일 중요하지만) 다른 변수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이번 글은 커피 관련 글을 시작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는 것으로 그 의의를 두고 마무리하려 한다. 10편을 쓸 때까지 쭉쭉 계속 써 내려가 보려 한다. 커피를 매일 소화하고 있는 내 몸에 미안하지 않도록...